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일화는 후방에 침투한 적은 바로 포대와 같이 중장비 부대를 우선적으로노린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며 하나의 부대가 이동하면서 적의 정규군 아닌 편의대에게 연속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북한군의 편의대 활동이 얼마나 극성맞게 이루어 졌는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시선을 중부 전선으로 옮겨보자. 6월 25일 적의 침공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중부 전선의 6사단 2연대 정보과가 강원도 신남 서쪽 9km 지점 정자리에 파견한 파견대는 38도선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부상병들이 후송 되어오자 전쟁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후 밀짚 모자에 도롱이[짚이나 풀잎으로 만든 비옷]을 입은 괴한들이 2-3명이 1개조로 나타나 도롱이 속에 감추어 둔 따발총을 쏘면서 공격해왔다. 북한의 편의대였다. 파견대는 지체없이 경찰[30명]및 대한 청년단원[200명]과 합세하여 북 편의대를 격멸하고 신남 뒷산 663고지와 소뿔산을 경유, 다음날 오후에 연대 본부로 북귀하였다.
유명한 춘천 전투에서도 적의 편의대 투입이 있었다. 개전 다음날인 6월 26일 전날 포병 사격에 주춤하던 북한군은 옥산포 평야를 쓸 듯이 내려오다가 164고지 능선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6사단 7연대 1대대에게 기습을 당해 궤멸되고 부대는 북으로 도주하였다. 이들이 옥산포를 지나 춘천으로 진격할 목표로 작전 전개를 시작할 때 본대보다도 훨씬 앞서 전방에 내보낸 편의대 성격의 별동대가 있었다. 편의대는 현재 소양호가 된 옥산포 남방 가래목이라는 나루터를 도강하고자 했다.
6.25 때 봉의산
7연대 선임하사 서근석 상사[중령 예편]는 신고를 받자 연대 본부 행정요원들을 급히 긁어 모아 조직한 일개 소대를 이끌고 소양강 남쪽 제방으로 출동하여 막 도강을 시도하는 적 편의대에게 집중 사격을 가해 전멸시켰다. 공식 6.25전사에 의하면 북한 별동대가 제방을 건너와 소양강 남쪽 제방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일부는 춘천 시내에 침투했다가 소탕되었다고 썼는데 서근석 중령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깊은 가래목 여울을 건너려고 배를 타는 순간 강 이남에서 장거리 사격으로 모두 섬멸시켜 도강에 성공한 북한군은 없었다고 한다.
구 소양교 - 북한 2사단 전차가 건너와 춘천을 점령한 다리
동부 전선으로 가보자. 동해안 8사단 정면을 침공한 북한군 5사단은 조선족 부대로써 국공 내전 때 심양 공략전에 참가한 정예 부대였다. 그리고 김일성의 심복 오진우 총좌가 지휘하는 766 특수부대가 아군 후방 해안에 상륙하여 차단하는 양동 작전을 펼쳤는데 이는 2중 전선 작전개념에 따라 전개한 대형 편의대 성향의 공격이라고 하겠다.
동해안 방어를 담당한 이성가 대령이 지휘하는 아군 8사단 부대는 잘 싸웠다. 여러 영웅적인 전투가 있었지만 6월 25일 아군 21연대 1중대와 대한 청년단이 합동으로 강원도 삼척군 옥계면 현내리에서 북한군을 기습하여 적 31명을 사살하자 이들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옥계, 묵호, 삼척 일대에 피난민을 가장한 편의대를 침투시켜 국군의 동정을 완전히 파악한 뒤인 7월 1일 남진을 계속했다.
동부 전선에서 한 달이 지난 후에 또다시 북한군 편의대가 나타난다. 8월 12일 야간에 포항에 침투한 편의대가 따발총을 난사하며 시가를 누비자 헌병 1개 중대와 전투 경찰대는 공황에 빠져 질서없이 배를 타고 구룡포로 탈출하는 바람에 포항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포항 전선에서 피난민의 짐을 검색하는 아군
한편 6.25때 전투 경찰들의 기록을 보면 북한군이 아군 후방을 노린 편의대 성격의 전투원이나 공작원을 파견한 사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경남 산청 경찰서 소속으로 많은 전투 기록을 세운 백남현 경위는 그의 수기에서 그가 1950년 7월 26일 50명의 산청 경찰서 전투 경찰대를 이끌고 경남 함양군 석복면과 전북 남원군 동면 인월 고개사이 고지에 방어선을 치고 경계하며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수많은 피난민들이 먼저 나타났다. 경찰은 피난민들을 검문 검색하였다.
이들은 경찰 사찰 유격대로서 귀순 북한병으로 구성된 편의대다.
백 경위 부대는 이들 피난민에 섞여든 북한 오열(五列) 분자 2명을 적발했다. 여기서부터 백 경위의 수기를 옮겨 보기로 한다.
적 편의대는 피난민들에게 인민군이 야포, 탱크 등으로무시무시하게 중무장했으며 압도적인 병력으로 남원읍을 점령하였는데 한국의 군경으로서는 대항할 수가 없으니 빨리 피난을 가야한다는 등의 기타 이상한 말로서 선전 선동을 하였다는 말을 피난민 제보에 따라 문초하여 보니 북한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고 아무런 신분증도 없었으며 심문에 횡설수설로 대꾸하였다.
나는 15세 때부터 만주에서 자라 북한 사투리를 잘 알아서 그들이 북한군의 오열분자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체포했다.그들을 엄중 심문한 바 북한군 정치 보위부 부원으로서 전선 20-40km 전방에 미리 잠입, 목표 지역민들에게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아군에게 전파되고 하여 전의를 상실 저하시키고 대항없이 후퇴케 함으로써 무혈점령을 지원하는 임무를 띄고 선견 남하중이라는 자백을 받았다. 그리하여 적의 전술을 또 한 번 파악하게 되었으며 검거한 오열을 무수히 남파시키고 전선의 전방에 침투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민심 동요를 경계하는 동시에 적 오열 색출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위에서 소개한 백남현 경위의 말이야 말로 북한군이 2중 전선 전술 전략의 정곡을 찔러서 말한 것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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