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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기계화 학교의 미스테리 일본 전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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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기계화 학교의 미스테리 일본 전차 -3-


전차가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지역이 나에게 떠오른다.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郞]]라는 일본 작가가 있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수많은 베스트 셀러를 남긴 일본의 국민 작가였다. 그는 일본 오사카 외국어 대학에 다니다가 학병으로 징집 되었다. 장교로 임관한 그는 만주 사평가에 주둔한 관동군 전차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였다. 전황이 극도로 악화되자 그의 부대는 본토 결전의 작전 계획에 따라 일본으로 이동 배치를 받았다. 부대는 기차 편으로 만주 사평가를 출발해서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부산에서는 서면에 집결해서 해상 수송 준비를 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의 주력 전차였으며 작가 시바 료타로 소대 전차인

97식 전차 – 89식 보다 반쯤 더 크다.]


이 사실은 기계화 학교의 일본 탱크가 부산 부근에서 폐기되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즉 부산까지 철도 수송을 했지만 선적을 하려고 보니 전차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일본까지 가져가도 더 이상 일본 육상에서 자력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이고 상황마저 쾌속한 이동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가동 불능 전차를 후일에 처리하기로 하고 그냥 부산에 놔두었던 것이 땅에 매몰되어 오랜 세월 지내다가 기계화 학교로 온 것이 아닐까? 


다른 가설은 위의 가설보다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철 수집상의 개입이 없는 가설이다. 한반도에 단 2 개 사단만 주둔 시키던 일본은 태평양 전쟁의 전황이 극도로 나빠지고 오키나와에 미군이 상륙하자 미군의 다음 목표를 일본의 규슈 아니면 제주도로 보고 육군 58군을 신설, 제주도에 병력을 급파하기 시작했다. 58군 사령관 나가쓰 사히쥬[永津 佐比重]중장이 지휘하는 7만 5천 병력의 일본군은 단 몇 개월 만에 제주도 전체를 막강한 요새로 변환시켰다.동굴 연락망이 구축되고 중요 지역에 토치카 요새가 구축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기대되었으나 원자탄 투하와 일본의 항복으로 58군은 쓸데없는 낭비만 한 것이 되었다. 종전이 되자 일본군은 주요 중화기의 부품 등을 파괴하고 개인 화기는 바다에 버리는 등 처리를 하고 진주한 미군에게 항복하고 철수하였다.


나는 89식 전차가 58군 신설과 함께 파견되어 해안에 급조한 고정포대로서 설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구식인 89식 전차가 대대적으로 해안 고정포로 변신하여 설치된 예가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다고 하니 이것은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기계화 학교 89식 전차의 상태] 


제주도로 급파한 병력 중에 주력 부대인 2개 사단은 만주의 관동군에서 파견한 사단으로서 전차 부대를 동반하고 왔다고 한다. 89식 전차가 이들 사단이 가져온 전차들 중에 편제되어 있어서 고정 포대로 활용하기 위해 제주도로 반입할 수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일본의 항복과 함께 미군의 항복 접수단이 제주도로 오기 전에 58군이 중화기의 중요 부품을 파괴하면서 전차의 포탑과 엔진을 제거하여 바다에 투기하지 않았을까? 


일본군이 항복 직후 전차의 포탑을 제거해서 폐기해 버린 사실은 일본군이 전개되었던 일본 북부 사할린에서도 있었다.



[엔진 실의 흔적]


전차가 제주도의 고정 포대였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사실은 기계화 학교에 전시 중인 전차의 상태가 땅 속에 매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는 사실을 할 수가 있다.


수 십 년 동안 매몰되었다는 전차가 녹이 거의 슬지 않았고 페인트마저 선명하다. 만약 이 전차가 수분을 많이 품은 평지의 지중(地中)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이런 깨끗한 상태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계화 학교의 보존 상태 좋은 89 식 전차의 상태는 물이 잘 빠지는 화산토(火山土) 지대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화산 지대인 제주도에서 고정 포대를 구축할 정도로 시야가 넓은 고지대가 바로 이런 지역이다.



[고정 포대가 된 89식 전차]


미군이 진주하기 전 전차의 포탑과 엔진을 제거하고 전차가 파고 들어갔던 땅은 흙을 덮어서 은폐해버렸다고 해야 했다. 전차가 작으니 이런 일은 서너 명의 병사로서 반나절도 안 되어 해치울 수가 있었다.제주도의 일본군은 진지 건설 공사에 제주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시켰지만 핵심 본부나 중요 요새 등의 건설에서 현지 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일본군은 미군 상륙의 경우 제주도민들이 미군에게 협력하여 정보 제공을 할 까봐 우려 했던 듯 했다.


고정 포대가 된 89식 전차 호(壕)도 이런 이유로 제주도민들로 숨겨져 몰래 구축되었고 후에는 전차도 역시 주민 모르게 매몰되어 일본군들이 모두 철수한 뒤에 망각되어 세월이 갔다고 생각 되었다.그러다가 토목 공사나 기타 건설공사 때 발견되어 기계화 학교에 기증되었다고 본다.



[89식 전차]


나는 89식 전차의 제주도 파견을 확신하고 제주도 파견 58군의 장비 상황을 알아보았다. 58군의 장비 상황에 대해서는 의외로 자세한 정보들이 있었다. 58군에는 만주 몽강에 주둔하다가 제주도로 이동해온 전차 중대 소속 14량의 전차가 있었다. 그러나 그 전차들은 모두 시바 료타로 작가의 소대 전차들과 같은 97식 전차들이었다 58군의 편제 장비에서 89식에 대한 정보는 눈을 씻고 봐도 볼 수가 없었다.


이 기록대로 하면 89식은 제주도에서 발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나의 조급한 확신이 낯이 붉어지는 순간이었지만 한 가닥 희망 줄을 놓고 싶지는 않다. 매몰 전차의 깨끗한 상태가 나로 하여금 화산토 지대인 제주도 발견의 가능성을 포기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일본군이 고정 포대 설치용으로서 89식 전차를 반입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바로 장비를 해체하고 매장해 버리고 이 사실을 진주한 미군에게 감추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제주도 58군 97식 전차가 미군 인수 검사를 위해 도열하고 있다.]


단지 제주도에 병력을 배치할 때 일본군은 남해안에도 수미상의 병력을 배치했다고 했는데 이 남해안 부대로 89식 전차가 따라 갔을 경우가 있다.


앞에서 여러 개의 추리에 의한 전차의 정체에 대한 가능성을 말했지만 나름대로 이 다소 억지스런 이야기를 해본 목적이 있었다. 정확한 결론으로 말해서 기계화 학교의 89식 전차의 출처는 현재로서는 미스테리다.


그러나 과거 기계화 학교에 근무했었던 간부라면 정확히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가기 전 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차의 이력을 제보 받기 위한 것이다.이 글을 읽으신 분 중에 기계화 학교나 그 전의 기갑 학교에 근무하면서 이 전차가 반입된 역사를 아시는 분이 꼭 나오리라고 본다.


89식 전차는 비록 볼품없지만 전차 개발사에서 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제시했었던 막대한 유물적 가치가 있다.


89식 갑[甲]형은 원래 독일에서 수입했었던 다임러 벤즈 휘발유 엔진을 장착했었으나[라이센스 생산을 했다는 글도 있다.]을[乙]형은 일본에서 생산 된 디젤 엔진을 장착했었다.


일본은 독일로부터 전수받은 두어 개의 기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하였는데 그 하나는 광학 제품 분야고 다른 하나는 디젤 엔진 분야다. 89식 전차의 디젤 엔진은 숱한 고장과 트러블을 일으켰으나 89식 전차는 현재 디젤 엔진이 대종인  전차들의 최초 원조 격인 셈이다.


현재 세계에서 89식 전차는 4 량(兩)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 량은 미국, 다른 한 량은 필리핀, 그리고 두 량이 일본에서 전시물로서 생존하고 있다. 일본의 89식 전차의 한 량은 육상 자위대에서 가동 상태로 재생해내어 행사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 육상 자위대가 재가동 시킨 89식 전차]


이렇게 유물적 가치가 있는 89식 전차가 하루 빨리 그 내력이 밝혀져 제대로 대우받고 전시가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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