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의 무게
* ‘국군 감동 이야기 공모전’ 두 번째 이야기는 최우수상 수상작 ‘국적의 무게’입니다.
* 수상자의 작품을 칼럼 형식에 맞도록 수정하였습니다.
글 양두영 (51사단 169연대 2대대 본부중대, 병장)
입대 전 두바이 출장 중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한 미국인 동료가 나를 다급히 부르기에 TV 앞으로 달려갔다. ‘Breaking news : South Korea is under attack'. CNN 뉴스 속보였다. 곧이어 포탄이 떨어지고 주민들이 대피를 하고 있는 영상이 나왔다. 급박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나는 즉시 회의장을 뛰쳐나가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전면전이 아니라 북한군의 일시적 군사 도발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종료된 것 같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두근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내려놓고 심호흡을 해보았다. 얼마 전까지 내가 밟고 있었던 모국 땅이 전쟁터가 되어 폭격을 당하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격해진 감정을 정리해보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단 한국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내 진짜 마음을 깨닫게 되었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다. 중ㆍ고교는 프랑스에서, 대학 교육은 영국에서 마쳤다. 입대 전까지는 미국에 있는 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직장 생활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한결같은 가르침 덕분에 난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흔히 교포들이 겪는다는 정체성의 혼란도 겪지 않았고, 한국 문화를 누구보다 사랑했으며, 한글을 모국어로 썼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된장찌개였다. 그런 나였기에 학창시절 때부터 군 복무를 회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치졸하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주변의 교포들과 유학생들은 마치 당연한 듯이 가볍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것을 보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 카투사 입대를 결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군 입대를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계획에 없었던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 중심에 있었던 군 입대 결심이 조금씩 흐려져 갔다. ‘성공’이라는 가치에 휩쓸려 연봉, 승진에만 몰두하며 마치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던 내게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은 나 스스로 잊고 있었던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두바이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군 입대 결심을 이야기했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내 선택을 선뜻 지지해주지 않았다. 군 복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국외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반면 나는 이미 미국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고 20대 중반부터 억대 연봉을 받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굳이 군대에 가겠다고 하자 그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군 복무를 마친 남자 선배들은 마치 자신들이 다시 입대를 하는 것 마냥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너 말고도 나라 지킬 사람 많다’, ‘네가 외화를 버는 것이 진짜 애국이다’, ‘애국심으로만 그런 결정을 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등 만나는 사람들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십대 나이에 ‘성공한 커리어’를 달리던 내가 21개월 간 군복무를 한다고 결정한 것은 결코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었다. 특히 다니던 회사로부터 ‘1년 이상 휴직은 불가능하며 군 입대를 하려면 퇴사를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쩌면 다시는 이 탄탄대로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 때 나는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프랑스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 나는 반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매일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었다. 당시 기숙사 방 작은 전등 아래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읽었던 어머니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두영아, 아무리 힘들어도 잠시일 뿐이야.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넌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니까.’
대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몇 천 페이지가 넘는 영문 법전을 놓고 영국 학생들과 논쟁을 벌어야 할 때도, 유일한 동양인 학생으로 교수님들과 수 백 명의 학생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했을 때에도 나는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심지어 내 기숙사 방문에는 내가 손수 적어 놓은 ‘The Korean’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동안의 인생을 살면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을 때, 나조차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표의 무게에 짓눌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끝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이었다. 내가 일곱 번 넘어지고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포기를 모르는 민족, 극복과 역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저력이 내 존재의 근원이자 뿌리임을 항상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고작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차를 타며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것은 내 인생의 ‘성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나의 존재 전부를 부정하라는 의미와도 같았다. 다시 말해 내가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앞으로 내가 꾸릴 가정과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가슴을 펴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을, 그것은 결국 진정 내가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군 복무와 국적 포기 사이에서 (내가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이 아직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21개월의 군복무 기간 중 지금까지 18개월을 마친 내 솔직한 심정을 들려주고 싶다. 스스로 내리기 힘든 결정을 내리고 그 길을 이미 걷고 있는 사람의 조언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인생의 목표가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가 그것뿐이라면 21개월 동안의 군복무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그 기간 동안 군 생활을 하며 쌓게 되는 경험과 이익은 극히 적다. 직장을 다닌다면 같은 기간 동안 쌓이는 돈, 경험, 인맥, 업무 노하우, 각종 기회 등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 일전 축구 경기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한국인 선수의 스포츠 경기를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예전에 비즈니스 미팅 중에 있었던 일이다. 한 가지 어려운 제안을 놓고 누군가 이런 우스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Everybody wants to go to heaven, but nobody wants to die' (모두가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최상의 결과를 누리고 싶어 하지만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하는 대가는 다들 피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발전을 이루고, 세계적인 뮤지션과 스포츠 선수를 즐비하게 배출한 나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숭고한 것이며 필연적이다. 외국국적을 지닌 눈동자와 머리카락만 검은 ‘한국인’이 아니라 누구보다 큰 자부심을 가진 ‘진짜 한국인’이 되고자 한다면 내 조언을 들었으면 좋겠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평생 자랑스럽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생각하면 절대 쉽지 않은 결정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목숨을 던져 이룩한 조국이며, 65년 전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사명 아래 전쟁터로 뛰어들어 목숨 바쳐 지켜낸 소중한 국가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탄광과 사막에서 자신들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쳐 지금의 경제대국을 이룩해냈다는 사실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그들에 비교한다면 고작 21개월의 군 복무 때문에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것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일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지인들은 지금도 종종 내게 말한다. “네가 한국 국적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는 했었지만 정말 군복을 입을 줄은 몰랐어. 그것도 29살에 말야.” 여기에 이어지는 그들의 말이 내게는 무척이나 큰 기쁨이 된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참 너다운 결정이다, 두영아.” 나의 조국을 남이 아닌 내 손으로 지키는 것, 이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는 말. 그 말은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일이자 내 선택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속 부대 대대장님이 정신교육을 할 때 병사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책임을 다했을 때 비로소 권리를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그에 따른 온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좋은 보직을 포기하고 육군 병으로 자원입대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능력을 토대로 대한민국 국군에 기여할 수 있는 보직을 얻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내게는 ‘특별한’ 군 생활보다 모든 대한민국 남성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보통의’ 군 생활을 온전히 해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51사단 해안경계대대에서 병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내 스스로 선택한 이 시기를 누구보다 즐겁고 보람 있는, 온전한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감히 예상하건데 그 선택은 장차 내가 걷게 될 인생에서 내게 가장 큰 용기와 자부심을 가져다 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결정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