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핵잠수함의 탄생 [ 3 ] 잠시 멈춘 진화
1954년 세계 최초의 핵추진잠수함인 SSN-571 노틸러스(Nautilus)가 배치되는데 이 잠수함의 등장은 한마디로 사변이었다. 그동안 잠수함은 디젤기관을 가동하여 발전기를 돌리고 여기서 얻은 전력을 축전지에 충전하여 동력원으로 사용하였고 지금도 재래식 동력 잠수함은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내연기관인 디젤엔진을 가동하려면 필요한 산소를 얻기 위해 주기적으로 물위로 부상 하여야 했다.
[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SSN-571 노틸러스 ]
잠수함이 방어에 가장 취약한 시기가 바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때인데, 상황에 따라서는 물위에 적들이 우글거리더라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없이 부상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은밀히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스노켈(Schnorkel) 등의 장비가 개발되었지만 스노켈도 사용하기위해서는 최대한 수면까지 접근하여야 했고 종종 흔적을 바다 위에 남겨 초계에 포착되기도 하였다.
[ U-보트에 장착 된 스노켈 ]
핵추진잠수함의 등장은 이러한 잠수함의 고질적인 약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주었던 것이다. 노틸러스는 1957년 2,000여 시간을 잠수한 상태로 미주 대륙을 한 바퀴 도는 총 60,000마일의 항해를 시도하였고 사상 최초로 북극점을 횡단하는 뛰어난 항해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한 성과는 당연히 핵추진이 잠수함의 은밀성을 배가 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 빙산 밑을 통하여 북극점을 횡단하는 노틸러스 ]
만일 이러한 핵추진잠수함에 핵무기를 탑재하여 몇 개월이고 바다 속을 틀어 박혀 은밀히 항해할 수 있다면 가상 적국들이 이를 더할 수 없는 위협으로 느끼리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였다. 거기에다가 언제, 어디서 불쑥 물위로 튀어 올라와 즉시 발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다면 그것만큼 확실한 전략무기도 없었다. 한마디로 레굴루스와 핵추진잠수함의 결합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레굴루스를 장착한 SSG-574 그래이백 ]
그동안 레굴루스를 장착한 재래식 잠수함이 SSG-574 그래이백(Grayback), SSG-577 그라울러(Growler) 등으로 늘어나 미국은 본격적인 핵잠수함시대를 열어 놓은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노틸러스의 성공을 발판삼아 드디어 1959년부터 핵추진을 갖춘 SSGN-587 핼리버트(Halibut)에 레굴루스가 장착됨으로써 미 해군이 진정으로 꿈꾸던 전략핵잠수함 시대의 개막을 열었다.
[ 레굴루스를 발사하는 최초의 핵추진 전략 핵잠수함 SSGN-574 핼리버트 ]
그런데 레굴루스는 바로 여기서 진화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레굴루스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우습게도 잠수함의 은밀성을 포기하여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레굴루스는 잠수함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상부에 설치 된 캐이브(Cave)를 개방하고 목표물을 향해 조준시킨 후 발사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때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작전을 펼쳐야 하는 잠수함들에게는 극히 위험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 레굴루스는 잠수함이 부상한 후 캐이브를 개방하고 발사된다 ]
즉, 은밀하게 핵미사일을 운반 할 수는 있지만 발사 시에는 어쩔 수 없이 노출하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중에서 레굴루스를 발사하거나 아니면 레굴루스의 사거리를 늘려 위험한 적진까지 가지 않고 안전지역에서 발사를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역설적으로 레굴루스 개발의 주춧돌이 되었던 제트추진방식의 순항미사일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였다.
[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은 전략 핵무기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
더해서 육군과 공군은 IRBM, ICBM 같은 장거리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하여 폭격기나 잠수함처럼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진 근처까지 다가가지 않고도 미국 본토에 가만히 앉아 적진을 직접 전략타격 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였다.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폭격기와 잠수함과는 전혀 다른 핵 투발 플랫폼의 등장을 의미하였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전략 무기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기였다. ( 계속 )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