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1. 개판장수
자대로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
이 시기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머릿속에 얼마나 빠르게 입력되느냐가
최관건인...그런 시기이죠.
군대는 다수가 함께 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체계화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화장실 수건을 어떻게 거느냐' 에 대한 인수인계도 이뤄진답니다.
"반드시 상표명이 보이도록 걸어야 한다."
뭐, 이런 식이죠.ㅋㅋ
그런 사소한 인수인계 사안들 중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전화 받기'였습니다.
외워야 할 '전화예절 멘트'가 따로 있을 뿐더러-
전화를 저희 부대 간부님께 넘겨드릴 때는
필히 전화오신 분이 누구이신지를 말씀드려야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에게 굉장한 고역이었습니다.
물론 전화를 주신 간부님들 중에는
본인의 관등성명을 친절히 또박또박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으나,
어떤 분들은 "그냥 바꿔!"막무가내형 간부님들도 종종 계셨고-
또 어떤 분들은 관등성명을 말씀은 해주시는데...도무지 잘 안 들리는겁니다.
뭐, 회선이 고르지 못한 이유도 있고, 발음이 이상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잘 못 들었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되물으면...
결국 짜증을 내시던 경우가 종종 있었죠.
어느 날이었습니다.
"띠리리링~띠리리링~"
나: "충성! OOO부대 이병 김성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누구?: "어..나 개판장수인데, 거기 OOO원사님 계시지? 좀 바꿔줄래?"
나: "네?;;;; 실례지만...누구신지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개판장수?: "아, 나 개판장수야. 어서 바꿔줘."
나: "...."
난처해하던 제 표정을 옆에서 지켜보시던 OOO원사님께서
못마땅하신 듯 말씀하셨습니다.
OOO원사님: "누군데 그래?"
나: "저기..개..개판..장수랍니다..(긁적)..(긁적).."
OOO원사님: "뭐?!!"
OOO원사님은 제 전화기를 뺏어가셨습니다.
한참을 통화하시고 나서는-
전화를 끊으시고 저에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계편장교' 란 '계획편성장교'의 줄임말로서 하나의 '직책'입니다.
(계급과 직책은 다릅니다. 가령, '소위'가 계급이라면, '소대장'은 직책입니다.)
OOO원사님은 제가 전역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 에피소드로 저를 놀리곤 하셨습니다.
저만 보시면, "어이~ 개판장수~ㅋㅋㅋㅋ"
실수2. 안녕하세요?
아시다시피,
윗사람에 대한 군대의 인사는 '거수경례'입니다.
경례구호는 부대마다 다르죠.
저희 부대는 "충성!"이었습니다.
역시나 이등병 때의 일입니다.
저희 부대엔 삼촌뻘? 아버지뻘? 간부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총각 간부님들도 계셨습니다.
어찌되었든 결론은 부대엔 남자 분들 투성이었다는 것.
(뭐, 군대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요.^^;)
그런데 저희 부대의 유일한 여자 간부님이 계셨으니...
바로 여군무원님이었습니다.
'군무원'이란 군무에 종사하는 '군인이 아닌 공무원'을 일컫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자면, 군인과 공무원 사이? 정도로 보시면 되겠네요.
그러나 군무원님도 엄연한 간부님이시기 때문에-
병사는 당연히 거수경례를 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 여군무원님께서 계단에서 내오려시는 겁니다.
그런데 마침 입고 계신 옷이 '민트색' 가디건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민트색에 관련된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거든요.
'민트색을 좋아했던 그녀...아...그리운 시절이여...'
아무튼 그런 회상에 빠졌있는 사이-
군무원님께서 제 앞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여군무원님: "어, 성진아, 안녕?"
나: (허리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주변에 있던 병사들: !!!!!!!!!!!!!!!!!!!!!!!!!!!!!!!!!!!!!!!!!!!!!!!!!!
사실 그 순간엔 저는 제가 뭘 잘 못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갔죠.
그러나 나중에 병사들이 말 해주고나서야,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싶더랬죠.
바로 당일에 기회를 봐서-
군무원님께 따로 사과를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아휴, 죄송합니다. 제가 남자 분들에게만 둘러 쌓여 있다보니,
갑작스레 여자 분 대하는게 익숙치 않아서..."
말도 안되는 변명이었지만,
그 때 절 엄청 귀여워라 해주셨죠. 후훗.
실수3. 구비구비 돌아서
이 역시도 제가 이등병 때 겪은 일입니다.
운전병이었던 저는 한 간부님을 모시고 운행 중이었습니다.
운전 경험이 많지 않아, 운전 기량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저는-
빳빳하게 긴장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죠.
마침, 점심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간부님: "성진아, 밖에서 점심 먹고 복귀하자.
내가 잘 아는 식당이 있거든? 가다가 어딘지 알려줄게."
나: "네! 알겠습니다!"
외식이라니! 사회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신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운행을 계속 했죠.
간부님: "어, 성진아! 저기 구비구비 돌아서 가자."
나: "네?"
당황했습니다. 갑작스레 간부님은 쭉- 뻗어 있는 도로를
직진이 아닌 구비구비 돌아서 가자고 하시니-
당최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군인입니다! 상급자가 명령을 하면-
복종을 해야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핸들을 좌우로 돌렸습니다.
도로 위를 잘 달리고 있던 저희의 차량은
구비구비 돌았다긴 보단 그냥 흔들렸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가 싶더랬죠.
간부님: "성진아! 뭐하는 거야! 저기 구비구비 돌아서 가자고!"
제 눈은 그제야 간부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간부님이 가리킨 방향을 진작에 봤더라면-
이러한 오해는 없었을 터.
운행을 하는 내내 너무 긴장을 해서,
그저 앞만 보고 간 것입니다.
이 이후에-
저는 점점 베스트 드라이버로 거듭났다는 후문이...
이상! 제가 이등병 때 겪은 재미난 실수담들이었습니다.
자, 다들 아시죠? 누구나 다 '처음'이란게 있다는 걸.
그 당시에 잘 모르고 너무나 낯설기 때문에-
정말 선임들(혹은 선배들)의 사소한 도움 하나가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었던...그 마음.
모두가 그 마음 잊지 않으시고,
지금 곁에 있는 후임 후배들에게
따뜻한 손길 한번씩 내밀어주시길 바라면서-
이 글을 줄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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