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밸리 전투 65년- 풀이 자라지 않은 무덤들 -2-
6.25 전쟁 중에 157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해피 밸리 전투에서 전사한 얼스터 대대원들을 모신 메네미 고개 산록의 묘역 전경이다.
[한국산 화강암으로 만든 추모비가 서있다. 사진은 추모비의 헌정식인 듯.]
여기서 10시 방향 수 백 미터 북쪽에 격전의 흔적이 있는 이수광 선생의 가족 묘지가 있다. 이 곳의 유해들은 1956년에 부산 유엔군 묘지로 옮겨져 갔고 묘비만 쓸쓸히 서있다가 영국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시청에 모셔져 있다. 앞으로 멀리 뻗어있는 작은 길을 따라 수 백대의 차량이 이 메네미 고개로 이동중 중공군의 기습을 받았다.
1950년 12월 대대 주방으로 쓰던 제궁현 터널 윗 산에서 내려다 본 장흥면 삼하리 곡릉천변의 얼스터 대대 본부 지역 –1951년 1월 3일 밤 10시에 철수 차량대가 출발했었다. 중공군 기습은 선두 B 중대가 빠져 나간 직후인 10시 30분경에 가해져서 약 4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157명이 전사하고 전차 14량이 유기되었다.
다음 해 1951년 3월, 이 제궁현 터널에 대피했었던 중공군 100여명이 미군의 네이팜 탄 공격을 받아 타 죽었다.
2. 하단의 두번 째 묘 – 이수광 선생 부친 이희검 병조판서의 묘
[이수광 선생의 부친 이희검 병조판서와 모친 문화 유씨의 묘.]
대개 가족 묘지의 경우 맨 위에 있고 제일 선대가 그 아래로 후대가 자리잡는 것인데 이 곳은 아들의 묘 아래 아버지의 묘가 있는 독특한 배치를 보여 주고 있다. 추측컨데 이수광 선생의 아들이 할아버지를 다른 곳에서 이장해오지 않았나 한다.
비석에 총격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기관총에 당한 표면 훼손이 극심해서 비면을 갈아내고 다시 비문을 새겨 넣은 흔적들이 보인다. 총탄 자국이 깊어서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도 있고 너무 깊어 석회를 바르고 글을 새겨 넣은 부분도 있다
이 부친 묘의 비석에는 이수광 선생 묘보다도 더 집중적인 사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묘의 오른쪽 탄환 집중도다.]
묘의 왼쪽 피탄 면적이 매우 넓다. 집중적인 기관총 사격이 이 묘에 가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오른쪽의 동자석- 탄흔의 정도가 낮다.]
[왼쪽의 동자석- 피격 당한 흔적들이 상당히 많다.]
[이수광선생의 묘와 달리 오른쪽 석주[돌기둥]에 명중의 흔적이 있다.]
[왼쪽의 석주도 여러 발의 사격을 받았다].
[이수광 선생 가족 묘지 아래 쪽 해피 밸리 안내판 현판식 때- 주한 아일랜드 오도노휴 대사와 중공군 공격 개시 직전에 메네미 고개를 빠져나간 B 중대장 로빈 찰리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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