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537

경찰에도 혜산진 부대가 있었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1950625일 남한을 침공했던 김일성 집단들이 유엔군의 신속한 개입과 국군의 반격에 쫓기어 38선을 넘어 도주했을 때 이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국민 감정은 이 침략 집단에 대한 복수의 적개심으로 가득했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혜산진에 돌입하는 미 M-4 셔먼 전차

 

 

말하자면 침략자 김일성 일당을 멸망시키고 북한 전역을 수복하자는 복수심에 불탄 국민들은 북진 통일을 외쳤다.반격에 나선 국군에게 내린 국민들의 작전 명령은 북진 통일이었으며 작전의 종결은 압록강 도착이었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압록강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미군 장성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10군단장 아먼드 소장, 오른쪽이 7사단장 바 소장

 

 

 

이에 각 사단이 경쟁을 벌였는데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민족이 내린 작전 명령을 그대로 달성한 부대는 두개 부대였다. 하나는 평안도 쪽에서 진격한 6사단 7연대다. 다른 하나는 함경도 쪽에서 진격한 3사단 22연대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초산과 혜산진 - 두개의 둥근 원으로 표시된 곳

 

 

6사단 7연대는 전 연대가 노획한 북한군 차량으로 쾌속 진격하여 1026일 평북 초산군의 압록강가에 도달하였다3사단 22연대는 미군 7사단에 배속되어 북진, 비교적 손 쉽게  함남 혜산진에 도달하였다. 혜산진은 초산보다 더 상류였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압록강에서 촬영한 미군들

 

 

민족의 작전 명령을 달성한 두개 부대는 이를 무상의 영예로 삼아 부대명을 진격했었던 압록강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초산 부대[6사7연대]와 혜산진 연대[3사단 22연대]라는 독립 부대명이 그것들이다그러나 민족의 작전 명령을 수행하여 압록강으로 진격한 부대가 국군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얼어붙은 압록강

 

 

대다수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경찰 자체에서도 잘 모르지만 미 7사단에 배속되어 압록강 상류 혜산진까지 진격했던 전투 경찰대가 있었다그 비화를 소개한다. 국군이 북한군에게 밀려 낙동강까지 내려 왔을 때 같이 후퇴한 경찰들은 군부대보다도 훨씬 심한 고생을 했다.

 

군부대는 미군의 지원이 있었고 정부에서도 챙겨주어 보급이 그런대로 이루어졌지만 경찰들에게는 보급 체계가 시원치 않아 급한대로 밥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그래서 내무부 장관인 조병옥 박사는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에게 부탁, 각 미군 부대에 경찰들을 배속시켜 보급 문제를 해결하였다미군에 배속된 경찰들은 첩보 활동, 포로 심문과 관리, 경비 등의 역할을 열심히 해서 미군들로 부터 그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전북 도경의 전투 경찰대 - 장비 보급이 좋아진 전쟁 후반기의 사진이다.

각자가 쓰고 있는 철모가 이를 말해준다. 미군에 배속될 때 철모 지급같은 것은없었다.

 

 

 

내무부 치안국은 미군 7사단의 요청으로 미군 배속의 특별 전투 경찰대를 편성해 미군과 같이 북진시켰다북진하는 전투 경찰대가 조직되었던 것은 낙동강에서 전투가 치열하였던 815일 부산 경찰서에서 였다부대 편성은 밝힌대로 미 7사단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부대 인원 편성은 경기도 경찰국 100, 충청북도 경찰국 100, 그리고 경남 경찰국 100명이었다. 부대에 경찰 화랑 부대라는 이름이 주어졌지만 통칭 유엔 경찰 부대로 통했었다.

 

박정준 총경이 사령관인 화랑 부대는 3개 중대로 편성되었다. 1중대장에 이근복 경감, 2중대장에 전장한 경감, 3중대장에 문학동 경감이 임명되었다부대는 바로 미군을 따라 일본에서 훈련을 받고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다그 후 다시 남하, 부산에서 미 해군 선박에 승선해 바다로 북상해서 1029, 함경도 이원에 상륙하였다.

 

경찰 부대는 여기서 미 7사단 연대들을 따라 북진했다. 3중대는 장진호로 진격하였고, 1중대, 2중대는 3사단이 주둔한 홍군으로 진출하여 여기서 도로 경비 등의 미군 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이파리를 거쳐 1121일 압록강 상류인 혜산진에 도착하였다. 혜산진에 먼저 들어간 부대는 전장한 경감이 지휘하는 2중대로서 충청북도 경찰국 소속 병력이었다고 한다.

 

이 혜산진 방향에는 중공군이 아직 출현하지 않았었다. 평안북도 초산의 6사단 7연대는 1026일에 압록강에 도달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하다가 공격당해 전 연대가 와해된 것에 비하면이곳은 아직 안전했다고 하겠다이후 부대는 흥남으로 철수하여 부산으로 귀환한 후에 해산하고 각기 임지로 돌아갔다혜산진에 처음으로 들어갔던 전투 경찰 중대를 지휘했었던 전장한 경감은 후에 충남 경찰청장을 역임하였다자그마한 체구에 달변의 소유자로서 똑똑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고 한다.

 

비록 미군의 지원 업무를 수행하며 압록강에 진격했다고 하지만 민족의 숙원인 북진 통일의 종착점인 압록강에 도달한 것은 경찰의 호국 전투 활동이 제주도에서 북쪽 압록강에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리 뿌려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별로 기대를 하지않고 충북 경찰청에 문의해보니 역시 선배들의 이런 자랑스런 전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군에서는 압록강 진격의 명예를 혜산진 부대라는 명명으로 길이 지키고 있지만 행정 조직화한 경찰에서는 다른 전투 경찰사와 함께 이 전공은 먼 망각의 기슭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저작자 표시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비영리
Image may be NSFW.
Clik here to view.
변경 금지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53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