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 세계 10위의 군사력을 지닌 터키군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에서는 유엔군을 조직해 세계 각국의 병력을 모아 지원 병력을 파병했습니다. 그 중 당시 강대국이 아니었음에도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을 지원한 국가가 있었는데요. 1950년 10월에서 1953년 7월 27일까지 총 1만 4,936명을 파병한 터키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대한민국과 터키는 함께 피를 흘리며 형제국으로서 인연을 맺었고 그 후로도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오늘은 세계 10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며(2015년 기준) 대한민국 국군과도 깊은 유대를 형성하고 있는 터키의 군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장대한 군대의 역사
▲부산 남구 소재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25전쟁에서 전사한 터키 전몰용사들을 추모하고 있는 터키 해군 장병들 (사진 출처: 국방 일보)
터키 군대의 역사는 저 먼 옛날, 기원전 2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계 역사상 유목민족으로서 최초로 제국을 이룬 중국 북방의 흉노족이 바로 그 기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고대 흉노 제국의 창시자인 묵특 선우(冒頓單于, Mete Khan)가 만여 기의 기병을 현대와 비슷한 편제로 나누어 지휘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터키군은 약 58만 명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육군 전력 47만 명, 해군 전력 6만 명, 그리고 공군 전력 5만 7천 명까지 전력으로만 따졌을 때 대한민국 국군과도 비슷한 규모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타군에 비해 강력한 육군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부분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터키군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통해 병력을 충원하고 있는데요. 만 20세 이상의 남성을 대상으로 12개월의 병역이 부과됩니다. 대학 졸업자의 경우 6개월의 병역이 부과됩니다. 징집 시기는 연 4회(2월, 5월, 8월, 11월)이고 신병 교육 기간은 3~9주 사이로 교육 종료 후 자대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위협을 외면하지 않는 강직한 군대
터키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으로 아시아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해, 군사 대국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토에서는 터키군을 적극 지원하며 전력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 터키군이 쿠르드 테러범들을 추적·소탕하기 위해 이라크 영토에 진입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터키 남동부 시르낙 지방을 방문 중인 터키 지상군사령군 일케르 바스부크 대장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장갑차에서 대기하고 있다. / (사진 출처: 국방 일보)
또 최근 전 세계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의 다에시(수니파 무장조직 IS를 그들이 주장하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바꿔 부르는 명칭. IS의 명칭을 ‘다에시-Islamic State of Iraq and Sham의 약자-’ 또는 ‘다에쉬’로 바꿔 부르자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 중)에 대한 최 인접국으로서 지속적으로 공습을 펼치는 등 국제적인 책임에도 충실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피로 맺은 형제국의 인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산16번지에 위치한 터키군 참전기념비 (사진 출처: 국방 일보)
많은 사람들이 터키와 우리나라를 일컬어 ‘형제의 나라’라고 합니다. 이처럼 뜻 깊은 관계를 맺게 된 연유에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터키인의 조상인 투르크족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고대의 돌궐제국이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중국 대륙의 수·당나라에 대항하는 동맹으로서 우호협력 관계를 견고히 한 데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터키군의 6·25전쟁 파병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역사적 연구 결과에 따라 이견도 존재하지만, 터키군의 6·25전쟁 참전이라는 분명한 현대사의 사실은 우리나라가 터키를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터키는 한국전쟁 당시 지상군 3개 여단을 세 차례에 걸쳐 파병하였습니다.
▲2012년 10월 22일, 경기 연천군에서 열린 터키군 ‘장승천 전투 전적비’ 제막식 (사진 출처: 국방 일보)
터키군은 1951년 1월 말 치러진 금양장 전투에서 중공군이 굳건히 지키고 있던 151고지를 탈환하며 유엔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고, 같은 해 4월 장승천 전투에서는 66명 전사, 105명 실종이라는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중공군으로부터 인접한 아군 부대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그밖에도 수많은 전투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워낸 터키군은 전쟁 기간 중 전사자 721명, 전상자 2,493명, 실종자 175명, 포로 234명까지 총 3,623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에 우리는 타국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아끼지 않으며 평화를 수호해 낸 터키를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경기 용인 기흥구에는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 터키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터키군 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우호적인 관계
대한민국과 터키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전차 개발 능력으로 ‘한-터키 전차 개발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하였고, K-9 자주포도 터키로 수출하며 한-터키 간 방산 협력을 꾸준히 확대하여 왔습니다.
또한 민간 교류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방한하는 터키군 관련 인사들과 터키군 참전기념비를 함께 참배하고 기리는 것을 잊지 않음으로써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영원한 동맹을 공고히 다지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 25사단 지역에 자국 국기를 세우고 있는 터키 포병대대 병사들의 모습
(사진 출처: 국방 일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3, 4위 전을 벌였던 한국과 터키는 유력한 유럽의 강팀들을 물리치고 상위권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경쟁과 상관없이 6․25전쟁에 참전해 피를 흘린 형제국에 대한 예우를 다하며 양국 모두를 응원하는 대형 국기가 관중석을 뒤덮는 모습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감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양국은 물론 세계인들의 뇌리에도 깊게 남아있는데요. 대한민국과 터키가 맺은 귀한 인연이 앞으로도 돈독히 이어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