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단 상사가 전방으로 간 까닭은? -3-
양원사가 경험했었던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몇 달 전에 있던 한 병사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었다.
양원사와 대대원들
한 ‘관심 병사’가 있었다. 그는 집단생활에 영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부대 간부들이나 전우들이 잘 대해주어서 제대 6개월을 남겨둔 시점까지는 별탈없이 근무해왔었다. 그런 그가 전역 6개월을 앞둔 시점에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했다. 양원사와의 면담에서 그는 도저히 더 이상 군 생활을 못하겠으니 제발 ‘현역 부적응 병사’으로 지정해주어 빨리 군을 떠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6개월만 더 근무하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시점에 이해하기 힘든 노릇이었다. 아무리 달래도 그 병사의 각오는 단호했다. 병역 부적격자로서 군을 떠나게 되면 그 기록은 그의 일생에 큰 결격사유로 작용하겠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원사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노련함이 이 순간에 빛을 발휘했다. 양원사는 이 병사의 심리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아챘고, 만약 윽박질러서 억지로 말린다면 그는 폭력이나 탈영이나 자해, 심하면 총기 난동을 부릴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양원사는 먼저 병사의 어머니와 긴밀히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기의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다.양원사는 그 뒤 병사를 불러서 은근히 말했다.
“자네가 군대가 싫어서 떠나겠다면 할 수가 없지, 상부에 자네 부적응 판정 제대 신청을 해야겠어. 허락이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릴꺼야. 기다려야 돼.“
그 친구는 곧 지긋지긋한 군대를 떠나서 그리운 사회로 돌아간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좋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양원사는 가급적 시간을 끌면서 이 병사가 평상심을 찾았는지 살폈다. 두 달이 지나서 그는 병사를 불렀다.
“ 야! 어떡하지? 위에서 네 전역이 불허되었는데......”
크게 낙심하는 그를 양원사는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제 단 4개월 남았다. 단 4개월을 못 기다려서 신세 망칠래? 부적격자로 제대하면 그게 기록에 남고 취직은 물론 결혼할 때도 문제가 돼. 또 너만 그렇게 된다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네 자녀가 군인이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면 아비인 너의 현역 부적응 제대가 문제가 될 수도 있어. 그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애비의 과거를 뒤집어 쓰냐?“
그간 어머니에게서 간절한 호소를 듣고 마음이 흔들리고 있던 그 병사는 양원사가 날린 끝내기 한 방의 설득에 “4개월 그냥 버티고 명예 전역하겠습니다.”하고 체념했다. 모군[母軍]합동 작전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 병사는 현재 제대를 앞두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양원사 가족
양원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 나는 양원사의 신상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에게는 자상한 가족애를 베푸는 품성을 형성하게 했던 성장 배경이 있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상이 용사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빈곤과 함께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가족애가 그의 리더십에 토대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전남 순천이 고향으로 상이 군인인 아버지와 부지런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이신데, 2사단 소속으로 오성산 전투에서 기관총 사수로 전투 도중 수류탄에 맞아 다리와 허벅지에 12개의 파편을 평생 담고 살았다. 보행은 간신히 가능했으나 힘든 농사일은 무리였다.
아버지가 상이군경에게 지급하는 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그가 어렸을 때는 집안 생계를 버틸 수준이 될만큼 충분한 액수가 아니었다. 시골에서 먹고 살 길은 해뜨기 전부터 해진 후까지 힘들게 농사일을 하는 길 밖에 없었다. 건강하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여자의 몸으로 힘든 농사일의 대부분을 해내었다. 그래도 겨우 먹고 살기만 겨우 가능한 수준이었다.
양원사에게 형이 있었다. 집안의 장남이자 양원사와는 띠 동갑, 12살 연상의 형이었다. 형과 양원사는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도와 어렸을 때부터 집안 일을 도왔다. 형이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집안은 가세가 너무 어려워 도저히 장남인 그를 중학교에도 보낼 형편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과 형은 눈물을 머금고 진학을 포기하였고 형은 그 후 집안 일을 도와 경제를 일구어 갔다
세월이 흐르고 집안 사정도 조금은 나아져서 양원사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는 형의 희생과 부모의 헌신으로 잘 교육받고 있다는 생각에 고맙고 미안한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도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에게 대학까지 보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장남인 형이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자기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으니 이제 집안의 짐도 덜어 드릴 겸 자기 길을 찾아가야 할 듯 했다. 양원사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고졸학력으로 이 사회에서 좋은 직장을 찾기가 힘들었다. 양원사는 학교에서 배운 태권도를 바탕으로 도장 사범으로 근무하며 인생 진로를 고민하였다..
이러고 저러고 하면서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형이 말했다.
"공수 특전단에서 부사관을 모집하고 있더라. 너 한번 지원해봐라.”
그렇지 않아도 군에 갈 나이가 되어서 병역이라는 문제를 관심있게 생각하고 있을 때라 형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 군인을 평생 직업으로 삼아볼까?”
그러나 평범한 농촌의 젊은이었다가 느닷없는 국가의 명령으로 원하지도 않았던 전선에 나가 부상을 입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사는 아버지가 군인의 길을 가겠다는 나의 결심을 허락해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양원사는 마음을 다져먹고 아버지에게 자기의 결심을 이야기 해보았다. 아버지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래! 남자로서 호국의 직업에 들어가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지. 한번 잘 해봐라! “
양원사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가 평생 짊어지고 살고 있는 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아버지는 그 고통을 국가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다가 입은 명예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