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라져간 전투기
동서냉전 시기였던 1955년 노스롭(현 노스롭그루만)社는 미국 정부로부터 동맹국에 무상이나 헐값에 원조하여 줄 수 있을 만큼 저렴하고 정비도 용이한 전투기의 제작을 의뢰받는다. 이 때 개발된 것이 우리와도 인연이 각별한 F-5A/B였다. 이후 F-5A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20여 개국에 650대 이상 공급이 되어 비록 넉넉하지 않은 성능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팔린 경량전투기로 이름을 올렸다.
[ F-5A의 대규모 편대비행 모습 ]
이런 F-5A에 만족한 미국은 추력, 무장, 레이더 등을 좀 더 보강하여 동구권의 MIG-21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F-5E/F 전투기를 1970년 11월 동맹국 공급을 위한 저가형 경량전투기 계획인 IFA(International Fighter Aircraft)의 공급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개량형이다 보니 기종 전환과 관련한 조종사들의 훈련 기간이 대폭 단축되어 기존에 F-5A를 사용하던 나라에서 앞 다투어 대량 구매하였다.
[ 한국 공군의 F-5E ]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제4세대 전투기가 본격 등장하자 미국의 전투기를 사용하던 여러 나라가 미 공군이 Low급 전투기로 채택하여 사용 중인 F-16에 관심을 보였다. High급인 F-15는 비싸기도 하였지만 미국이 선별적으로 대외 공급하였기에 저렴하지만 상대적으로 뛰어난 성능을 보이고 대외 판매에도 적극적인 F-16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공군의 베스트셀러로 부상하였다.
[ F-16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부상하였다. (초기형인 F-16A Block 15) ]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전투기 시장에 관심을 가진 노스롭은 굳이 미 공군에 납품하지 않더라도 그 동안 전 세계에 F-5 시리즈가 많이 깔린 점을 고려하여, 이들 교체 물량만 확보하면 충분히 수지타산이 맞을 거라는 계산으로 F-5E/F를 좀 더 파워풀하게 재설계한 후계기를 자사부담으로 개발하였다. 단지 마케팅측면에서만 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었다.
[ 군용기의 명가 노스롭은 배팅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
수차례 설계 변경 끝에 1982년 8월에 F-5G가 탄생하였는데, F-16 보다 늦게 개발됨으로써 각종 전자장비, 무장수준, 작전능력은 당시 F-16 모델보다 좋았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미 공군은 F-16, 미 해군은 F/A-18을 보조 주력전투기로 이미 채택한 상태여서 F-5G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그 뛰어난 성능만큼은 인정하여 1982년 11월 F-5G에게 F-20이라는 F-5 계열과는 전혀 다른 별도 제식 부호를 부여하였다.
[ F-5의 최종판이라 할 수 있는 F-5G(F-20) ]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노스롭은 3대의 시제기를 제작하였고 적극적인 해외 세일즈에 나서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F-20의 뛰어난 기동력을 선보이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 보무도 당당한 첫 번째 무대가 기존 F-5 시리즈의 최대 사용국 중 하나이며 KFP 계획(F-16 과 F/A-18의 경쟁 결과 F-16으로 낙점)에 의거 신형 전투기 도입을 고려 중이던 우리나라였다.
[ 3기의 시제기가 제작되었고 전 세계를 향한 세일즈 길에 올랐다 ]
1984년 10월 10일 수원비행장에서 날렵한 공중 기동을 선보이던 중 한기가 엔진이상으로 추락하여 폭발하고 조종사가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면서 한국 판매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었다. 절치부심하던 노스롭은 기기 결함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이듬해 5월 14일 캐나다 구즈배이에 있었던 에어쇼에 나타나 우아한 자태를 뽐내었으나 여기서 또다시 추락하는 불운을 맞보았다.
[ 박물관으로 옮기기 직전의 모습
노스롭의 꿈이 무너진 것 같은 초라한 자태다 ]
이러한 연이은 사고로 결국 1986년 11월 F-20 개발 사업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고 세계적인 전투기로 만들려던 노스롭은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F-20은 몰골이 처참해진 상태로 현재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무기는 대박이 날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지만 끝판에 다 날릴 수도 있는 리스크가 큰 상품이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무기가 유별나게 비싼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