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문에 탄생한 경제체제 [ 2 ] 왜 전쟁이었나?
1997년 환란이 있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IMF는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겨우 알고 있을 정도의 국제기구였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단어였고 사실 지금도 많이 들어서 단지 귀에 익숙할 뿐이지, 정작 IMF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 기구인지 제대로 아는 이들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보통의 사람들이 직접 IMF와 관련을 맺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워싱턴 DC에 자리 잡고 있는 IMF 본부 ]
IMF는 각국의 출자로 만들어진 기금을 이용해 국가 간 거래에 통용되는 단기적인 통화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 국제금융기구인데, 1997년의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에 대한 긴급 자금 지원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쉽게 설명하자면 세계를 하나의 경제 단위로 놓고 가정할 때 중앙은행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 1997년 12월 3일 조인식 당시의 모습흔히 이날을 경제 국치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
그래서 IMF를 종종 세계은행(World Bank)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는 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국제부흥개발은행)와 혼동하기도 한다. IBRD도 IMF와 함께 탄생한 국제금융기구여서 서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장기 개발 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하므로 기능이 전혀 다르다.
[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는 IMF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탄생하였다 ]
한국은행이 국내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일단 직접 거래할 일이 없기 때문에 보통의 국민들은 그 존재를 체감하기 힘들다. 따라서 가맹 국가들을 대상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IMF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따라서 IMF가 뭔지도 모르다가 이제 거의 모든 한국인이 아는 단어가 될 정도가 되었으니 당시 우리 국민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 구조 조정 과정 중 물러나게 된 직원 가족들을 위로하던 자리 ]
당연히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것은 인지상정이다. 비록 경제주권을 내주었다는 자괴감이 들 만큼 치욕스러웠지만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는 행위는 생각보다 흔하다. 한때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영국도 1970년대에 IMF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사실 세계 경제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고 외환 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이런 일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 IMF로부터 긴급 자금을 지원받은 1976년 영국의 모습 ]
그런데 이처럼 너무나 힘겨웠던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IMF가 인류사 최대의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다. 전쟁과 국제금융기구가 무슨 관련이 있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IMF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사실 전쟁은 경제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 전쟁은 경제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릴 것이 확실시되자, 왜 이렇게 거대하고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다각도로 분석하게 되었다. 먼저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 이러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도 궁리했다. 위정자들은 위정자들대로 학자들은 학자들대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만큼 이번 전쟁은 너무나 무서웠다.
[ 전쟁의 끝이 다가오자 왜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
당시 경제학자들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해답을 찾으려고 들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제2차 대전이 발발한 것이라 본 것인데 그러다 보니 "왜 협상이 아니고 전쟁을 선택했는가?"라는 원론적인 문제에서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사에서 전쟁이 멈춘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전쟁보다는 대화와 타협이 좋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