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습니다.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태극전사들의 활약은 전 국민을 흥분케 했고, 대망의 3-4위전이 열렸던 6월 29일엔 응원 열기가 극에 달했죠.
그런데 이렇게 전국이 붉은악마의 응원으로 물들었던 그 날, 서해 상에서는 제2연평해전이라는 핏빛역사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ㅣ월드컵의 열기에 가려졌던 오늘
서해 상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해군은 평소처럼 연평도 어선 조업통제를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북방한계선(NLL) 북한 측 해상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북한 경비정이 남한측 북방한계선을 넘어 계속 남하하기 시작한 것이죠.
멀리서 치솟는 불꽃과 함께 몇 초 뒤 공기를 찢는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박종균 (상사, 청해부대 17진)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은 기습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포격은 제2연평해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기습 포격으로 우리나라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였고, 이때부터 양측의 함정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교전은 30분가량 지속되다 참혹한 결과를 내며 끝이 났습니다.
ㅣ짧은 교전, 참혹한 결과
1999년 6월 15일 발생했던 제1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남북한 함정 사이의 해전, 제2연평해전. 30분이라는 짧다면 짧은 교전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중 여섯명의 장병이 전사하였습니다. 신록이 푸르고, 월드컵의 열기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생기 넘쳤던 2002년의 6월. 뜨거운 피를 가진 청춘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태극전사들이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해 필드를 누빌 때, 우리의 해군 또한,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해 바다를 누볐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태극전사들이 붉은악마의 뜨거운 함성과 응원 속에서 싸울 때, 우리 해군은 포성이 울려 퍼지는 바다 위에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갔다는 것이죠.
어쩌면 2002년 6월 29일은 우리 해군에게도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가슴 뛰는 날이었을지 모릅니다. 군복을 입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붉은악마와 같은 붉은색 티를 입고,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랬을 것입니다.
ㅣ2002년의 오늘을 기억합시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시작된 갑작스러운 교전에 완전히 다른 하루를 맞이한 연평해전 참전용사들. 이제는 우리가 14년 전 그들에게 보내주지 못한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작년 여름 영화 <연평해전>의 개봉으로, 연평해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관심과 감사의 물결이 일기도 했지만, 여전히 2002년의 여름은 우리에게 월드컵이 열렸던 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청춘을 다 바친 참수리호 여섯 영웅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해주시고, 더불어 연평해전에 참전한 모든 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감사한 이름임에도 여섯 용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는 벅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2002년의 오늘.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했던 그날. 서해 상에서는 연평해전이 일어났으며, 그 안에서 아름다운 청춘이 희생되었다는 사실 만큼은 기억해주시고, 그들을 향한 추모의 마음 또한 간직해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