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기계화 학교의 미스테리 일본 전차 -1-
얼마 전 전남 장성에 있는 상무대를 방문 할 기회가 있었다. 상무대 전체가 다른 곳으로 완전 이전되었고 시설도 너무도 좋아져서 과거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상무대의 기계화 학교를 방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군 생활의 초입에 거쳐 간 곳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모교’와 같은 곳인데 이 곳은 항상 나에게 군에 다녀 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갖기 마련인 병영의 향수 같은 것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갑 학교라는 이름이 기계화 학교로 바뀌었듯 새로 옮겨간 기계화 학교도 무척이나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변신했다. 교육 여건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후배들이 좋아하겠다.” 하며 교정을 돌아보던 중 전차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을 보았다. 창군 이래 그간 기갑이 사용했었던 전투 차량들을 다 집결 해 놓은 곳이었다. “잘 하면 러시아의 쿠빙카 전차 박물관 같은 것도 탄생하겠군.”하는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하다가 진짜 괴상한 전투 차량을 발견하였다.
[기계화 학교의 미스터리 전차- 포탑과 엔진이 없다.]
주변의 진열 된 거대한 전차들에 비하면 무척 작은 것이었다. M113 장갑차만한 크기로 생각되었는데 좁은 철궤도가 이색적으로 보였다. 잘 보니 엔진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어서 밑의 맨 땅이 보였다. 더 살펴보니 포탑이 있는 곳에도 원형의 구멍이 뻥하게 뚫려있다.
이 이상한 궤도 차량은 자주포도 아니고 장갑차도 아닌 전차였다. 한국에 이렇게 작은 전차가 들어온 일이 있었던가?
나의 머리 속에 담겨있는 전차를 다 둘러봐도 짚히는 전차는 없었다. 궤도 모양이 특이해서 일단 한국전쟁 때 영국군이 한반도에 가져온 처칠 전차인가 했는데 처칠 전차는 기계화 학교 것보다 휠씬 더 컸다. 북한이 남한 침공의 앞장에 세운 76mm 자주포인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궤도의 생김새와 포탑의 흔적이 이것을 일찍 부정하게 했다. 여러 궁리를 해보다가 보니 한국 전쟁을 뛰어 넘어 60년대 주한 미군이 운용하던 세리단 경전차가 생각났지만 궤도 생김생김에서 큰 차이가 났다.
전차의 정체도 궁금했지만 포탑과 엔진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괴상한 모습이 되었을까? 이것은 나의 기억과 연관이 있어서 바로 현장에서 즉석 추리를 해봤다. 나는 이 기본 차체 부분만 남은 전차가 기계화 학교에 들어오기 전 고철 수집상의 손에 있었다고 짐작했다.그렇다면 왜 통채로 팔아 버리지 않고 포탑과 엔진만 분리해서 먼저 처분하고 차체는 그냥 놓아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현역 시절 군수품 고철 중에 포의 폐쇄기와 포신이 특별히 값이 더 나가서 고철상들의 인기 수집 품목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 있었다. 포신등은 바늘을 만드는 공장에 비싼 값으로 납품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소문을 뒷받침해주는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신 독재 시절이던가 ?
경기도 연천 동막리 전차포 사격장에 표적용으로 세워 둔 폐(廢) M4A3 셔만 탱크가 있었다.녹이 슬고 여기저기에 국군 전차들이 연습 사격으로 발포한 철갑탄과 대전차 고폭탄들에 뚫린 구멍들이 벌집처럼 나있던 전차였다.
[M4 셔만 전차]
군은 그렇게 큰 고철덩이를 감히 가져 갈 차량이나 기술이 있는 절도 전문 업체가 없다고 안일하게 믿고 그 전차를 인적 드문 전차 사격장에 방치했었다.그러나 어느 날 밤에 한 고철상이 여러 명의 인부를 데리고 와서 76mm 포신만 잘라가 버렸다. 고철상은 그 포신만으로도 상당한 돈을 벌 것이라고 기대했었던 모양인데 처분 과정에서 그만 경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경찰서를 출입하던 한 지방 주재 기자가 이 사건을 알고 현장에 나가 보지도 않고 상상력을 덧붙여서 어이없는 기사를 썼다.
“ --포 사격을 끝내고 주차해놓은 국군 대형 전차의 포신을 잘라-”
아무리 오합지졸의 당나라 군대라 할지라도 포 사격 훈련 중에 도둑이 포신을 잘라가게 놔두지는 않을 것인데 기자가 오산을 해도 크게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론 길들이기의 기회를 찾고 있던 당국은 이 기자를 허위사실 혐의로 구속해 버렸다. 나는 이 사실에서 포신의 경제적 가치가 아주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면에서 바라본 기계화 학교 전차]
포신 다음으로 값나가는 고철은 전차 엔진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전차를 손에 넣은 고철업자가 비싼 포신이 붙은 포탑과 엔진부터 분해해서 팔아 치우고 값이 덜 나가는 나머지 부분은 천천히 처분하려고 했던 것이 저런 볼품없는 상태를 탄생시켰다고 보았다.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에 사법 당국에 적발이 되어 전차를 압수 당한 것이 기계화 학교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 괴상한 전차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정체에 다시 관심이 갔다.그 전차의 부품들을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어느 부품에도 로트 넘버나 문자가 있는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 전차가 영국제나 미국제라면 분명 그런 넘버나 문자가 있었을 것이다. “참 별 놈의 전차가 다 있다---”
어디서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만 하며 며칠을 궁리했지만 생각나는 전차는 없었다. 이러고 며칠이 흐르다가 잊혀질 때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기계화 학교의 간부라면 이 전차의 정체를 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114에게 문의하니 의외로 장성 기계화 학교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그 번호로 전화해보니 또 간단히 접속이 되었다. 인사과의 문정웅 대위가 그 전차의 정체를 예의 바르게 알려준다.
“그 전차 말입니까 ? 일본군의 최초 전차랍니다. 땅에 묻혀 있다가 발견되어 기증된 것입니다“
[89식 전차-박격포신처럼 짧은 포신이 두드러져 보인다. ]
일본군의 가장 오래된 전차? 나에게도 완전히 낯선 전차는 아니었다. 일본군의 최초 전차 89식 전차다. 89식이라면 1929년에 제식화 된 전차라는 말이다. 새삼 생각이 나서 기계화 학교에서 찍어 온 사진과 일본 육군 병기 도감 사진을 대조해보니 역시 89식 전차가 맞았다. 우리 국군 국방사와 전혀 관계가 없었기에 장성 기계화 학교의 전차와 연결해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