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독립, 기나긴 교훈 [ 끝 ] 자부심만으로 지키지 못한 나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제1차 대전 후 탄생한 폴란드는 계속적인 전쟁으로 영토를 급속히 확대하여 순식간 많은 주변 민족을 거느린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영토상으로 그랬다는 것뿐이고 내면의 발전은 정체되어 1926년에 이르러서는 피우스츠키가 행한 친위 쿠데타에 의해 급속히 파시스트 국가로 변모하면서 민주주의는 말살되어 버렸다. 멋진 독립국의 이상은 10년도 되지 않아 내홍을 겪으며 사라져 갔던 것이다.
[ 친위 쿠데타로 정권을 더욱 공고히 한 피우스츠키 ]
내적으로 정치적 혼란을 불러오고 외적으로 이웃과 대결을 추구하던 정책의 영향 때문에 폴란드는 무한한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국력의 향상 없이 단지 영토만 큰 농업국으로만 정체되어 있었다. 그리고 독립한지 10년이 지나 1930년대가 시작되자 소련과 독일의 위협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순식간 바뀌게 되었다. 이들을 상대로 호기롭게 전쟁도 벌이던 시절은 이미 멀리 가버린 상태였다.
[ 재군비를 선언한 후 창설된 독일의 기갑부대 ]
하늘을 찌를 듯 자신만만하였던 신생 폴란드의 자만심은 순식간 종언을 고하고 다시 한 번 강대국의 위협에 살아남기 위해서 몸을 낮추어야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때 자신만만하게 칼을 섞었던 소련과 독일의 위협은 단지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꼬투리만 잡으면 실제로 행동을 보이려는 만반의 준비를 하였고 가시적인 위협도 수시로 보여주고는 했다.
[ 내전 당시인 1921년 그루지아의 트빌리시에 진주한 소련 적군 ]
비록 1932년에 소련 그리고 1934년에 독일과 간신히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으나 그것이 폴란드의 안보를 담보해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폴란드는 조약의 충실한 이행을 원하였지만 소련과 독일은 언제라도 조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위치였다. 특히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혈점령하였고 소련도 발트3국과 폴란드에 대한 연고권을 공공연히 공언할 정도였다.
[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며 노골적인 침략의지를 드러낸 독일 ]
이제 폴란드가 믿을 구석은 독립의 후견 역할을 하였던 영국과 프랑스였으나 이들 국가들은 폴란드로부터 너무 멀었다. 더구나 이들 국가들은 독일, 이탈리아와의 노골적인 도발에 제대로 된 강력한 대응 한 번 하지 못하고 달래주어 아슬아슬한 평화를 구걸하기에 바빴다. 한마디로 깡패가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전체주의 득세의 시기였다. 누구나 예견할 만큼 새로운 전쟁은 눈앞에 보였다.
[ 폴란드가 믿었던 영국과 프랑스도 깡패를 달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
폴란드는 제2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단찌히(Danzig)와 폴란드 내 독일 민족의 탄압을 핑계 삼아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이것만도 폴란드에게 벅찬 상황이었는데 사전에 폴란드를 분할하기로 약정하였던 소련이 동시에 동부에서 밀고 들어오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면서 폴란드는 한 달도 못되어 독립된 지 불과 20년 만에 패망을 맞이하는 불상한 신세가 되었다.
[ 1939년 바르샤바를 점령 후 퍼레이드를 벌이는 독일군 ]
하지만 이것은 폴란드가 제2차 대전 내내 겪어야 할 비극에 비하면 그래도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폴란드를 구성하던 민족은 크게 슬라브인들과 유태인들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나치의 인종탄압 대상들이었다. 전쟁 내내 학살을 당하였고 전선의 등락에 따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던 군경을 포함한 폴란드 지도층 2만 2천여 명이 카틴에서 학살당한 것처럼 소련으로부터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에 진압에 나선 독일군 ]
결국 1945년 해방 당시에 총 600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국부의 40퍼센트가 사라지는 물적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확장하였던 영토도 전후에 많은 지역을 상실하였고 인위적으로 국경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수모까지 당하였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지만 신생 폴란드가 허황된 대외 팽창 정책보다 주변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힘을 모아 국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어쨌을까?
[ 폴란드 군의 자부심인 기병대의 최근 모습
하지만 자부심만으로 나라를 지키기는 못하였다 ]
물론 독일과 소련을 능가할 정도의 강대국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주변을 모두 적대국으로 만들어 힘없게 무너지는 최악의 경우를 쉽게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호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리지 못하고 그 이상으로 과대망상을 가져 결국 20년 만에 패망한 폴란드의 교훈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반면교사라 하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심 많은 독일과 소련이 설령 그랬다하더라도 폴란드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