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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고장’ 칠곡에서 만나는 전쟁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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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고장’ 칠곡에서 만나는 전쟁 유적지



한국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가 어디일까요? 여러 곳이 있겠지만 경상북도 칠곡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칠곡은 한국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최고 중심지였기 때문에 국군과 북한군 사이에서 진지를 뺏고 빼앗는 맹렬한 혈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벌어졌던 전쟁의 참혹함은 오늘날까지 칠곡 땅 곳곳에 전쟁 유적지로 남아있습니다. 오늘은 ‘호국의 고장’ 칠곡에서 만날 수 있는 전쟁 관련 명소를 살펴보겠습니다.  



55일 동안의 사투, 낙동강방어선전투


먼저 칠곡에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아볼까요? 칠곡은 바로 낙동강방어선전투가 치러진 장소입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란,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 동안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서 북한군의 남진에 대해 국군과 유엔군이 목숨을 바쳐 이를 저지해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투입니다. 


▲6.25전쟁 당시 국군1사단이 다부동 북부지역에서 적군을 향해 40밀리 포를 발사하고 있는 모습 / (사진 출처: 국방 일보)


특히 칠곡 왜관과 다부동은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있는 대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낙동강방어선의 최전선이었고, 북한군은 대구 점령을 위해 끊임없이 이곳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다부동 일대를 방어한 국군 제1사단과 왜관 일대를 방어한 미 제1기병사단은 연합작전과 융단폭격 등을 통해 끝까지 칠곡을 지켜냈습니다. 이는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펼치고 대대적인 총 반격을 개시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칠곡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다”는 말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만날 수 있는 곳, 다부동전적기념관


이렇게 맹렬하고 중요한 전투가 벌어진 곳인 만큼 칠곡에는 많은 전적 유적지가 남아있습니다. 먼저 ‘다부동전적기념관’은 1981년 11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개관한 기념관으로, 다부동전투에서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이 기념관 건물은 전차에서 모티브를 얻은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

(사진 출처: 국방 일보)


기념관 전시실에는 다부동전투 당시에 사용했던 권총과 소총, 기관총, 로켓포 등의 무기류와 배낭, 숟가락, 야전삽, 수통 같은 장구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또 당시의 사진 및 전투 상황도 등을 통해 전투의 모습과 전황 등을 현실감 있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야외전시장에는 전차, 장갑차, 대공포, 자주포, 호크 미사일 등의 대형장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 구국용사 충혼비와 다부동 전투에 참가한 전우들의 명각비, 구국경찰 충혼비와 명각비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인 조지훈은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다부동전적기념관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게 전쟁의 아픔과 비극을 상기시키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전쟁기념관, 호국평화기념관 


칠곡군에는 지난해 10월 15일에 개관한 ‘호국평화기념관’도 있습니다. 지하 2층, 지상 4층으로 이루어져 단일 전장 기념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념관은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재현한 호국전시관, 전투체험관, 어린이평화체험관, 4D입체영상관, 체험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전투체험관 

(사진 출처: 호국평화기념관 홈페이지)


4D입체영상관에서는 왜관, 다부동 등에서 펼쳐진 55일간의 치열했던 전투를 어느 학도병의 절절한 이야기로 실감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이평화체험관에서도 전쟁 당시 파괴된 마을, 피난민 아이의 옷가지, 책보, 원조식량 등을 구경하고, 전쟁 관련 게임 프로그램으로 전투의 참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야외에는 1,129일간의 6·25전쟁을 상징하는 11.29m의 ‘호국평화탑’과 55일간의 낙동강 전투를 상징하는 55m 대형태극기, 인공폭포 등의 볼거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 ‘호국의 다리’ 


▲호국의 다리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칠곡의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 ‘호국의 다리’(구 왜관철교) 역시 한국 전쟁을 상징하는 기념물입니다. 호국의 다리는 1905년 만들어진 철도교로 1941년 이후 인도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1950년 8월 북한군의 총공세가 펼쳐질 때 그들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1993년 다시 복구해 전쟁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호국의 다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008년 문화재청은 이 다리를 등록 문화재 제406호 지정했습니다. 호국의 다리는 한국 전쟁 때 폭파된 부분만 아치형의 난간이 없고, 다리 위에는 한국 전쟁에 참가한 국가에 대한 소개가 게재돼 있습니다.



치열한 혈투가 벌어진 전적지, ‘가산산성’


칠곡의 전적지로 ‘가산산성’ 역시 빠질 수 없습니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 후 해발 900미터 가산에 쌓은 석축산성으로 골짜기와 능선의 지세를 적절히 이용하여 축성됐습니다. 이 산성 일대에서 한국 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칠곡 가산산성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전쟁사>는 가산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 “우군기의 폭격이 시작되어 뒤를 이어 미군 및 사단 야전포병의 일제사격이 집중되자 가산산성 안은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아름드리 낙엽송이 순식간에 벌거숭이가 되고 성벽 위에 웅크린 적병들이 밤송이 떨어지듯 아래로 곤두박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50년 8월 12일에는 미군과 공군이 인민군 2,500여 명을 살상하여 낙동강을 건너 대구로 진입하려는 인민군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다음날인 8월 13일에는 가산 면학산에 있는 328고지에서 전투가 전개됐습니다. 하루에 주인이 두 번씩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8월 16일에는 일본에서 출발한 비행기 98대가 왜관에 있던 북한군 진지를 향해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고, 북한군 4만 명 중 3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전사자들의 시체로 낙동강은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합니다. 


가산산성 일대는 이처럼 6.25전쟁 중 최대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지만 아직까지 성벽과 문터가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어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1972년 1월 6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서 열린 다부동 전투 전승비 제막식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칠곡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55일간의 낙동강방어전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중요한 승리이기도 합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지만, 그 아픈 역사와 희생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교훈이란 것을 알려주는 호국의 고장 칠곡을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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