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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의 호국정신을 계승하다, 대청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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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의 호국정신을 계승하다, 대청해전


 

대청해전에서 용맹하게 싸운 참수리 325호정 장병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해군 공식 블로그)

 

서해상에서 남·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분별한 침범을 일삼는 북한에 맞서 우리 해군이 대응한 대표적인 해전이 바로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입니다. 특히 제2연평해전에서는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18명이 부상을 입는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2연평해전 이후 또다시 서해상에서 발생한 전투가 바로 대청해전입니다. 오늘은 올해로 6주년을 맞은 대청해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청해전, 그 긴박했던 순간

 

20091110일 오전 1120분 경, 북한 경비정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대한민국 해군은 즉시 북상하라는 경고 통신을 보냈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 해군은 인근 해역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참수리급 고속정 4, 호위함 1, 초계함 2척을급파했습니다. 현장으로 즉시 출동한 우리 고속정은 다시 경고통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우리 측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해 대청도 동쪽 11지점의 NLL 해상을 2.2나 침범해 내려왔습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5차례에 걸친 경고 방송을 무시한 북한 경비정에 대해 우리 해군은 1136, 1km 전방에 경고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그러자 북한 경비정은 우리 고속정을 직접 조준해 50여 발의 사격을 가해왔습니다. 우리 해군은 냉정을 잃지 않고 즉각 응전해 약 2분 간 40mm 함포 580발을 응사했습니다. 결국 북한 경비정은 반파되어 연기를 뿜으며 물러났습니다.

 

참수리 325호정 장병들이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해군 공식 블로그)

 

전투 결과, 우리 해군 고속정은 좌현 함교와 조타실 사이 외부 격벽23발의 피탄 흔적이 남았을 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반면 북측은 경비정 1척이 대파하고 다수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추후에 알려졌습니다.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91230&parent_no=6&bbs_id=BBSMSTR_00000000013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1446136&code=1112110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340666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C%B2%AD%ED%95%B4%EC%A0%84

 


대청해전의 참전 장병 및 장비

 

대청해전의 승리는 두 차례의 연평해전 이후 교전수칙이 개정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더불어 우리 해군의 용맹함과 애국심, 그리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해군2함대 참수리 325호정의 정장 김상훈(해군사관학교 59) 대위는 공로를 인정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김 대위는 시상식 자리에서 사관학교 시절 곱씹었던 장차 포연탄우(砲煙彈雨) 생사 간에 부하를 지휘할 수 있는가라는 옥포훈을 실천한 것에 대해 명예롭게 생각한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200912월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이 대청해전의 승전 유공자 김상훈 대위에게 충무무공훈장을 전수한 뒤 악수로 격려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91230&parent_no=6&bbs_id=BBSMSTR_000000000138

 

서해 북방한계선을 지키고 있는 해군 제2함대 장병들은 평소 철저한 훈련과 정신교육을 통해 강한 전승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사령관을 비롯한 예하 지휘관과 참모들은 언제 어디에서 침범할지 모르는 북한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전술 토의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병사들 역시 제2연평해전 전적비를 참배하며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선배 전우들의 호국 정신을 되새기고 필승 의지를 되새기곤 합니다.



정박해있는 참수리 325호정과 351호정의 모습

(사진 출처 : 대한민국 해군 공식 블로그)


대청해전의 승리에는 우리 해군이 보유한 참수리급 고속정의 기여 또한 컸습니다. 1976년 건조가 시작된 참수리 고속정은 몸집은 작지만 민첩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남 해상침투를 최일선에서 저지해 왔습니다. 참수리급 고속정은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NLL에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한 바다 위의 GP’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제2연평해전 이후 해군은 승조원의 안전을 위해 참수리급 고속정에 기관총 거치대와 방탄판을 추가하고 함교와 선체 내부에 장갑판을 설치했습니다. 또한 주요 화기인 M-60 7.62기관총을 K-6 12.7기관총으로 교체해 화력을 향상시키기도 했습니다.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91230&parent_no=6&bbs_id=BBSMSTR_000000000138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4/07/20150407003727.html?OutUrl=naver)

 


지난 20126월 제2연평해전 10주년을 맞아 펼쳐진 서해 해상 기동 훈련. 선두에 선 군함이 윤영하 함이다. 윤영하 함은 제2연평해전의 영웅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우리 해군의 최첨단 유도탄고속함이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대청해전의 값진 승리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청해전은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이 개정된 후 처음으로 적용되어 승리를 거둔 전투입니다. 기존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경고사격-격파사격5단계 대응으로 다소 절차가 복잡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2연평해전 이후 우리 군은 교전수칙을 개정했습니다. 2004년 이전의 5단계에 걸친 교전수칙을 3단계로 단순화 시킨 것입니다.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절차에 따라 이전보다 빠른 대응이 가능해졌습니다. 여기에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을 강화해 돌발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습니다. 교전수칙 개정 이후 벌어진 첫 번째 해전인 대청해전에서 우리 해군 장병들은 개정된 교전수칙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를 보여줬고 그 결과 값진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400&num=84876

 

지금까지 대청해전 6주년을 맞아 참전 장병들과 장비, 그리고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우리 영해 수호를 위해 불철주야 임무에 여념이 없는 대한민국 해군 장병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냅니다! 필승!



※ 제1연평해전부터 연평도포격도발까지 서해 수호의 역사를 한눈에 보시려면!

나라사랑으로 지켜낸 서해!! : http://mnd9090.tistory.com/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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