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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떠나는 호국안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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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떠나는 호국안보여행


‘제주도 여행’ 하면 푸른 바다와 반짝이는 별, 독특한 암석 등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자연경관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겁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제주도는 사실 한국 역사의 가장 파란만장한 순간들을 겪은 아픔의 섬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야말로 호국안보 정신을 되새길만한 군사 유적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인데요. 오늘은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 대신 섬에 남겨진 아픈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며 희생된 이들을 추도하고 그 상처를 보듬어보는 제주도의 호국안보여행지를 소개합니다.


태평양전쟁의 상흔,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


먼저 살펴볼 곳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입니다. ‘오름’은 제주도에 있는 기생화산을 일컫는 지역 방언인데, 이곳은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가마오름에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군이 구축해 놓은 방어 시설입니다.


태평양전쟁 전범인 일본은 전쟁 말기에 이르러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1945년 초 ‘결7호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일본군은 이 결7호 작전의 성공을 위해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해, 제주 전역에 방호벽과 동굴진지 등을 조성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가마오름 동굴진지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제주도에 제58군사령부를 신설·주둔시키고 96사단, 111사단, 121사단, 108여단 등을 만주 및 일본에서 데려와 배치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종전까지 제주 주둔 일본군은 무려 7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가마오름 일대는 111사단 예하의 243연대본부가 주둔하고, 주변에는 기마부대와 탱크부대 및 야전병원 등이 배치됐습니다.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내 가마오름 동굴진지를 둘러보는 해군제주방어사령부 장병들

(사진 출처: 국방 일보)


현재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제주도 내 일제 군사 유적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합니다. 총 길이는 2㎞에 달하며, 출입구도 33개나 되는 미로형 요새입니다. 1·2·3층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사령관실로 추정되는 방과 회의실·숙소·의무실 등도 갖추고 있죠. 


그 내부가 워낙 복잡해 아직 정확한 내부 구조 및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제주도를 대체 기지로 삼았던 침략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08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곳,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 일대에는 이 지역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이 조성돼 있습니다. 평화박물관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됐던 고(故) 이성찬 옹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아들인 이영근 관장이 1996년 발굴에 나서면서부터 그 터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 관장은 가마오름 일대 1만2000여 평을 매입한 후 2004년 평화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에 전시된 일본군 전투 장비와 군수 물자 (사진 출처: 국방일보)


박물관에는 동굴진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과 민간인들로부터 수집한 일제 관련 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전시관-지하 요새-가마오름 전망대- 청수곶자왈습지로 이어지는 평화박물관 탐방 코스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평균 10만 명이 넘게 관람하는 인기 안보 교육 장소로 자리매김했지요. 이곳 평화박물관에서는 일제가 자행한 인권 유린과 침략 전쟁의 비참함, 그리고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쟁 신병 양성소,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6·25전쟁 중의 제주시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사진 출처: 국방 일보)


한국 전쟁 때 신병 훈련소인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1훈련소는 1951년 중공군 개입으로 ‘1·4후퇴’를 겪은 후 1월 22일 서귀포시 대정읍에 들어서 신병을 대규모로 양성해 서울 재탈환 등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던 곳입니다. 전쟁 중 사단별로 신병을 훈련시켰던 방식에서 벗어나 최후의 거점인 제주도에서 안정적으로 장병을 배출할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죠. 


제1훈련소가 1956년 문을 닫을 때까지 5년 동안 약 50만 장병이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전시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건물을 지을 겨를이 없어 천막으로 만들어진 막사에서 많게는 10만 명에 달하는 장병들이 함께 생활하며 고된 훈련 시절을 보냈습니다. 미군의 커리큘럼에 따라 소총병 기초 훈련을 실시하고, 보병 외의 병과는 육지로 나온 뒤 각 병과학교에서 추가 교육을 받고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지금도 훈련소 정문 기둥과 지휘소, 의무대 등이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주도 모슬포 강병대교회

(사진 출처: 국방 일보)


특별히 당시 제1훈련소가 있던 자리에 건립된 강병대교회가 현재까지 남아 역사의 중요한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강병대교회는 장도영 훈련소장이 장병들이 정신적 양식과 종교적 생활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1952년 9월 준공한 교회입니다. 제주 현무암을 사용해 오직 공병대의 기술로 지어진 이 교회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고된 훈련 중 마음의 안정을 찾고 용기를 키웠습니다. 


당시 모슬포로 피난 온 신자들도 마음을 의지했고, 미군들도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1965년 교회는 공군 30단 308부대로 편입돼 기지교회로 발족했고, 오늘날엔 인근 공군부대, 해병부대 장병과 가족들이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국군 사적지 중 유일하게 양호한 상태로 원형이 유지돼 보존 가치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2002년 5월엔 등록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삼별초 최후의 항쟁지,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한편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한 ‘항파두리성’은 고려 시대 몽고에 저항한 삼별초가 머물던 군사 기지입니다. 1231년 몽고가 쳐들어오자 고려 왕조는 강화도로 천도해 40년 동안 원나라에 저항했지만, 결국 1270년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삼별초는 항복에 반대하고 계속 싸울 것을 주장하면서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기지를 진도로 이동하고, 다시 제주도로 옮기게 되는데요. 항파두리성은 바로 이때 삼별초가 군사력을 재정비하며 축성한 곳입니다. 토성으로 총길이 6km에 이르는 외성을 쌓고 안에 다시 석성으로 800m의 내성을 쌓은 이중 성곽이었으며, 각종 방어시설뿐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1274년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에게 최후 1인까지 저항하다 패배하며 성이 함락되고 말았지요. 


이후 1976년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97년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몽고군에 대항해 최후를 맞이한 삼별초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석 ‘항몽순의비’에 새겨진 제자(題字)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기도 합니다. 삼별초 대장 김통정 장군이 밟은 자리에서 솟아난 우물이라는 ‘장수물’, 귀족과 장교가 마신 샘물이라는 ‘옹성물’, 성 밖 서민과 병사들이 마셨다는 ‘구시물’, 화살 연습할 때 과녁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살 맞은 돌’,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된 ‘돌쩌귀’ 등 의미 있는 유적지들이 남아있습니다.  


제주도의 호국안보여행지를 둘러보면 우리 선조들의 깊은 애국심과 희생 정신,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는 안보 의식을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한번쯤 제주도 땅에 심어진 이러한 호국안보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제주도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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