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단 상사가 전방으로 간 까닭은? -2-
그러나 실력이 일천한 나는 거기에 대한 답을 금방 얻을 수가 없었다. 그 해답은 훨씬 뒤에 채명신 장군이 썼던 자서전에서야 읽을 수가 있었다. 자기가 초급 장교 시절에 어느 책에서 수확한 명구인 골육지정(骨肉之情)이라는 네 글자를 리더십의 핵심으로 삼아 군인으로 보낸 평생동안 이를 실천했다는 것이었다.
* 이것은 최강 연대의 자리를 두고 7연대와 경쟁하는 3사단 18연대 [백골부대]가 추구하는 명구이기도 하다.
나는 뼈와 살을 나눈 가족같은 애정이라는 뜻에서 혈육지정(血肉之情)이라는 가족 관계의 말을 떠올리고 그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정이 우리 군과 한국 사회의 리더십의 기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임을 터득했다. 즉 '가족애의 리더십'이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가부장적[Paternalistic]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이것보다 리더의 눈높이가 조금 낮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유교의 윤리아래 발달한 우리 동양 사회는 가족간의 유대가 아주 끈끈하다. 엄부(嚴父)와 자모(慈母)로 자리매김한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은 가없이 각별하다. 나는 옛날 ‘중대(中隊)가정’이라는 캠페인이 군내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군대 지휘관의 리더십이 바로 지향할 것이 이런 동양식 가정의 유대를 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슴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가족애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어떻게 실천하는 것일까?
나는 이 방법에 관해서 통일교가 미국에 뿌리를 내릴 때의 한 현상에서 보고 느낀 바가 있었다. 통일교가 미국 사회를 파고 들어갈 때 적극 호응한 것은 미국의 젊은이들이었다. 젊은이들이 대거 통일교에 들어가 거리에서 꽃이나 초를 팔고 아예 가출하여 합숙소에 들어가고 해서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이 소동에 왜 젊은이들이 통일교에 몰리는가 하는 것을 연구한 미국 대학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있었다.
미국의 부모는 거의 전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식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자상한 부모 애정의 밀도도 동양 문화보다도 떨어진다. 여기서 교수는 부모와 관계가 소원한 미국 젊은이들이 통일교에서 베푸는 동양적 가부장적인 사랑에 흡인당해서 자기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열광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말하면 “To be cared."의 심리를 미국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통일교는 젊은 신자들에게 부모보다도 더 자상한 사랑을 베푸는가 하면 공부를 안 하거나 음주 흡연등의 나쁜 버릇 등에 대해서는 엄하게 나무란다는 것이었다. 문선명 총재가 기독교를 변형시켜서 통일교를 만들었지만 그가 베푼 리더십은 그가 어릴 때부터 보고, 받고, 체질화 된 유교적 가족애로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파고든 것이 오늘날 통일교의 미국 기반이 되었다. 나는 여기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가족애의 실천은 ‘자상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오늘 군에서 부모와의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설치한 군 카페나 밴드가 바로 이런 '자상한 가족애'의 실천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즉 부모도 자식을 보고싶어 하는 갈증을 해소하고 자식도 심리적 안정을 찾아 군무에 몰두하게 하며 여러 은폐될 부대의 부조리를 근절하는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자상한 리더십은 기본적인 애정도 있어야 하지만 무척 손이 가는 실천력이 요구된다.
내가 바로 앞편에 소개했던 번영회장, 원사가 썼던 글에서 강하게 느꼈던 것이 바로 그런 ‘자상한 가족애’였다.
이 주임 원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이 분은 내가 2013년 철원 7연대 압록강 진격 행사에 참석했을 때 만난 분이었다.
2013년 10월 당시, 나는 7연대 압강강 진격 행사 때 원사들이 여러 명이 모여 있는 곳에서 눈에 띄는 인물 한 명을 발견하였다. 특전단의 공수 마스터 휘장에 UDT 훈련 기장을 부착한 원사였고 태권도가 4단인 무술의 고수였다. 나는 저런 사람이 특전단이 아니라 왜 이런 최전방 보병 부대에 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눈길이 자주 갔었다. 그리고 그는 특수전의 마크를 부착한 것과 달리 이 원사가 인상은 완전 시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처럼 인자한 모습이었다. 수더분한 그는 그 때는 말도 별로 없어서 원사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든 원로 원사라는 인상을 주었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2014년 10월 달에 7연대 행사에 다시 한 번 찾아 갔다가 그 시골 고등학교 교장님 인상의 원사와 다시 만나 인사를 했고 그가 공수 특전단에서 근무하다가 10년 전에 6사단 7연대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바로 3대대 주임 원사, 번영회장인 양동한 원사다.
(오른쪽의 양동한 원사와 왼쪽의 7연대 주임원사 조규진 원사 - 더 젊어 보이는 조규진 원사가 6살이 위다.)
그 때의 원사임을 알게 된 나는 양동한 원사가 대대 카페에 남긴 전화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정말로 전화가 될까하는 염려도 되었지만 바로 양원사가 받았다. 양원사는 행사장에서 만난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 뒤에 그와 나는 여러 번 통화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점점 그가 장병들에 대해 보통 군대 지휘관들이 갖는 그런 단순한 감정 이상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바로 육군에서 소통을 위해 개설한 카페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카페 활동은 주로 전화를 통해 유입되는 부모들의 고충 처리로 요약된다. 전화 두 대로 접수되는 부모님들의 청원은 주로 몸이 약한 자식에 대한 배려를 부탁하거나 전화가 없으니 걱정된다는 것들이거나 특별 외출이나 휴가를 부탁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철책선에 근무하다가 7연대 3대대로 전속된 병사와 애로 사항 면담을 마치고)
내가 우려했었던 도를 넘는 극성을 부리는 부모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지 특별 외출이나 휴가를 조르는 어머니는 가끔 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외출이나 휴가 요청은 군의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는 원칙적인 답을 주어야 하나 부모들의 다른 청원들은 해당 군부대의 중대장이나 행보관에게 연락해서 해결해주고 후에 부모에게 그 결과를 꼭 알려주는 피드백의 기능을 충실하게 하였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