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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3 ] 강점기에 벌어진 질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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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3 ] 강점기에 벌어진 질곡의 역사


한강철교 설치이후 1916년 3월 지금은 한강대교라고 불리는 한강인도교가 착공되어 이듬해10월에 준공됨으로써 한강을 횡단하는 방법이 기존의 나룻배와 새롭게 등장한 철도 외에도 도보나 우마차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도교는 철교 바로 인근의 상류 측에 들어섰는데, 이로써 용산과 노량진은 서울의 최고 교통 요지가 되었다. 특히 노량진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지역은 한강 이남에 등장한 최초의 신도시이기도 했다.



[ 1918년 준공 직후 한강인도교의 모습 ]


1936년 서울의 동쪽 끝에 완공된 광진교를 제외한다면 연이어 붙어있던 한강철교와 인도교외에 이후 한강에 새로운 다리가 놓여 진 것이 무려 57년이 지난 1965년에 개통한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가 처음이었다. 이럴 정도로 오랜 기간 한강철교와 인도교가 홀로 존속하였으니 서울은 물론 우리의 근대사에서 차지하였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그곳에 담긴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 제2한강교(양화대교)의 준공직후의 모습

광진교를 제외한다면 양화대교는 무려 57년 만에 설치된 한강다리였다 ]


한강철교와 인도교가 탄생 당시의 모습과 비교하면 현재와 모양이 조금 다르다. 이른바 을축(乙丑)대홍수라 불리는 1925년 7월의 기록적인 물난리 때 많은 손상을 입은 후 복구되면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홍수를 기화로 교각의 높이가 좀 더 높아졌고 상판과 트러스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재건설되었다. 즉 현재 있는 교량들도 새롭게 건설된 것이지만 어느덧 90년이 넘었다.



[ 을측대홍수로 파괴된 한강철교 ]


여담으로 한강교량의 붕괴사고가 이외에도 4번이 더 있었다. 최초가 1950년 6월 28일에 있었던 폭파사건이었고 나머지는 1992년에 건설 중에 있었던 연쇄적으로 발생한 팔당대교와 신행주대교 붕괴 그리고 1994년에 있었던 기억에도 생생한 성수대교 사고다. 1950년의 붕괴는 전쟁 중에 고의로 벌어진 인위적 행위였고 1992년은 건설 중 사고로 1994년은 관리 부실에 의한 참사였다.



[ 망신이 되었던 1994년 성수대교사건 ]


여담으로 1925년에 있었던 을축대홍수에 의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총 피해액이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5퍼센트에 달할 정도였다니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을축대홍수에 의한 교량 유실은 변변한 치수용 댐 하나 없었던 당시 여건으로는 피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천재(天災)였다. 하지만 나머지 붕괴사고는 순전히 고의 또는 인재에 의한 것이었다.



[ 1925년 을측대홍수 당시의 노량진 ]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우리 땅을 강점하여 대륙 진출을 위한 군수기지화에 혈안이 된 일제가 193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중국침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경부, 경의선에 의한 물자 수송량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중일전쟁이 본격화되자 일제는 1936년 경부선, 1938년 경의선의 복선 공사에 착수하였다. 경인선보다 먼저 복선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인천보다 부산을 통해 일본과 연결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는 의미다.



[ 서대문 부근에서 행진 중인 일본군의 철도가 경의선으로 추정된다 ]


이로써 이들 철도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복선철도들로 확장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의 대외 팽창 욕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다보니 건설 과정에서 당연히 많은 수탈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시기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여 엄청난 자재난이 발생한 때여서 집에 있던 숟가락까지 공출하고 장호원선이나 경북선처럼 일부 지선 철도를 폐쇄하여 철재를 전시용으로 돌렸을 정도였다.



[ 자재난에도 불구하고 한강철교 C교가 완공된다 (앞이 D교 뒤가 C교) ]


그런데도 불구하고 1944년 이들 철도의 확장이 모두 완공되었다. 그 만큼 대륙침략에 대한 일제의 굳건한 의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때 한강철교도 기존의 A, B교와는 별개로 오늘날 가장 하류에 있는 복선의 C교가 건설되었다. 이후 1995년 경인선 복복선 확장의 일환으로 D교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설계 도면이 오래전 소실 된 C교를 그대로 역설계 복제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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