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은 과거 백인 정권이 통치하고 있을 때 흑백 인종 차별 정책 때문에 국제적으로 여러 제재를 받았었다. 특히 무기 수입에 제한이 심해서 남아공은 자주 국방 정책을 통해 방위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였다.
G-6
방위산업체들은 성능이 꽤 좋은 기관총에서 공격용 헬기까지 여러 신무기들을 독자 개발했다. [남아공은 핵무기까지 개발했다.]
G-5 견인포
남아공 특산의 무기중에 155mm 포는 가장 성공한 무기들 중 하나이다. 155mm포는 두 가지 모델로서 한 모델은 견인포인 G5, 다른 모델은 자주포로 G6다. 두 모델 다 포 자체는 같은 형이다.
G-6 자주포
이 포는 캐나다 GC-45포를 모델로 하여 개발되었다. 캐나다 출신으로서 전설적인 대포 디자이너인 제럴드 불 박사가 개발에 참여하였고, 포의 성능은 매우 뛰어났다. 특히 장거리 사격이 가능하고 명중률이 높았다. 포의 표준 사거리는 39.1km로서, 2001년 특수탄 발사로 53.1km의 장거리 기록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자주포 형인 G6는 특이하게 궤도가 아닌 6개의 바퀴로 주행한다. 적의 포격의 산탄이나 지뢰에서 방호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46톤이라는 상당한 자체 중량이 있다.
도로에서 80km의 속도로 주행이 가능하고 사막 지형에서는 30km가 가능하다. 연료 만충으로 700km의 거리를 주행할 수가 있다. 6명이 탑승하고 45발의 탄도와 50발의 장약을 적재한다. G5견인포와 G6자주포 둘 다 실전에 투입되어 그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백인 정부 시절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인접국인 앙골라에 내전이 벌어졌다. 이 내전은 1975년에 시작되어 2002년까지 계속되었다.
친공적인 FAPLA[MPLA]와 친서방적인 UNITA 두 파벌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FAPLA를 지원하던 소련은 동맹국인 쿠바의 대규모의 군대를 앙골라로 투입하여서 UNITA군을 압박하였다. 자신들이 지원하던 UNITA군이 밀리자 남아공은 1987년 8월 4일 1차 작전인 모두러 작전을 개시했다. 앙골라 전쟁 첫 작전에 기계화 1개 대대를 앙골라로 파견해서 UNITA군을 구해냈다. 이후 병력을 증파하여 네 단계의 작전을 펴서 남아공은 FAPLA군과 쿠바 양군의 연합군 남하 침공을 막아내고 앙골라 남부에서 퇴각시켰다.
G-6
이 작전에 11월부터 두 개형의 포 G5, G6들이 다 참전했다. 남아공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은 앙골라 남부 도시 쿠이토 쿠아나베일시 공방전이었는데 남아공의 155mm 포들은 11월 중순까지 이 도시의 주요 거점을 장거리 사격으로 거의 파괴하다시피 하였다. 20-30 km 밖에서 날리는 장거리탄에 FAPLA는 속수무책이었다.
장거리 포 사격에 시의 외곽에 있던 한 공군 기지 부대가 후방으로 일시적으로 긴급 철수하기도 하였다. 다음 달인 12월에 G6는 쿠이토 쿠아나베일의 교외 군 비행장에서 세계 포병사에서 기록해줄만한 아주 기발한 전과를 기록하였다. 남아공 군대는 이 비행장이 관측 가능한 인근에 포병 FO를 비밀 투입했다. FO가 관측하고 있던 중 FAPLA 공군 소속 미그 21 1개 편대 4기가 부산하게 출격 준비 중임을 발견하고 포대에 즉시 표적을 통보하고 포격을 요청했다.
G6가 포격을 준비 중일 때 이미 일부 미그기들은 활주로에서 이동 중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장거리에서 일제 사격으로 발사한 단 한 번의 포격은 미그기 편대 사이에 떨어져 4기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현재 G6는 남아공화국 육군에 43량, 그리고 아랍 에미레이트에 78량, 예멘 23량이 수출되어 사용되고 있다. 남아공은 G6형의 성능에 만족했는지 현재도 계속 성능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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