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지상군 주둔약사 [ 4 ] 제9군단, 제10군단, 제24군단
제9군단은 1940년 6월 워싱턴 주 포트 루이스에서 창설되어 태평양전선에서 활약했다. 종전 후 일본 센다이에 주둔하다가 1950년 3월 해체되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리노이 주 포트 셰리든(Fort Sheridan)에 있는 제5군사령부를 기반으로 하여 1950년 8월 10일 재창설되었고 한국으로 사령부를 이동하여 낙동강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북진 시에 미 8군의 예비대가 되어 수복지역을 평정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 9군단은 6.25전쟁이 발발하며 미 본토에서 긴급 재창설되었다 ]
중공군의 참전이후 주로 중부전선을 담당하였는데 중공군의 공세가 집중되어 격전을 많이 치렀다. 휴전 후 1956년 11월 일본 오키나와로 사령부를 옮겨 한국 주둔사를 마감했다. 이후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현재는 예비부대로 행정지원적 성격이 강한 미 제9관구 사령부로 그 명맥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9군단은 6.25전쟁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예하부대 예·배속 변경이 이뤄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전쟁 중반기 이후인 1952년 9군단 지휘부 ]
1950년 9월 ― 2사단, 25사단
1951년 1월 ― 1기병사단, 24사단, 1해병사단, 187공수연대, 국군 6사단
1951년 4월 ― 1기병사단, 7사단, 24사단, 국군 2사단, 국군 6사단
1952년 1월 ― 7사단, 45사단
1952년 3월 ― 2사단, 7사단, 40사단, 국군 2사단, 국군 3사단, 국군 수도사단
1953년 1월 ― 3사단, 국군 수도사단, 국군 9사단
[ 의정부 지역에서 작전을 펼치는 9군단 소속 전차부대 ]
제10군단은 1942년 5월 텍사스의 셔먼(Sherman)에서 창설되었고 제6군의 예하부대로 태평양전역에서 활약했다. 종전 후 일본 점령군으로 주둔하고 있었으나 1946년 1월 해체되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12일 일본에서 긴급 재창설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후 흥남철수작전처럼 6.25전쟁 초기에 있었던 가장 극적인 순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 10군단은 6.25전쟁 초기에 가장 극적인 역사를 쓴 부대다 ]
특이하게도 10군단은 1950년 12월 24일 흥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8군과 독립된 별도의 지휘체계에 따라 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정체되고 난 후에는 주로 중동부 전선을 담당하여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휴전 후 더불어 1955년 4월에 3개 군단 중 제일 먼저 철군을 단행하였고 1968년 3월 정식으로 해체되었다. 다음은 10군단 예하 부대의 변화내용이다.
[ 가장 우측이 인천상륙작전 당시 10군단장이었던 알몬드 ]
1950년 9월 ― 7사단, 해병 1사단
1950년 10월 ― 3사단, 7사단, 해병 1사단, 국군 2사단, 국군 5사단, 국군 8사단
1951년 4월 ― 2사단, 해병 1사단, 국군 2사단, 국군 7사단
1952년 3월 ― 25사단, 해병 1사단, 국군 6사단
1953년 1월 ― 40사단, 45사단, 국군 7사단, 국군 12사단, 국군 20사단
[ 북진 당시 함경남도 이원에 상륙 중인 10군단 예하 7사단 ]
제24군단은 1944년 8월 하와이의 포트 쉐프터(Fort Shafter)에서 창설되었다. 우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한반도 38선 이남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1945년 9월 8일 예하부대인 7사단이 상륙하면서부터다. 당시 군단장이던 하지(John R. Hodge)는 이후 군정장관이 되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전까지 한국을 통치했다.
[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과 함께한 하지 미 24군단장 겸 군정장관 ]
24군단은 6사단, 7사단, 40사단으로 구성된 약 7만 명 규모였는데, 1949년 6월 30일 한반도에서 철군하였다. 24군단은 한국에서 철군하였던 바로 그해 미국 본토에서 해체했고 6.25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다만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던 1968년 재창설되어 아시아로 돌아왔다가 1972년 다시 해체되었다. 만일 북한의 남침이 없었다면 한국에 주둔하였던 최상급 미군 부대로 기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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