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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최고의 명파이터 강삼수 경위 "두 번째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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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 국방부 블로그의 독자 여러분들은 필자가 포스팅했었던 ‘한국전 최고의 명파이터 강삼수 경위’라는 글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http://mnd9090.tistory.com/2172

 

 

3년간의 6.25 전쟁 중에 활약한 수많은 조국 수호의 영웅들을 배출한 육해공군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전투 경찰에서 최고의 명파이터가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기도했었고  그의 전공이 완전하게 잊혀진 현실에서 그 존재를 처음으로 발굴하여 소개한다는 점에서 필자인 내가 조금은 자부심을 가질만한 글이었다.

 

 

 

 

 

지난번 글에서는 자료 부족으로 여기저기서 겨우 찾아낸 자료로써 강삼수 경위가 싸운 10여 회의 전투만을 소개했었는데 이번 심층 취재에서 알게 된 그의 전공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강삼수 경위는 산청 경찰서 사찰 유격대장으로 단 10여 명의 부하들만 이끌고 지리산 자락을누비며 62회의 전투를 겪으며 공비 322명을 사살했었다. 사찰 유격대는 전시 경찰 정보 부서인 각 경찰서 사찰과에서 특별 운영하던 정보 및 정찰 침투 작전 전담 특공대다사찰 유격대는 편제와 업무는 달라졌지만 오늘 날의 경찰 특공대의 원조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사찰과는 현재 보안과로 개편되었다


 

강삼수 경위의 전공은 그가 상대한 적들이 영남 지방 서부 전선에 진출했다가 퇴로가 끊겨 지리산으로 들어간 북한 최강 6사단 패잔병들과 공비 최강 부대 이영회 부대를 상대로 싸워 거둔 것이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다나는 1989년 출간된 르포 작가 정충제 씨의 ‘실록 정순덕’에서 잠깐 소개된 강삼수 경위의 활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강 삼수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그 뒤관련 자료가 생기면 이들을 모두 모아 두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관심을 두었던 그에 관한 자료는 정말 찾기 힘들었다. 자주 인터넷을 검색했었으나 자료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강 삼수 경위의 조카이며 경상대학 교수로서 시인이기도 한 강희근 시인의 시집 ‘화계리’에 실린 강 경위의 부인이며 강 시인의 숙모인 이종이 여사의 평토장을 회상한 시에서 강 경위가 언급된 것을 찾아냈을 따름이었다.

 

  

강삼수 경위의 표창장들

 

 


 

 

강삼수 경위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참전 경우회 사무총장 김을로 씨의 증언이었다. 김 총장은 강 경위와 함께 경찰 학교 동기생이기도 했고 산청 경찰서 삼장 지서에서 지서장과 차석으로 같이 근무하기도 하여서 그 분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정보를 제공 받을 수가 있었다.

 

 

 

 

강삼수 경위와 김을로 총장이 같은 셋집에 살면서 같은 지서에서 근무했었던 산청군 삼장면 삼장 지서 현재는 한 명의 경찰이 근무하고 있지만 공비들이 준동하던 당시의 옛 지서는 백여 명의 경찰들과 의용 경찰들이 엄중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또 김 총장을 통해서 비매품인 경찰 전사 관련 서적 두어 권도 양도 받아 비로서 글을 쓰게 되었다.

 

 

 동기생 김을로 총장과 아들 강 종상씨가 진주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강삼수 경위의 글이 국방부 블로그에 소개되고 나간 뒤에도 노력을 계속하여 드디어 강 삼수 경위의 아들과 연락이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삼촌 강삼수 경위를 화계리라는 시에서 처음으로 알린 강희근 시인은 나의 강삼수 경위 글이 국방부 블로그에 게시된 사실을 친한 친구로부터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넷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강 경위의 아들은 경남 산청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기능직으로  근무하는 강종상씨였다. 강경위의 둘째 아들이었고

큰 아들 강종기 씨는 충북 제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여러 번의 전화 대화에서 그는 나에게 아버지의 숨은 자취를 보내주었다. 

 

1923 2 20일 생인 강삼수 경위가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지원하여 전투 경험을쌓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가 참전한 전투가 그 악명 높은 버마의인팔 작전이라는 사실은 처음 접한 정보였다버마 주둔 일본 15군 사령관 무다구치 렌야[牟田口廉也]중장이 인도를 침공하겠다는 헛된 야심 하나로 감행된 이 전투는 보급과 지형을 전혀 참작하지 못한 마구잡이 작전이었다.

 

 

 

무다구치 렌야 중장

 

 

험준한 아라칸 산맥을 넘어 광활한 인도를 침공한다는 이 작전은 참혹한 대패배로 끝맺었는데 영국군의 맹렬한 반격에 굶주림과 질병까지 덮쳐 엄청나게 많은 일본군들이 죽어갔다9 2천명의 15군 병사 중에 작전 뒤에 온전하게 생존한 인원은 1 3천명에 지나지 않았다태평양 도서에서 고립된 굶주린 일본군들이 죽은 전우들의 사체를 먹었다는 기록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인팔 작전에서도 이런 잔혹한 식인의 극한 상황들이 자주 보인다.

 

 

 강삼수 경위

 

 

강삼수 경위도 부상과 굶주림에서 생존하고자 부하가 가져다 주는 아무 고기나 무심코 먹었는데 먹고 나서야 당일 죽은 전우의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원병으로 일본군에 들어간 강 경위의 병과는 기병이었다. 말을 다루어야 했던 그는 말의 뒷발질에 두골의 일부가 함몰되어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다.

 

강 경위는전투 중에 허벅지의 대부분이 날아가는 큰 부상을 입고 군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종전을 맞았다. 일본군이 보낸 강 경위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가족들이 모두 그의 생존 가능성을 단념하고 있던종전 일년 후 돌연 그가 돌아왔다

 

종전과 동시 부상자로서 영국군 포로 신세가 되었을 그가 일년이나 뒤늦게 귀국한 이유에 대해서알려진 바가 없다강 경위가 돌아 온 시기는 군이나 경찰들은 간부 모집이 한창이었지만 강 경위가 시골에서 수년간 쉬고 있었던 것은 부상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록 정순덕이라는 책을 썼던 정충제 작가가 부산일보에 기고한 강 삼수 경위 글이 불세출의 영웅을 심층 기술한 유일한 신문 기사일 듯 하다.

 

 


나는 비로서 강 경위가 순경 시절부터 지리산의 정예 공비 부대를 상대로 발군의전투력을 발휘했었던 배경에는 그가 이미 인팔 작전이라는 지옥의 전선에서 죽음을 넘나들며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판단할 수가 있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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