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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브로큰의 포로 영웅과 극악 감시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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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브로큰의 포로 영웅과 극악 감시원 -1-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영화 ‘언브로큰’이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는 비행기의 추락과 장기간의 표류, 짐승보다 못한 포로의 운명을 극복해낸 불굴의 영웅과 그를 잔인하게 괴롭힌 악당이 나온다. 그리고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사연은 우리 민족이 걸어야 했었던 행적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언브로큰의 감독 안제리나 졸리가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불굴의 영웅인 루이 잠페리니의 인생부터 소개하자. 잠페리니는 1917년 1월 26일 뉴욕에서 이태리에서 이민 온 앤서니 잠페리니와 루이스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세 살 때 캘리포니아 토렌스로 이사와서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동급생들이 영어를 잘못하는 그를 놀려대자 그는 아버지로 부터 권투를 배워서 이들을 평정해버렸다. 잠페리니가 재미를 가지고 싸움질에만 몰두하자 형인 피터는 그가 소속된 학교 육상 팀에 합류시키고 훈련을 시켰다. 피터는 1학년부터 달리기에 출중한 능력을 발휘해서 중거리 분야에서 여러번 입상하기도 했다.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각종 육상대회에서 휩쓴 우승 기록 덕분에 남가주 대학으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게 하였다. 1936년 잠페리니는 베를린 올림픽에 도전하였다. 마라톤에서 우리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우승했었던 올림픽 경기였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먼저 뉴욕에서 열리는 미국 예선부터 통과해야 했었다.

 

당시 미국의 올림픽 도전자들은 출전 경비를 자비로 부담하여야 했다. 철도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미국 횡단 열차표를 얻어주었다. 그의 고향인 토렌스 주민들은 모금 활동을 해서 그의 출전을 도왔다. 뉴욕에서 열린 예심에서 그는 불리한 여건을 물리치고 출전 선수로 선발되었다. 그의 나이 19살이었을 때였다.

 

베를린으로 간 잠페리니는 5,000미터 경주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실력자들이 참가한 5,000미터 경주에서 그는 8위의 성적밖에 거두지를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올린 놀라운 스퍼트는 히틀러의 관심을 끌어 후에 그와 대담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언브로큰은 로우라 힐렌브란드 여사가 쓴 책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올림픽 후에 그는 남가주 대학에 입학하여서 육상생활을 이어갔다. 재학 중인 1938년 그는 전국 대학생 육상 대회 1마일 달리기 경주에서 4:08의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 우승하였다. 이 대학생 육상대회 기록은 15년간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운이 깊어지는 1941년 잠페리니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군문에 들어갔다. 그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1년 9월 미 육군 항공대에 간부 후보생으로 지원해서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가 최초로 받은 보직은 태평양 푸나푸티 비행장의 B-24 폭격기 ‘슈퍼맨’의 폭격수였다.

 

1943년 4월, 그의 폭격기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나우루 섬 폭격 작전에 출격했다가 대파되었다. 겨우 살아 돌아왔으나 폭격기 ‘슈퍼맨’은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해서 고철로 처리해야 했다. 



나우루 섬을 폭격하는 B-24


전 승무원들은 모두 하와이로 돌아와서 재배치를 기다렸다. 잠페리니와 다른 몇 명의 전우들은 하와이에 기지를 둔 7공군 탐색구조 부대에 배치되었다. 

 

새로 주어진 B-24기는 ‘그린 호넷’이라는 기체명을 가진 것으로서 부대 조종사들 사이에 고장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었다. 1943년 5월 27일, 탐색 출격 중에 기체에 기관 고장이 발생했다. ‘그린 호넷’은 고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와이 오하우 섬에서 남쪽 850마일 해상에 추락하였다. 



출격 직후 슈퍼 맨에 명중한 20mm 피탄 부분을 살펴보는 잠페리니


11명의 승무원 중에 8명이 사망하고 잠페리니를 비롯한 세 명만이 살아남았다. 구명 보트로 탈출한 세 사람은 잠페리니와 조종사 러셀 알렌 필립스, 프랜시스 맥나마라였었다. 

 

보트에 세 사람이 준비된 물이나 먹을거리는 거의 없었다. 세사람은 겨우 내리는 빗물이나 보트 옆에 모여든 작은 생선들을 잡아 연명했다. 세 명은 구명 보트 근처로 다가온 알바트로스 두 마리를 잡았다. 장거리를 날아다니는 대형 알바트로스 [신천옹]고기는 생명 연장에 큰 힘이 되었다 세 명은 알바트로스를 날로 먹어 치우고 일부를 낚시 미끼로 사용하였다.


상어들이 자주 나타나서 생존자들의 보트 주변을 배회하며 전복시키려고 시도를 하였다. 때로는 폭풍이 찾아와서 보트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하였다. 상공을 지나는 일본 폭격기들은 미군 표류자를 발견하고 저공 비행으로 기관총 사격을 해서 보트에 구멍을 냈지만 아무도 총탄에 맞지를 않았었다. [영화에서는 전투기가 기총소사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런 표류 33일 만에 맥나마라는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표류는 2개월 째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구조의 가능성을 포기하려는 심정이었던 표류 47일째, 기적적으로 마셜 제도의 한 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해안을 감시하던 일본 해군 감시병들에게 붙잡혔다. 사지에서 살아나왔지만 두 사람은 이제부터 짐승 같은 취급을 받는 포로 생활을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겪어야 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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