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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군 군가 ‘해방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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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군 군가 ‘해방행진곡’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36년간 일제 치하의 식민지로 살아야했던 고통과 설움에서 벗어나 국권을 되찾게 됩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됐고 우리 국군도 정식으로 창설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정식 국군의 모체가 되는 해방병단과 국방경비대가 해방 직후 창군의 역할을 했습니다. 해군의 모체가 되는 해방병단은 1945년 11월 11일에 창설되었고, 육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는 1946년 1월 15일에 창설됐습니다. 


정부보다 먼저 탄생한 창군기 우리 국군 장병들에게는 마땅한 군가가 없었습니다. 장병들의 사기와 사명감을 북돋아줄 우리 군가가 필요했던 때, 해군 창설의 주역인 손원일 제독이 노랫말을 만들고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그의 아내 홍은혜 여사가 곡을 붙이면서 최초의 국군 군가 ‘해방행진곡’이 탄생하게 됩니다. 오늘은 올해로 탄생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방행진곡’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변변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던 창군기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 창단 기념 사진 (사진 출처: 해군 공식 블로그 Blue Paper)


앞서 말했듯 우리 육군과 해군의 창설일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보다 먼저 이뤄졌습니다. 특히 해군은 가장 먼저 창설됐지만 아직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으므로 지원되는 예산이 전혀 없었습니다. 일본식 군비와 장비로 훈련을 해야 했고 변변한 군가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창군기 우리 국군 장병들은 주로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군가를 부르거나 찬송가의 가사를 바꿔 부르는 정도였습니다. 



최초의 국군 군가, ‘해방행진곡’의  탄생 


당시 광복군을 비롯해 비교적 창설 기반이 있었던 육군에 비해 해군은 인적 기반이 전혀 없던 때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장남인 손원일 제독은 중국 상하이에서 항해학을 공부하고 상선을 타며 세계 각국을 다니는 동안 해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45년 11월 11일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70명의 인원으로 해방병단(海防兵團)을 창설했습니다. 


▲1946년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홍은혜 여사가 곡을 만들고 손원일 제독이 노랫말을 붙인 해방행진곡의 악보. (사진 출처: 국방일보)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하고 손원일 제독과 결혼한 홍은혜 여사는 해군 창설 즈음 우연히 군인들이 행진하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게 됩니다. 일본 군가에 한국 가사를 붙인 것을 안타깝게 여겼긴 홍 여사는 손 제독이 쓰던 가사에 곡을 붙여보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1946년 1월 해방병단이 미 군정청으로부터 정식 군사단체로 승인을 받던 때, 두 사람에 의해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군가 ‘해방행진곡’도 발표됩니다.   

 

같은 해 연이어 3곡의 군가가 탄생하는데 ‘해방행진곡’에 이어 10월에 ‘바다로 가자’, ‘해군사관학교가’ 등이 나오게 됩니다. 지금도 해군의 대표적인 군가로 불리는 ‘바다로 가자’ 역시 손원일 제독이 작사하고 홍은혜 여사가 작곡한 곡입니다.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작사  


최초의 국군 군가인 ‘해방행진곡’을 작곡한 손원일 제독은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해군의 발전에 커다란 공적과 영향을 남긴 인물입니다. 전쟁기념관에서 2013년 ‘11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1952년 5월 13일. 뒤쪽 가운데 서 있는 군인이 손원일, 왼쪽은 이승만, 오른쪽은 Admiral Ralph A. Ofstie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손원일 제독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부친 손정도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를 본받은 남다른 애국심으로 '우리의 바다는 우리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을 갖고 1945년 11월 11일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설하였습니다. 손원일 제독은 푼푼히 모은 성금과 아낀 돈으로 최초의 해군함 백두산호를 미국에서 구입해 마련하기도 했으며 해군사관학교를 건설했고, 해병대도 창설했습니다. 해병대 창설식에 해병사령관을 빛내기 위해 해군 참모총장이던 손원일 본인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또 6ㆍ25 전쟁 때는 대한해협 해전과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등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해군뿐만 아니라 1953년 8월 제5대 국방부장관에 취임해 국군의 날과 현충일 제정, 국립현충원과 국방대학교 건립을 주도하며 대한민국 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렇듯 해군 초대 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장관, 초대 서독대사 등을 역임하며 우리 군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손원일 제독은 1980년 2월 15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자택에서 서거하여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여사 작곡 


손원일 제독의 이 같은 업적 뒤에는 홍은혜 여사의 내조가 있었습니다. 우선 그녀는 남편인 손원일 제독과 함께 음악 전공을 살려 창군기 우리 국군 군가를 만들어낸 작곡가란 업적을 남겼습니다. 


▲전쟁기념관이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한 고(故) 손원일 제독 현양행사가 7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가운데 부인 홍은혜(앞줄 맨 오른쪽) 여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예를 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국방 일보)



뿐만 아니라 배 한 척이 없던 시절, 전투함 마련을 위해 다른 해군 부인들과 함께 삯바느질과 모금운동을 벌여 6만 달러를 마련한 애국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이에 감복한 이승만 대통령이 6만달러를 더해 12만 달러로 해군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 등 4척의 배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홍은혜 여사가 6․25 전쟁 기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삯바느질을 해가며 후방을 지원한 일화 역시 해군에 널리 알려져 있는 미담이기도 합니다.  


비록 홍은혜 여사는 해군 군적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해군 창설과 역사의 산 증인이며 해군 발전의 공헌자로 지금도 ‘해군의 어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남편인 손원일 제독과 함께 해군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11일 서울 신길동 해군회관에서는 해군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창군 원로 초청 호국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는 99세 생일인 백수(白壽)를 맞은 홍은혜 여사를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해군 군악대 중창단과 홍 여사의 모교인 이화여대 중창단이 손 제독과 홍 여사의 손에서 태어난 초창기 해군 군가를 합창하는 모습은 지켜보던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탄생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방 행진곡’ 



▲2015년 11월 10일, 국방 일보 기사 중 ‘창군정신으로 조국 해양수호 거친 파도를 넘는다. 해군창설 70주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삽입 이미지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조국의 바다를 사랑하고 해군을 아꼈던 두 사람이 만나 탄생시킨 최초의 국군 군가, ‘해방행진곡’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난해가 광복 70주년이면서 해군 창설 70주년이었다면 올해는 우리 국군 군가가 탄생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셈이죠.  


우리보다 먼저 군을 창설했던 북한이 정권 초기 일본 군가나 가요를 차용해 그대로 군가로 사용한 것에 비해, 우리 군은 스스로 군가를 제작해 식민지의 잔재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찾고자 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절

우리는 아노라 삼면의 바다

나라의 흥망도 이곳에 있고

천고의 충의도 이곳에 났다

황파노도 잡아차고 나갑시다

생명선 이 바다로 지키자 

싸우자 이 바다에서


2절

우리는 충무의 전통이다

쇠 같은 결심도 이미 가졌고

정의의 큰칼도 예비하였다

설풍한설 물리치고 나갑시다

생명선 이 바다로 지키자 

싸우자 이 바다에서


3절

우리는 찾았다 우리의 바다

동양의 평화도 이곳에있고

인류의 해방도 이곳에 있다

천신만고 돌파하고 나갑시다

생명선 이 바다로 지키자 

싸우자 이 바다에서


-군가 ‘해방행진곡’ (작사: 손원일, 작곡: 홍은혜)-



한 나라의 군대가 부르는 군가란 단순한 노래가 아닌, 주권과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고 있는 상징물임을 감안한다면, 해군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는 손원일 제독과 홍은혜 여사가 만든 ‘해방행진곡’은 ‘우리 군가를 부르는 우리 군으로 우리 국토를 지키겠다’는 뜨거운 애국정신과 자주정신이 깃든 최초의 국군 군가로써 의의를 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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