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싸웠던 무기
요즘은 격투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사실 누워서 싸우는 것이 그리 편한 것은 아니다. 넘어질 때 부딪히는 충격을 미리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굳이 장점이 라 할 것이 없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후 싸움은 당연히 공격과 후퇴가 용이하도록 서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만일 넘어진다면 공격은커녕 방어에서부터 불리하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특정한 룰이 없다면 인간은 구조적으로 누워서 싸울 수는 없다 ]
그런데 전쟁사를 살펴보면 오로지 누워서만 싸우도록 만들어진 무기가 있다. 누워서 주먹을 교환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무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누워야하고 따라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모든 행동도 이런 상태로만 할 수가 있었다. 흔히 볼 터렛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스페리 볼 터렛(The Sperry Ball Turre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사수가 누워서 탑승하는 볼 터렛의 구조도 ]
이 볼 터렛은 제2차 대전 당시 스페리社에서 제작하여 B-17, B-24, PB4Y 등을 비롯한 많은 항공기에 설치되었던 기관포탑이었다. 각각 250발을 탑재한 M2 중기관총 2문을 장착하고 유압식 동력에 의해 360도 좌우회전 및 180도 상하 이동이 가능한 형태다. 폭격기 동체의 하방에 장착되어 아래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적기를 격퇴하기 위한 방어용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 동체의 하방에 장착되었다 ]
그런데 볼 터렛에서 사격을 하기위해서는 누워서 웅크린 자세로 있어야 하였는데, 기관포탑이 워낙 협소하다보니 이곳에서 총을 쏘아야할 사수들의 신체 크기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편한 사격자세 때문에 항상 사수가 탑승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보통 적기의 내습이 예상되는 시점부터 이곳에 들어가 작전을 펼쳐야 했다.
[ 크기 때문에 사수들의 신체조건이 제한되었다
아이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작은지 확인 할 수 있다 ]
그런데 13정의 방어용 기관포를 탑재한 B-17의 경우를 보면 볼 터렛은 유일하게 기체 외부로 돌출된 위치에 놓여 있었다. 비록 장갑판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적의 공격에 따른 희생이 컸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그렇게 느낀 것이지 폭격기의 어느 위치에 있건 작전 시의 위험도는 동일하였다고 보는 것이 사실 타당하다.
[ 모든 사수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머로더 폭격기 전방사수) ]
일단 터렛 안에 사수가 들어가면 회전이 용이하도록 출입구를 걸어 잠그는데, 까마득한 고공에서 등을 지상 방향으로 대고 누워서 폐쇄된 공간 안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느끼는 공포감은 대단하였을 것 같다. 이와 같은 공포심을 미국의 시인이었던 제럴(Randall Jarrell)은 "The Death of the Ball Turret Gunner"라는 시로 지어 표현하였을 정도였다.
[ 피탄 당 한 볼터렛의 모습. 아마 사수가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
영화에서 보면 B-17의 사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적기를 잡기 위해 기관포를 난사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데, 이때 볼 터렛 사수는 누워서 전후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사격을 한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적기를 격추하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작전 종결 후 구사일생으로 구조되는 사수의 모습 ]
문이 닫힌 좁은 공간 안에 마치 허공에 떠있는 자세로 누워서 총을 쏘아야하는 볼 터렛 사수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물론 통신으로 연결은 하고 있었지만 적기의 공격 못지않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체안의 동료들이 모두 죽지는 않았을지? 아니면 내가 죽거나 다쳐도 동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을 하였을 것 같기도 하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