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독립, 기나긴 교훈 [ 1 ] 독립에 대한 열망과 기회
1917년 8월, 폴란드는 그해 말 새로운 독립 국가를 건국할 수 있도록 제1차 대전 승전국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및 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폴란드는 한때 동유럽의 강자로 군림하기도 하였으나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완전 분할 점령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어언 150여년이 지난 후에 드디어 폴란드는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 독립 직후였던 1918년 감격스런 폴란드 군 창설식의 모습 ]
폴란드가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3대 요소 중 국토와 주권은 비록 사라졌고 그들을 지배하는 외세의 엄청난 탄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았던 폴란드인들의 줄기찬 저항 의지와 독립에 대한 끝없는 열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냉정한 국제 질서에서 단지 열망만 있다고 압제를 물리치고 독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3.1운동은 우리의 열망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없었다 ]
실질적으로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때문이었다. 전후 당연히 승자의 잣대로 전후의 세계 질서가 재편되었는데, 이 당시 궁극적인 목표는 패전국을 철저히 응징하여 전쟁의 재발을 막는 것이었다. 이러한 응징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 중 하나가 '민족자결주의'였고 이 때문에 폴란드도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 제1차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폴란드는 독립할 수 있었다 ]
말 그대로 민족 스스로가 독립 국가를 건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는데, 단 여기서 단서 조항은 '패전국에 속해있던 피지배민족들에게만 독립이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전쟁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터키는 수많은 피지배 민족을 거느린 제국들이었는데 여기에 속한 민족들을 민족자결주의라는 명분으로 독립시켜서 패전국들을 갈기갈기 나누어 힘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윌슨의 영국 방문 ]
사실 민족자결주의에 따른다면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에서 독립을 시켜주어야 할 피지배민족들이 훨씬 많았다. 그렇지만 승자들의 손에서 벗어난 독립국은 없고 그럴듯한 이상은 단지 패전국들을 박살내기 위해 그럴싸한 명분으로만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폴란드는 패전국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한 때 연합국이었지만 승전국은 아니었던 소련사이에 있었다.
[ 제1차 대전 당시 러시아령이었던 바르샤바를 점령한 독일군 ]
러시아 제국을 혁명으로 타도하고 건국된 소련은 단독으로 동맹국 측과 강화하여 전선에서 이탈하였고 더구나 反제국주의, 反자본주의 이념을 주창하였기에 탄생 이후부터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지경이었다. 때문에 전후 동맹국 측과 러시아 지배 지역에 속하여 있었던 수많은 중소국가들이 독립하였다. 이때 혁명의 혼란기에 빠져있던 소련은 어떠한 반응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 볼셰비키 혁명 당시의 소련 ]
이들 국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이었는데, 이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국토와 인구를 포용하며 탄생한 나라가 바로 폴란드였다. 하지만 감격적인 독립과 별개로 신생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내부 문제가 건국 초기부터 불거져 나왔다. 당연히 이런 모습은 국론의 분열을 가져왔다.
[ 제1차 대전 후 재편된 유럽의 모습 ]
강대국들을 설득하여 폴란드 독립을 주도하였던 드모프스키(Roman Dmowski)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서 구성된 '폴란드 민족 위원회(KNP)'는 중앙 집권적인 정부가 지배하는 강력한 폴란드 민족 국가를 구상하고 있었던데 반하여, 군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피우스츠키(Jozef Klemens Pilsudski)는 폴란드의 주도하에 수많은 피지배 소수민족들을 포함하는 대 연방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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