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유해발굴 증언] "그 때 내 전우를 마지막으로 본 곳은..."
하얗게 서리가 내린 머리칼, 세월의 나이테가 깊게 새겨진 얼굴과 손.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듯 마음과 달리 느리기만 한 움직임.....
그러나, 그 때를 되새기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만큼은 그 때의 그 청년....
빛나는 눈을 가진 청년과
똑같은 눈빛을 지닌 노인이 오버랩되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당시의 소속 부대를 또렷하게 기억하시는 우리 할아버지들..
동고동락 지기가 참전용사 어르신들을 뵙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난 달 26일 용산에 위치한 용사의 집에서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6.25 참전용사 분들을 모시고 유해발굴 증언 청취 및 사업설명회가 개최되었는데요. 동고동락 지기가 그 현장을 방문해보았습니다.
이 행사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준비한 행사로 전쟁이 끝난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 속에 묻혀있는 유해(13만 여위)를 발굴하는데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에서는 행사 한 달전부터 참전용사를 방문 면담하여, 전투에 직접 참여했고 유해매장 관련 증언이 가능한 분으로 70명을 선정하여 한 자리에 모시고, 전쟁 당시 소속된 사단 및 지역별로 5개 그룹화한 후 전사지도를 비치한 독립된 공간에서 유해매장 예상지역에 대한 증언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블루 스크린 앞에 앉아 전쟁 당시 전사자가 발생했던 상황과 지역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지도를 짚어가며
그 날 전우들을, 동지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지역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저는 6․25전쟁 당시 2사단 공병대대 소속 송종수(84세)이고 피의 저격능선 전투에 참전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적 전차 출현에 지휘관의 지시로 밤 12시 경 지뢰를 매설하던 중 적의 기습 공격으로 많은 전우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야간에다 비까지 내려 전사한 전우는 두고 눈에 보이는 중상자와 경상자만 싣고 후퇴를 했습니다. 금성천과 오성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삼각지대. 달빛에 비쳐 어렴풋이 보이던 전사한 전우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지금도 그때 두고 온 전우들이 보고 싶습니다.”
“분명 지금도 그 지역에 전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겁니다.제가 살아있는 동안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꼭 전우를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저격능선 전투 : 1952년 중부전선의 김화(현재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2사단이 중공군 제15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기지를 빼앗기 위해 공방전을 벌인 전투로 결국 국군 2사단은 6주간의 장기전으로 저격능선 방어에 성공한 전투
“저는 5사단 27연대 소속으로 가칠봉 전투에 참전했던 김방우(84세)입니다. 지휘관이 향후 작전을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고지라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치열했던 전투였던 만큼 아군과 적군의 시체가 혼재되어 구분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미처 수습하지 못한 전우들의 유해를 해금강 건너 골짜기에서 집단 화장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바치신 분들인데 국가가 그분들을 꼭 모셔와야지요.”
* 가칠봉 전투(1951.9.4.~10.14) :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국군 5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으로 북괴군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해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끝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이나면서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증언을 위해 카메라 앞에 앉은 참전용사분들에게
"선배님, 당시 소속과 성함을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전사자들이 누워 있었거나, 화장이나 가매장을 한 지역이 어디였는지,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라고 말하자,
아주 힘 있는 목소리로
"1950년에 육군 00사단 00연대(대대) 소속, 000입니다......"
모든 어르신들께서 어깨를 쭉 펴며 60년이나 지난 군 소속을 또렷하게 밝히시는 모습은 감탄스러웠습니다.
또 참전용사 어르신이 유해발굴감식단원이 본인과 같은 부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선배님~후배~하면서 부대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서는 요즘의 현역과 예비군의 만남과는 또 다른 끈끈함이 느껴졌습니다.
증언을 하기위해 당시 소속 부대의 기록, 전투의 기록을 가져오신 참전용사 분도 계셨습니다.
전투 참여 기록을 직접 책자로 만들어 가져오신 참전용사분의 뒷모습을 살짝 담았습니다.
낡고 구겨진 종이, 주름지고 미세하게 떨리는 손, 하얀 머리카락, 거친 숨에서 지나오신 세월이 느껴졌는데요.
이 뒷모습에서 우리 할아버지 같으시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물이 핑...
이 모습들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저는 이 분들을 그냥 동네 할아버지처럼 생각하며 무감하게 지나치고, 그저 어르신이라는 생각만 했을 겁니다. 그런데 60여년 전에 근무했던 부대이야기, 생생한 전쟁 상황을 힘주어 말씀하시고 죽어간 전우를 언급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나니 이 분들이 우리가 존경하고 감사해야할 분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온 시간들이 부끄러웠습니다.
동시에 이 분들이 연로해지시고, 기억이 흐려져가는 것처럼 우리도... 겪어보지 못했단 이유로 우리 역사를 교과서에서 배운, 시험에 나온 그 것! 쯤으로 치부하며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이 생각하셨나요??
겪은 적 없고 책으로만 배운 내용을, 겪은 사람만큼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정말 6.25 전쟁은 책과 자료에서만 존재하는 '역사'가 되어버립니다. 살아계시는 동안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소중한 현장취재 경험이었습니다.
국방부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 날 증언 청취를 발판으로 우리 군 지역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 북한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기록까지도 기록해 마지막 한 분의 호국용사님까지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모셔드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입니다.
올해 계획된 총 3회의 증언청취가 마무리 되면 900분량의 영상과 증언록을 제작하고, 증언이 나온 지역에 대한 현장실사와 검토를 통해 적극적인 유해발굴을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발굴된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유가족 유전자(DNA) 시료 채취, 전사자 유해소재 제보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현장 취재를 마무리 하면서 살펴 본 유해발굴 사진과 유품 전시를 소개합니다.
6.25전쟁 개관, 유해발굴 사업소개도 있고,
면도기, 담배파이프 등의 유품들이 있습니다.
누구의 주머니에 꽂혀있던 만년필일까요?
누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갖고 있던 라이터였을까요?
이 계급장의 주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까요?
깨진 철모가 가슴을 철렁하게 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겨누고 발사되었던 무기겠지요...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렇게 선배님들을 찾아냅니다.
신발을 신고 있고, 품에는 유품이 가득합니다..
선배님들, 저희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분들도 계시지만,
아직도 13만 여위나 우리 한반도 땅에 어딘가에 누워계십니다.
유해발굴사업이 잘 추진되어 하루 빨리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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