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에서 소중한 생명을 지켜주는 현대판 갑옷, 방탄조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내 생명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 바로 ‘현대판 갑옷’으로 불리는 방탄조끼입니다. 혹시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에 의해 만들어진 '면제배갑'은 면포 12겹을 겹쳐 만든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입니다.
면제배갑으로 시작된 방탄조끼의 역사는 현대에 와 케블라와 다이니마 등 신소재가 개발되면서 혁신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탄소섬유를 이용한 방탄복, 방검복이 등장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장병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줄 군 장비, 방탄조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방탄조끼의 조상, 갑옷이 사라진 이유는?
▲근대 유럽의 '흉갑기병'이 착용한 갑옷 / *흉갑: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금속제 갑옥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방탄조끼 탄생 이전부터 인류는 여러 형태의 보호 장비로 스스로의 신체를 지켜왔습니다. 중세 시대 사용된 갑옷이 대표적인데요. 중세 이전에는 적의 칼이나 화살 따위를 막기 위해 쇠나 동물의 가죽, 두꺼운 천 등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습니다. 당시 갑옷은 현재 방탄복보다 훨씬 무거웠는데,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20~30kg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탄조끼의 선조격인 갑옷은 총과 포탄이 개발된 근대 이후 그 자취를 감추게 됐는데요. 아무리 두텁게 만들어도 충분한 방어 능력을 확보할 수 없는 까닭에, 차라리 갑옷을 벗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후 기술이 발전되며 무기 성능이 지속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갑옷을 대신할 방호 도구의 필요성이 떠오르게 되면서, 방탄조끼의 개발이 이뤄졌습니다.
조선시대 발명된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 ‘면제배갑’
조선시대에 발명된 세계 최초의 우량기인 ‘측우기’,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등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과학기술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세계 최초의 실전 방탄조끼 역시 우리 조상들의 손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면제갑옷(綿製甲胄),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59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면제배갑’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실전 방탄조끼는 조선 말기에 개발됐습니다. 프랑스 함대와 격전을 치른 병인양요 당시 서양 총기의 위력에 경악한 흥선대원군은 신하들에게 총탄을 방어할 수 있는 갑옷 개발을 명합니다.
흥선대원군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본격적인 갑옷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요. 면 재질의 갑옷인 ‘면갑’과 철 재질의 갑옷인 ‘철갑’ 등 다양한 형태의 갑옷을 실험하던 중 총알이 면포 12겹 이상은 관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제배갑은 조선군에게 보급되기 시작해, 고종 8년에 미군이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무력 침략한 신미양요 때 본격적으로 적용됩니다. 이로써 신미양요는 세계 최초로 방탄조끼를 실전에서 사용한 전투로 기록됐습니다. 비록 면제배갑은 전투력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신무기를 개발하려는 노력과 의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여러 가지 방탄조끼들 개발돼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방탄조끼들이 개발됐지만, 이것들은 대부분 강철이나 면 소재로 만들어진 것들이나 엄청난 무게에 비해 약한 방호력으로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습니다.
6·25전쟁에서 미군은 강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조각을 나일론 소재와 결합한 ‘M1951 조끼’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총알을 직접 막는 방탄조끼라기 보다는 목표물에 맞고 튕긴 도비탄이나 폭탄의 파편을 막는 미약한 수준의 방호력만을 갖춘 것에 불과했습니다.
1970년대 첨단 소재 개발로 혁신적 발전 이룩
난항을 거듭하던 방탄조끼 개발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당시 개발된 ‘케블라(Kevlar)’와 ‘다이니마(Dyneema)’ 등 질기고 탄성이 뛰어난 첨단 섬유 소재들로 인해 방탄조끼는 혁신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헤라크론 소재의 방탄 제품들
(사진 출처: 국방 일보)
1972년 듀폰이 선보인 ‘케블라’는 아라미드 섬유의 일종으로 강도와 탄성률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강철과 같은 굵기의 섬유로 만들었을 때 강철보다 5배나 강도가 높아 방탄 소재로 적격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79년 네덜란드의 DSM사가 개발한 ‘다이니마’ 역시 폴리에틸렌 계열의 섬유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면서도 가벼운 섬유’로 인정받고 있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양산이 가능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이 적용된 첨단소재입니다.
이외에도 케블라(듀폰), 트와론(테이진), 헤라크론(코오롱), 스펙트라(하니웰) 등 다양한 첨단 소재가 개발·적용됨에 따라 방탄조끼의 성능 역시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젤리 방탄복도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신소재는 ‘전단농화유체(STF)’라고 불리는 특수 물질입니다. 실리카(이산화규소)를 원료로 만든 이 물질은 평소에는 젤리처럼 말랑말랑 하지만 충격을 받는 순간 강하게 굳어집니다. 이 소재를 써서 방탄복을 만들면 총알을 맞을 때만 그 부위에 저항이 커지면서 굳어지게 되는 것이라, 딱딱한 섬유를 적게 써도 되기 때문에 평소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2014년 11월 17일, 신형 방탄복 방탄성능 시연 현장
(사진 출처: 국방일보)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입니다. 보통 소재 1kg에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우수한 방탄조끼 한 벌 가격이 20만~30만 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비용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아 실용성이 있음에도 아직 상용화 되진 못했습니다.
한편 소재뿐만 아니라 방탄조끼의 외피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탄창이나 수통 등 다양한 군장을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는데, 덕분에 무게가 증가한다는 단점이 생겼습니다. 특히 착용자가 물속에 빠지거나 전복된 차량 내부에 갇혔을 때 방탄조끼를 벗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가 되자 이런 사실에 주목하여 최근에는 줄만 한번 당기면 저절로 분해되고 벗겨지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방탄조끼의 진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
영화에서처럼 얇은 티셔츠 한 장의 두께만으로 총알을 막아내는 만능 방탄복은 아직 세상에 없습니다. 셔츠 한 겹으로 총알을 막을 만큼 튼튼한 소재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뒤 쪽으로 전달되는 충격 때문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옷 속에 입는 은닉형 방탄복이 있긴 하지만, 넉넉한 옷을 입어야 겨우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이고 방호력 역시 힘이 약한 권총탄 정도만 막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군용 방탄복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현재 쓰이는 방탄복은 조끼 형태입니다. 총알을 막으려면 최소한의 두께가 필요하므로 내장 등 중요한 기관이 모여 있는 몸통을 보호하는 대신 팔과 다리는 가볍게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꼭 필요한 경우엔 낭심이나 목, 어깨까지 가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끼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헤라크론 소재의 방탄복 견본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세상에는 저마다 파괴력이 다른 여러 종류의 총과 총알이 있습니다. 이 모든 무기들을 방어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방탄조끼는 아직 세상에 없지만, 전 세계 각국에서는 방탄조끼를 비롯해 보다 튼튼한 각종 방호 장비 개발을 위해 힘을 쏟고 있습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국 군 장병들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방호 장비들의 발전으로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장병들의 소중한 생명을 반드시 지킬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