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의 명장] '군단의 눈' 항공 정찰 조종사, 전구서 공군 소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4일 전구서 소위는 L-4연락기로 정찰하던 중 포항 서북쪽 기계 방면으로 침입하는 적 지상군 2개 대대를 발견하여, 적군을 완전히 괴멸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전 소위는 뛰어난 조종 실력과 정찰 조종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스스로 ‘군단의 눈’이라는 자부심을 지녔던 불굴의 보라매였습니다.
그는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건 저공 비행을 하며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지난해 10월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하기도 했던 전구서 공군 소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전구서 소위]
(▲사진 출처: 전쟁기념관)
-생몰 연대: 1927 ~ 1950년
-출신 지역: 평안남도 강동군
-최종 계급: 공군 소위
-상훈 내용: 충무무공훈장
소년시절부터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다
전구서 소위는 1927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1943년 평양 제2공립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조종사의 꿈을 안은 소년은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기 조종술을 익힙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이 해방된 1945년 8월부터 1946년 2월까지 현 대한민국항공회의 전신인 조선항공협회에서 조종사로 활약했습니다.
1948년 우리 정부가 미군으로부터 L-4연락기 10대를 양도받아 육군 항공대를 설립하자, 전구서 소위는 1948년 9월 18일 육군 항공기지사령부 항공병 2기로 입대합니다. 육군항공대로 입대했던 그는 복무 중이던 1949년 10월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분리되자, 공군으로 소속을 전환하였고 이때부터 L-4연락기를 조종하게 됐습니다.
운명을 함께했던 L-4연락기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 L-4 연락기(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전구서 소위의 목숨과도 같았던 L-4연락기는 1940년대 미국에서 생산돼 제 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이 사용하던 2인승 연락용 경항공기였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가 미군으로부터 인수해 우리나라 공군이 보유하게 된 최초의 항공기입니다. 지금의 항공기에 비하자면 소총으로도 피격이 가능할 만큼 기체가 약하고 속력도 느린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만, 대한민국 공군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유물입니다.
특히 6․25전쟁 초기 후방석의 관측사가 폭탄을 품에 안고 출격·투척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던 작전 방법으로 여수·순천사건의 진압 및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서 공중 지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항공기이며, 정찰 중 전사한 전구서 소위가 마지막까지 조정했던 애기(愛機)이기도 합니다.
목숨을 건 저공 정찰로 적의 침투를 살피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4일 전구서 소위(당시 이등상사)는 L-4정찰비행부대 조종사로 낙동강 방어선 국군 제 2군단에 파견됩니다. 무장도 되지 않았던 정찰기 L-4연락기로 저공 비행을 시도한다는 것은 사실 목숨을 적진 앞에 갖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구서 소위는 정확한 정찰을 위해 항공 정찰 조종사로서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비행영역을 살펴보는 전구서 상사와 뒤에 태극기가 보이는 L-4비행기 (출처: 국방 일보)
연락기로 정찰하던 중 포항 서북쪽 기계 방면으로 침입하는 적 지상군 2개 대대를 발견, 유엔 공군의 F-51 전투기를 유도하여 적군을 완전히 괴멸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같은 해 9월 3일 북한군의 영천 방면에 대한 대대적인 포위 공격으로 아군 2군단이 진지에서 철수하는 등 전세가 긴박해지자, 적의 대공포화를 무릅쓰고 적정을 정찰하여 영천 지역 보현산 남방에 은폐하고 있던 적 포병부대를 발견했습니다. 위기에 처해있던 아군은 전구서 소위의 활약으로 숨어있던 적 포병부대를 섬멸했고, 영천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합니다.
24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전장에서 장렬히 생을 마감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개시와 함께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반격을 감행하여 전세를 뒤집고 10월 초에는 38선을 넘어 진격합니다. 혁혁한 공적을 세우던 전구서 소위는 1950년 10월 7일, 지상군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화천 일대를 정찰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중부전선을 따라 북진하던 6사단의 지상군 작전 지원 임무를 수행 중이던 전구서 소위는 화천 상공에서 적 대공포에 피격되고 맙니다. 화염이 순식간에 엔진을 뒤덮고 하늘을 날던 기체가 기울어지면서, 결국 전구서 소위는 그의 애기(愛機)였던 L-4연락기와 함께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많은 아군들의 목숨을 살려낸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24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정부는 정찰기 조종사로서 지상군의 작전 수행에 공헌한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소위로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2014년 6월 17일,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견학을 온 어린이들이 공군이 마련한
‘6·25전쟁과 공 군 역사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출처: 국방 일보)
살아생전 ‘군단의 눈’이 되어 아군을 지켜냈듯, 이제 ‘하늘의 눈’이 되어 조국을 수호하고 있을 전구서 공군 소위에게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짧은 생이었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호국 영웅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