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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의 ‘수석총 [燧石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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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대호’의 ‘수석총 [燧石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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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편에 걸쳐 조선시대 화승총에 관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련 학계에서 거의 연구도 하지 않았었고 별다르게 축적 된 전문 지식도 없는 이 분야에서 수석총에 관한 분석을 먼저 해본다. 이 글들에는 다소 산만하지만 가능한대로 관련 정보들을 많이 담아놓아 후에 조선시대 고무기(古武器)의 연구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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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영화 '대호'(大虎)를 관람했다. 상당히 공을 들여 제작했고 투자비도 많았던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 총기가 많이 나왔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보았던 것이다. 



‘대호’의 주인공 천만덕의 수석총 –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지 않던 고무기다.


영화나 TV 드라마의 고증이 엉터리로 되어서 웃음꺼리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영화 대호에서도 고증의 여러 오류가 발견 된다. 내가 이 영화의 고증 오류에 대해서 굳이 시비를 걸 이유는 없지만 무기류에 대해서는 좀 아는 바가 있기 때문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들의 관계자들은 그 고증과 소품 준비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원칙이 점점 엄중히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전문적인 정보 획득이 가능하고 이런 온라인을 통한 개인 학습으로 육성되고 전문성을 가지게 된 매니아 층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앞으로 관계자들은 곤혹스런 망신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고증의 철저함이 요구되는 분야는 무기류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던가, 추억의 명화 시간에 독립군 영화가 방영 되었었다.60년대에 만든 이 영화에서 처녀시절의 엄앵란 씨가 일본군을 향하여 미제 M 3 기관단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나와서 실소하고 만 일이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전쟁물의 고증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는 미국 영화 감독들이 고증에 철저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바 있었다. 그 본보기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었다. 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촬영 때 한 개에 150 달러 씩 주고 출연하는 미군 장병들의 철모 턱 끈 오리지널을 구입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수년 전에 한국에서 상영된 스필버그 감독의 ‘워 호스’라는 영화에서 그 철저했었던 고증의 또 다른 본보기를 발견했었다. 1 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영국군 군마(軍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로서 여기에 독일군 포병 부대의. 포병 부사관이 휘두르는 루거 권총이 나온다. 놀라웠던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루거가 당시 독일 포병들 만이 사용하던 총신이 긴 포병용 모델 1917 루거였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까지 정밀했던 그의 고증에 그저 혀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1917 아티렐리[포병] 루거


미국이야 정보도 많고 전문가도 많고 실물도 많으니까 이렇게 치밀하게 고증할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급속히 상승하고 있는 고객들의 눈높이를 살펴보면 더 투자하고 더 노력하여야 한다고 본다.


요즈음 무기가 나오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생각보다도 많다. 이 영화 전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조선 총잡이'도 있었고 '암살자'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들은 무기의 정확한 고증이라는 차원에서 말할 차원의 영화들이 아니었기에 이 ‘대호’라는 영화는 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상영 전 메스컴에서 이 영화 제작자의 여러 가지 노력이 엿보여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현실의 배경을 충분히 이야기 했기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근세총기사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왔던 나는 작년 크게 성공했었던 전쟁기념관의 ‘독립 전쟁 특별 기획전’을 기획했을 때 그간 모아왔던 상당히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었었다. 


청산리 전투나 안중근 의거, 여기에 더해서 동학란에 한 여러 무기 정보를 넘겨주면서 의병 활동에 썼던 화승총에 관해서는 아무 자료를 가지고 있지를 못해 말도 꺼내지 못했었다.



독립 전쟁 특별 기획전 –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이 사용한 3식 기관총

앞은 그 후신인 92식 기관총 진열창안은 러시아제 모신 나강 총


내가 전해준 정보 외에도 전쟁 기념관의 기획 담당 신유진 큐레이터의 노력으로 수집했었던 탄탄한 자료로서 잘 준비된 이 특별 기획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연장 전시를 하게 되었다. 이 성공한 전시회를 준비하는 동안 나와 담당 신 큐레이터는  조선시대 화승총에 대한 정보를 찾고 찾다가 자료의 빈약함에 한탄을 하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맨 아래 필자의 이름이 있다. 내세우고 싶지 않으나 

이런 글을 쓸만한 총기 전문의 내공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이니 이해하시길 바란다.


누군가가 여기에 관한 연구를 했거나 자료가 조금은 있거니 했는데 정말 전무(全無)했다. 이 일을 계기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한말 의병 활동의 역사적 무기였던 이들 고무기(古武器)들이 이렇게 망각되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쪽 방향으로도 나의 관심을 넓혀 보기로 하였다.


이런 계획을 가지게 된 나에게 영화 대호에 나타난 화승총은 조선 고무기 (古武器)연구의 한 분야에 최초로 머리를 드려 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대호에 나오는 화승총은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총이 아니다. 불심지로 격발하는 화승총이 아니라 부싯돌을 격발에 사용하는 수석총(燧石銃)이다.


영화 대호의 주인공은 배우 최민식이 분한 상투쟁이 호랑이 사냥꾼 천만덕이다. 후배 포수들이 모신 나강같은 현대식 총을 사용하지만 웬일인지 주인공인 천만덕은 현대 무기가 아닌 수석총을 들고 나온다.

 

적어도 나의 제한된 지식으로 수석총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발견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총기다. 이 총은 미국 독립전쟁 때 사용되었던 총기 종류고 나폴레온 전쟁 때 사용되었던 총기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디 카프리치오 주연 레버넌트의 실제 주인공 휴 글래스가 쓰던 총기이기도 하고 그 전의 ‘모히칸 족의 최후’에 나오는 주인공 호크아이가 쓰는 총이 이런 종류다.




수석총의 발화 구조 -닭머리 같은 격침이 물고 있는 부싯돌이 아래 

화약 팬을 치면 스파크가 일어나 화약을 폭발시킨다.


흑색화약[유연화약]을 쓰던 전시대의 총기를 기본부터 설명해보자. 전 시대의 총기는 세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가 널리 알려진 화승총이다. 영어로 매치 락[match lock]이라고 한다. 매치는 성냥[화승],락은 발화 구조 부분을 말한다. 총구에 화약을 붓고 다음에 납탄[鉛丸]을 넣은 다음 격발은 총신 후미에서 하는 방식이다.


즉 총신 후미에 약실과 통하는 구멍이 있어 장약한 흑색 화약이 약간 흘러 나온다. 여기에 격침이 물고 있는 불심지[火繩]의 불붙는 부분으로 때리면 격발하는 구조다. 화약이 통하는 구멍이 있는 부분을 귀불[耳火-pan]이라고 부른다. 사수는 타 들어 가는 화승을 보충하기 위해서 긴 화승을 팔뚝에 감고서 짧아지는 화승을 조절하며 사격의 순간 격발에 대비하는 것이다. 



화승총의 발화 구조. 

앞의 닭머리 끝의 불붙은 화승이 아래 화약 팬[귀불]에 가격하여 화약을 인화한다. 

이것은 앞에서 뒤로 치는 구조지만 대부분 뒤에서 앞으로 치는 구조다.



이것이 화승총 [火繩銃]으로서 초기 소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총[鳥銃]이라고 불렸다.화승총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가져와 조선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었다, 



일본의 조총 –임란 때도 비슷한 총을 들고 쳐들어 왔었다.

화승이 뒤에서 앞으로 치는 구조다.



전후 광해군은 국력을 기울여 5,000 조총병을 양성했었다. 그는 재침의 가능성이 적은 왜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북방에서 위협적으로 흥기하고 있던 후금 [後金]의 내침을 우려하여 앞으로는 외교적으로 노력하면서도 뒤로는 이런 은밀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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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외교군주였다는 평을 받던 광해군의 대북방 대책은 어리석은 인조가 집권한 뒤에 모두 공염불이 되고 국가는 두 번의 호란으로 초토화되었다. 광해군은 강화도와 제주도로 이동 귀양살이를 하다가 외롭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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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후금의 철기병 [鐵騎兵]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조총 이상 좋은 무기가 없다고 보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육성한 조총대는 명나라의 드센 강요와 이에 동조한 신하들이 보은 파병하자는 생떼에 할 수없이 만주의 전장에 파병했다.


그러나 세(勢)불리함을 읽은 대장 강홍립이 광해군의 밀지를 받들어 후금병에 항복하는 바람에 조총대는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이 막강한  조총병들은 항복 후 후금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전향해서 명군에게 화력을 퍼붓는 전위대의 역할을 했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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