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이착륙기 개발사 [ 4 ] 영국의 새로운 날개
1957년, 영국의 오랜 전통을 지닌 항공기 명가 Hawker社는 엔지니어인 캠(Sydney Camm)과 후퍼(Ralph Hooper)의 주도로 프로젝트(P) 1127을 진행하였다. 목표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다목적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런 시도는 영구뿐만 아니라 미국, 소련, 프랑스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시대가 그런 종류의 전투기를 절실히 요구하였던 것이다.
[ 시드니 캠은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허리케인 전투기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
당시 호커의 기술진들은 The Bristol Engine Company사의 후커(Stanley Hooker)가 제안한 추력가변형 제트 엔진 기술을 주목하였다. 추력가변형 엔진은 개발이 어렵지만 당시 다른 경쟁국들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여타 수직이착륙 방식보다 전투기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보였다. 그들은 개발이 거의 끝난 새로운 형태의 엔진을 수직이착륙기의 추진체로 삼고자하였다.
[ 추력가변형 엔진을 제안한 스탠리 후커 ]
프로젝트에 착수한 지 3년만인 1960년 10월 21일, 초도기가 수직이착륙 시험에 성공하였다. 비록 1기가 실험 도중 사고로 손실되었지만 당시 총 6기가 제작된 시제기들의 실험 셜과 추력가변형 제트엔진을 장착한 비행체가 전투기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음을 입증되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폭격으로 비행장 운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영국 공군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
[ P. 1127 초도기 1호의 시험 비행 모습 ]
기지가 공격을 받아 사용 불능이 될 경우 도심의 도로, 주차장, 공터 등을 비행장으로 즉시 사용할 계획을 수립해두었던 영국 공군은 P. 1127 결과물이 그들의 목적에 가장 부합한 전투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였던 것이었다. 그 결과 1969년 4월 1일, 일사천리로 개발을 마친 수직이착륙기가 세계 최초로 제식화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Harrier GR.1이었다.
[ 시리즈의 시작인 해리어 GR.1 ]
수직으로 이륙하면 연료 소비량이 많아지고 그만큼 작전 반경이 줄어들게 되므로 긴급시가 아니면 지상에서 활주하여 이륙하지만 강력한 추력가변형 엔진 덕분에 통상적인 이착륙을 하는 다른 전투기에 비한다면 활주로 사용 거리는 상당히 짧았다. 또한 실전에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헬기처럼 비행 중 공중에서 정지는 물론 경우에 따라 후진까지도 가능하였다.
[ 해리어 GR.3 ]
이것은 전술적으로 엄청난 이점을 영국 공군에게 안겨주었다. 비록 목표로 했던 초음속까지는 내지는 못하였지만 이전 전투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기동력은 공대공 전투 시 속도의 약점을 커버 할 수 있을 것이고 장소의 구애됨 없이 최전선 가까이에서 공대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훌륭한 보조 전술기로 손색이 없었다.
[ 해리어 GR.7 ]
Harrier GR.1의 등장은 지난 400년간 바다의 패권을 잡았으나 20세기 이후 국력이 쇠퇴하면서 감축을 강요받고 있던 영국 해군에게도 희망을 주었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영국은 많은 해외 식민지를 상실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한 거대한 해군을 유지할 필요성이 줄었고 이빨 빠진 사자, 혹은 유럽의 병자로 불릴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더 이상 거대한 대양 함대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 국력 쇠퇴와 함께 퇴역한 R09 아크 로열 ]
때문에 F-4K, Buccaneer 같은 당대 최고의 초대형 함재기를 운용하며 세계만방에 영국의 위용을 상징하던 HMS Eagle이나 HMS Ark Royal 같은 중형 항모는 폐기 대상 1순위에 올라있었다. 이들의 퇴장은 전통의 영국 해군 항공대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냥 이를 지켜 볼 수도 없었다. 이처럼 상심에 빠져 고민이 많던 영국 해군에게 Harrier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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