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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감동이야기 공모전 수상작]보내는 이 없는 택배(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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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이 없는 택배

 글 김경진


국군 감동 이야기 공모전장려상 수상작 보내는 이 없는 택배입니다.

 수상자의 작품을 칼럼 형식에 맞도록 수정하였습니다.



 

201212, 강원도 양구. 나와 동반입대를 한 김주원(가명)은 최전방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주원이와 나는 부대에서 통신병 임무를 같이 부여받아 일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훈련소와는 사뭇 다른 자대 생활에 긴장해 있었다. 근무지가 최전방 부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다행히 선임병사들과 부대 간부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자대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업무능력도 많이 향상되어 부대의 에이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20131월 말, 주원이에게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나와 주원이는 그날 아침 여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과를 시작했다. 막사에서 점심을 먹는데, 라디오에서 야간 폭설예보가 들려왔다. 그래서 오후부터는 폭설 대비를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주원이는 통신 담당 간부님과 함께 장비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소초로 갔다. 이 날 차량이 지원되지 않아, 주원이는 무거운 장비를 메고 가파른 축선을 걸어가야 했다. 작업이 밤늦게까지 이뤄져 주원이는 소초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상황실에서 중대장님과 야간근무를 서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따라 이상하게 주원이가 마음에 걸렸다. 긴 시간이 흐르고 근무가 끝날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하는 중대장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주원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구나.”


수화기를 내려놓은 중대장님이 말했다.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리고 추운 소초에서 잠들어 있을 주원이가 떠올랐다. 이 사실을 주원이가 어떻게 받아드리게 될 지 걱정이 앞섰다. 친구이자 동기 전우로서 평소 마음여린 주원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걱정이 되어 중대장님에게 주원이의 안부를 확인했다. 주원이는 기상 후 본부중대로 복귀하는 중이라고 했다. 눈보라를 헤치고 험한 산길을 걸어오고 있을 주원이를 생각하니 내가 괜히 눈물이 났다. 중대장님은 내 모습을 보고 주원이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얼마 후 나타난 주원이의 모습에 나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주원이 얼굴에는 온통 눈물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주원이를 부둥켜안았다.


주원이는 외출할 채비를 마치고 황망하게 집으로 향했다. 주원이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떠난 사이 나 또한 마음을 다잡았다. 며칠 뒤 주원이는 웃는 얼굴로 복귀했다. 그런 주원이가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웠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에도 주원이는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된 느낌을 받았다.


주원이네 가정형편은 원래 아주 열악했다. 게다가 주원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주원이 형의 대학등록금, 생활비 등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원이는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을 모아 집에 고스란히 보내곤 했다.


최전방 부대는 눈이 자주 와서 택배 운송이 어렵다. 당시에는 휴가나 외출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변변한 매점 하나 없었다. 다만 가끔씩 이동식 매점이 운영되었다. 일명 황금마차라 불리는 매점이었다. 부대 장병들은 이 황금마차에서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주원이는 돈이 없어 기본 세면도구조차 구입할 수 없었다. 나는 주원이한테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해 그에게 주었다. 혹시나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봐 나는 집에서 온 물건이 많이 남았다고 둘러댔다.


어느 날, 주원이 이름으로 택배가 하나 왔다. 수령인은 분명히 김주원이라 적혀 있는데,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샴푸, 립밤, 내복 등 생활필수품이 들어있었다. 주원이는 의아해했지만 곧 어머니가 보낸 것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몇 주 뒤 바디클렌저가 없어서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주원이를 발견했다. 나는 주원이에게 슬쩍 내 바디클렌저를 내밀었다. 그런데 며칠 뒤 주원이 앞으로 다시 택배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주원이는 이번에도 집에서 보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주원이는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택배를 받았다. 정기적으로 택배가 오자 주원이는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주원이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더 이상 택배를 보내지 않으셔도 된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주원이 어머니는 택배를 보낸 적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주원이는 어머니가 아니면 형이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기는 듯 했다.


시간이 흘러 상병이 된 주원이와 나는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 전투지역전단)생활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GOP(General Outpost : 일반 전초)에서보다는 개인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다. 주원이와 나는 자기계발을 위해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는 바로 응시서류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원이는 시험 응시료와 교재 구입비를 먼저 걱정했다. 나는 응시료 납부 당일 날 주원이와 응시료를 제출하기 위해 중대장님을 찾아갔다. 중대장실 문 앞에서 노크를 하려는데, 안에서 중대장님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기기능사 교재 좀 보내줘. 이번에도 김주원앞으로 해서 보내주면 돼.”


나와 주원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주원이 앞으로 도착했던 수많은 택배들이 떠올랐다. 주원이 또한 그랬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나를 쳐다봤다. 그런 주원이를 나는 말없이 다독여주었다.


중대장님은 평소에도 항상 인자하게 장병들을 보듬어주시곤 했었다. 주원이가 그동안 받았던 송신인 불명의 유령 택배 또한 중대장님의 따뜻한 배려이자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중대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주원이와 저를 언제나 묵묵히 돌봐주신 중대장님,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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