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기로 구성된 TBF 뇌격기와 4기의 B-26 폭격기가 호위하는 전투기도 없이 저고도로 일본 항공모함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함교에서 이를 지켜보던 항공모함 히류(飛龍)의 함장 야마구치 다몽(山口多聞) 제독은 이들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를 걱정하지 않고 기가 차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호위기도 없이? 죽을 줄도 모르고 모닥불로 뛰어드는 불나방들 같군.”
[ 미드웨이 해전 당시 항공모함 히류를 이끌던 야마구치 다몽 ]
미군 공격 비행대는 용감하게 일본 함대를 향해 뛰어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몽 제독의 말처럼 대공포의 무자비한 포격과 제로전투기의 집요한 요격으로 말미암아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다. 단지 1기의 TBF와 2기의 B-26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지옥을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벌인 최초의 공격은 무참하게 막을 내렸다.
[ 무려 500여발 피격 된 상태로 기적적으로 생환한 B-26 승무원들 ]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불나방들의 끝없는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비록 전사에는 단 한 발의 어뢰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전멸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이렇게 시작된 뇌격기들의 희생은 결국 인류사 최대의 해전이었던 미드웨이 해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이처럼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던 뇌격기 비행대의 분투에 관한 이야기다.
[ 미드웨이 해전 당시 최초 공격에 나선 TBF 뇌격기 ]
적함을 침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갑판 상부를 타격하는 것보다 배의 흘수선(吃水線) 아래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군함은 갑판 위의 무장이 타격을 입어도 선체만 온전하다면 수리해서 재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장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침몰하면 그것으로 만사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런 목적에 사용하기에 가장 최적화 된 필살의 무기는 어뢰다.
[ 군함은 침몰하면 그것으로 모든 전투력이 상실된다 ]
어뢰는 선박이나 잠수함의 어뢰관을 통해 발사할 수도 있지만 비행기에 장착하여 투하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데, 어뢰를 장착하여 적함을 공격하는 전투기를 뇌격기(雷擊機, Torpedo Bomber)라고 한다. 1940년 11월 영국해군이 소드피쉬(Swordfish) 뇌격기로 타란토 항을 공습한 것이나 1941년 12월 일본이 나카지마(中島) B5N 뇌격기로 진주만을 급습한 것은 뇌격기의 효용성을 널리 알린 예다.
[ 타란토 항 공습을 성공시킨 영국 해군의 소드피쉬 뇌격기 ]
하지만 뇌격기는 어뢰 투사를 위해서 적함 가까이 최대한 고도를 낮추어 비행해야 하므로 기습이 아니면 침투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일단 공격에 들어가면 방향을 변경할 수 없고 특히 수면 바로 위를 비행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 대공포나 상대 요격기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결점이다. 그러나 명중시켰을 경우 그 효과는 다른 어떤 무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이 사용한 B5N 뇌격기 ]
미드웨이를 침공하려던 일본의 전력은 항공모함 4척과 전함 11척으로 구성된 대 함대였고 여기에 탑재된 각종 함재기들은 동종의 미군기에 비해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미군의 항공 전력은 3척의 항공모함과 미드웨이 섬에 긴급 전개한 비행대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당시 태평양지역에 전개한 육해군 항공대를 총망라하여 긴급 편성한 전력이었다. 일방적이라 할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열세인 상황이었다.
[ 악명이 높았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의 발판이 되었던 TBD 뇌격기 ]
그런데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미군의 뇌격기인 TBD는 1935년 제작된 구형 모델로 일본의 B5N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떨어졌다. 당시 미 해군의 조종사들은 온갖 나쁜 형용사를 붙여 자신들의 TBD를 비웃었을 정도였는데, 항공모함 호넷(Hornet)에 탑재된 제8뇌격비행대대(VT-8) 승무원은 자신들을 Coffin Squadron, 즉 나르는 관을 탄 비행대라고 자조할 정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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