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1 ] 근대화를 위한 시도?
한강은 서울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랜드마크다. 우선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라 하는데, 사실 서울 같은 대도시를 통과하는 강중에서 한강만큼 규모가 커다란 경우도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다. 더불어 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와 잘 정리된 강변의 모습 그리고 야경 또한 멋있게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무덤덤하게 느끼지만 생각보다 한강은 대단한 자연의 선물이다.
[ 외국의 어느 도시와도 견주어 뒤지지 않는 멋있는 풍경임을 알 수 있다 ]
이처럼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에는 현재 남북을 연결하는 20여개가 넘는 수많은 다리와 하저터널이 놓여있다. 이중에서 제일 먼저 생긴 다리는 용산과 노량진 사이를 연결한 한강철교인데, 1900년 개통되었으니 나이가 116살이 넘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격변기였고 군사적인 용도로도 다리가 많이 사용되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다.
[ 한강철교에는 전쟁과 관련한 숨겨진 역사가 있다 ]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지도를 보면 한강철교는 여타 한강의 교량들처럼 단지 줄 하나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가 아닌 4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상류에서 하류방향 순서대로 B교, A교, D교, C교로 구분한다. 자료마다 통칭하는 방법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다리의 개통 순서대로 부호를 정하면 위와 같이 정의될 수 있고 사용 용도도 각각 다르다.
[ 한강철교를 구성하는 B, A, D, C 교 ( 우에서 좌 ) ]
현재 단선 철도가 놓여있는 A, B교는 용산역 착발 수도권 급행 전철이 사용하고 복선인 D교는 수도권 일반 전철이, 역시 복선인 C교는 KTX를 비롯한 장거리 열차가 사용 중이다. 한강에 가설된 모든 다리를 통틀어 최초의 교량인 A교는 경인선 부설권을 얻어낸 미국인 모스(James R. Morse)에 의해 1897년 3월 착공되었으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후 일본이 부설권을 인수한 후인 1900년 7월에 완공되었다.
[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얻었던 모스 (左)와 후에 이를 인수받아 완성한 에이치 ]
자본이 부족하고 기술도 없던 당시의 대한제국 정부는 경인선 부설 이권을 모스에게 주면서 철교에 보행자 통행을 위한 인도 설치를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부설권을 가로챈 일본은 공사비 절감 등의 이유를 내세워 요구를 무시하고 서둘러 교량을 개통하였다. 그 이유는 일본이 강화도 조약으로 제일 먼저 개항시키고 한창 일본인 거류 지역으로 개발 중인 인천과 서울을 하루라도 빨리 연결할 교통편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 경인선 철도 기공식 모습으로 현재의 도원역 인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이렇게 완성된 A교 덕분에 경인선은 한강을 건너 현재의 서울역 위치로 추정되는 남대문역까지 연결되었고, 이는 도성과 외곽을 연결하는 최초의 현대적 교통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교통망이 근대화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탈 과정 중에 놓여 있었다는 점은 비극이었다. 철도가 놓여 졌지만 외세의 지원에 의존하다보니 정작 사용하는데 있어 약점이 있었던 것이었다.
[ 한강철교 A교의 건설 당시 모습 ]
부설권을 얻은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의 편리와 복리 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침탈을 가속화시킬 도구로 철도를 만들고 사용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면 개통 당시에 최하 등급인 여객 3등실 요금이 40전으로, 이는 당시 닭 두 마리 값어치에 해당되는 고가로 보통의 국민들이 철도를 편리하게 이용하기는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초 노선을 보더라도 전혀 우리와 관련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허허벌판위에 세워진 외국인 별장 이용 편의를 위해 역이 설치되었다 ]
현재 경인선 노선 대부분은 최초 개통 당시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지만 제물포역에서 동인천역에 이르는 구간은 전혀 달랐다. 최초에는 현재 제물포역 북쪽에 위치한 숭의3동 방향으로 크게 반원을 도는 형태로 철도가 놓이면서 우각역이 설치되었는데, 목적은 이곳에 별장이 있던 미국 공사 겸 선교사인 알렌(Herace Newton Allen)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였다. 그만큼 최초 철도는 정작 우리의 삶과 관련이 적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