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물러나거라 [ 下 ] 적들을 당황하게 만든 주장
회담에 나선 공산군 측은 유엔군 측이 군사 전략상 유리한 현 접촉선에서 휴전하자고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불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여 일단 38선을 분계선으로 주장하며 회담의 주도권을 잡고 서서히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유엔군 측은 현재 접촉선에서 북쪽 30km 지점에 분계선을 정하자고 주장하여 공산군 측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 유엔군 측이 최초 주장한 군사분계선 ]
한마디로 현 전선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이 30km를 물러나라는 주장이었고, 당연히 공산군 측은 펄쩍 뛰었다. 하지만 유엔군 측이 그렇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전선 상황 때문이었다. 1951년 2월부터 5월까지 연이어 벌어진 세 차례의 대공세에서 공산군 측이 회복하기 힘들만큼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이후, 전선의 주도권은 완전히 유엔군 측으로 넘어왔다.
[ 유엔군의 화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전사한 중공군의 시신) ]
휴전 회담 직전인 7월 초 상황만 보았을 때, 만일 아군은 공세를 개시하였다면 충분히 한만국경까지 다시 올라갈 수 있을만한 군사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미국은 현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려 하였다. 한국 정부는 재 북진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었지만, 미국은 북한 지역을 회복하여도 과연 공산군 측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종전에 동의하겠냐는 점을 자신할 수 없었다.
[ 다시 북진을 하여도 과연 어디까지 진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
설령 유엔군은 북진을 한다고 해도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널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대규모로 참전한 중공군에게 이 강들은 정치적인 국경이 아닌 그저 강일뿐이었었다. 따라서 중국이 의지만 있다면 아군의 한만국경 도달 여부와 상관없이 전쟁이 계속 될 가능성이 충분하였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미국은 전쟁을 끝내려 하였고 이 때문에 유일하게 확전을 주장하던 맥아더마저 과감하게 내쳐 버렸던 것이었다.
[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경으로써 압록강과 두만강의 의미는 사라졌다
(신의주 시민들의 환영 속에 압록강을 건너 온 중공군) ]
반면 공산군 측은 그 동안 유엔군 측의 휴전 요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연이어 벌인 공세가 실패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미군의 화력을 결코 당해낼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4, 5차 공세가 잇따라 실패하자 중공군은 미군과의 정면충돌을 최대한 자제하며 6차 공세에서는 일부러 국군 담당 지역으로 돌파를 시도하였는데, 이번에도 기동력을 앞세운 미군의 신속대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 유엔군의 화력은 감당하기 힘든 벽이었다 ]
유엔군은 뛰어난 기동력으로 전 전선을 넘나들며 압도적인 화력으로 포탄의 비를 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늘과 바다에서도 공격을 가하였다. 덕분에 치열하게 전선에서만 싸움을 벌이던 우리와 달리 북한의 후방은 연일 공습에 시달림을 당하였다. 유엔군 폭격기들이 수시로 날아가 최후방의 보급로까지 유린하였고 평양, 원산 바로 앞의 도서와 바다까지 아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안전한 곳이 없었다.
[ 유엔군의 공군력은 공산군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
적 후방이 이 정도다 보니 사격권내에 있는 전선 30km 이내는 더더욱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유엔군은 의지만 있으면 이곳을 쉽게 점령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본 것이고 그래서 공산군이 30km 뒤로 더 물러나 정전하자고 당당하게 요구한 것이다. 당연히 공산군 측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군사적으로 앞서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이러한 강력한 주장을 펼쳐 회담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였던 것이었다.
[ 과거의 사례를 되새겨 회담에도 자신감을 갖고 대하여야 한다 ]
이처럼 강하게나가면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던 것이 북한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도발도 삼가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신을 갖고 강하게 대하면 꼬리를 내리고는 했다. 비록 소개한 에피소드는 60여 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지만 충분히 현재도 되새겨봐야 할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북한의 태도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