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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참전 여자의용군 '이창애', '이인숙'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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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참전 여자의용군 '이창애', '이인숙' 할머니




육·해·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오늘날의 여군! 그런데 여러분, 우리나라 여군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 계시나요? 우리나라 여군의 역사는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여자의용군 교육대’ 창설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당시 18세~25세의 여성들로 꾸려진 여자의용군 교육대는 다친 병사를 간호하거나,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문 공연을 펼치는 일을 했습니다. 


이처럼 전쟁에서 숨은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여자의용군 교육대. 오늘은 이곳에서 활동했던 이창애, 이인숙 할머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꽃다운 나이 19살. '이창애' 할머님은 총성이 울려 퍼지는 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두려움보다 자신이 필요한 곳이란 생각이 앞섰습니다.


여군에 들어간 이창애 할머님은 총성만이 울려 퍼지던 전장에 클라리넷과 색소폰의 멜로디를 더했고,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전쟁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인숙 할머님은 여성의용군 모집 소식을 듣자마자 여군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는 여군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라, "여자가 무슨 군인이냐."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여성의용군 모집 소식에 뜨겁게 북받쳐 오르는 가슴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를 전장으로 향하게 만들었죠.

 




밤낮없이 계속되는 훈련들... 여군이 되는 과정은 혹독함 그 자체였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수없이 많았죠. 하지만 이창애, 이인숙 할머님은 이 고된 훈련을 끝까지 견뎌내고 진짜 군인이 됐습니다. 




사납게 울려 퍼지는 총성은 호기롭게 입대를 자원한 이창애 할머님에게도 두려움이었습니다. 쉬이 잠을 잘 수도, 잠이 들어서도 안 되는 상황. 그렇게 19살의 소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전쟁을 견뎌내야만 했는데요.


이창애, 이인숙 할머님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피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였습니다. 여군 창설을 모르던 피난민들은 여자의용군을 향해 인민군의 포로라며 손가락질을 했죠. 나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이를 알아주는 이가 없는 상황이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여군이라는 꼬리표는 득보다 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창애, 이인숙 할머님은 여군이 되었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멈췄습니다. 하지만 이창애, 이인숙 할머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멈추지 않았고,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자부심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자가 무슨 군인이냐"는 비웃음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창애,이인숙 할머님. 그들은 말합니다. "나라를 지키는데 남자, 여자가 어디있느냐."라고 말이죠. 


총을 쥐고 싸운 이들만이 전쟁의 영웅이 아닙니다. 칼을 휘둘러야만 군인인 것도 아니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이창애, 이인숙' 할머님은 진정한 영웅이자 군인이었고, 지금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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