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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의 ‘수석총[燧石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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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의 ‘수석총[燧石銃]’ -2-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도 그래도 두 달 가까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조정과 함께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조총병들이 공성[攻城]후금병들을 상대로 분전한 덕택도 있다. 같은 병자호란 시기 철원 조림산 전투에서는 조선의 조총병들 저격으로 청태조 누루하치의 사위가 죽기도 하였다.


조선군은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때 화승총을 사용하였고 1880년에 들어서면서 그 총기를 신형 소총과 뇌관총으로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궁술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의 총기 문화는 그 역사를 세종 때까지 올려 볼 수가 있다. 즉 총통(銃筒)으로 불리는 총기가 오래 전부터 조선에 존재했었다. 원시적인 총의 형태로서 기능은 총과 거의 같다. 그러나 격발도 힘들고 발사도 힘들다. 내가 찾아 본 자료에 의하면 이 총통은 세종 때부터 사용되었다.


총통의 개머리 격인 나무 자루. 이것을 옆에 끼고 불편한 자세로 사격했다.


세종 때 북방 야인[여진족]의 내습이 자주 있자 국경 순찰 기병들에게 총통을 꼭 소지하라는 명령이 내린 기록이 보인다. 총통은 임진왜란 때 조선군에게도 많이 지급되었으나 [동래성 전투에서 일본군이 거둔 조선군 노획품에 이 총통들이 많이 보인다.] 육상전에서는 활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 되었다. 즉 저항의 주력인 의병들의 주력 무기도 활이었었다.


총통들은 오히려 바다에서 충무공의 함대에 의해서 다량으로 사용된 기록은 있으나 바다의 총통들은 소총이라기보다 대포에 가깝게 큰 것들이다. 이 총통들이 임진란의 역사를 쓰게 만든 해상의 대승리를 거둠에 큰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영화 신기전(神機箭)이나 여러 메스컴에서 다연장 로켓 포의 전신같은 무기는 여러 발의 화살에 작은 로켓을 달아서 일제 사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켓 화살만이 다연장 무기의 구성 무기가 아니었다. 즉 행주산성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40문의 화차(火車)들은 각 화차마다 소총 크기의 승자총통[勝字銃筒]을 40문씩 엮은 것이다. 


승자총통


화차는 결국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총통의 집합체 다총신(多銃身)공용화기며 오늘날 우리나라 공군의 F-16이나 해군의 참수리정, 그리고 육군의 대공포에 쓰이는 벌칸 포의 원조인 셈이다.


1585년에는 네델란드에서 부싯돌을 이용하여 점화하는 스냅턴스(Snaphance)총이 발명되었다. 수석식 소총의 최초 역사 데뷔였다[160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발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화승총의 시대가 저물고 화승총을 대체하는 부싯돌이 발화 구조가 주력이 되었다. 화승을 물고 있는 격침에 대신 가죽으로 감싼 부싯돌을 부착해서 방아쇠를 당기면 부싯돌이 Frizzen이라는 이름의 L자형 강철 구조를 긁듯이 치면서 격발되게 하는 것이다[앞장에서 말하는 Pan은 이 아래에 있다.].이 총을 수발총[燧發銃,] 또는 수석총[燧石銃-flint lock]이라고 불린다.앞에서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 총, 수석총이 바로 대호에서 주인공 천만덕이 사용하던 총이다. 



수석총의 구조. 부싯돌을 긁듯이 내려치는 L자형 강철 프리젠[원안] 격침과 이 프리젠 때문에 측면에서 거리를 두고 보면 수석총의 후미는 마치 토끼 귀 두 개가 튀어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수석총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좀체 발견되지 않는다. 이 총이 한국의 역사에 그 정체를 들어 내는 때가 두 어 번 있었다. 1658년 동진하던 러시아와 분쟁 중에 있었던 청나라가 조선에 압력을 넣어 조총병을 파견하게 하였다. 조총병 200명을 이끌고 영고탑을 거쳐 흑룡강까지 진출한 이 조총 부대장, 함경북도 병마우후 신유 선생에 의해서 쓰여진 북정록[北征錄]에 수석총이 잘 나와 있다. 신유 선생 지휘 200명의 조총대는 흑룡강에서 러시아 스테파노프 선단을 공격하여 약270명의 적병을 사살하였다.

신유 선생은 러시아 군으로부터 여러 정의 신형 총기를 노획했다.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승총이 아니라 부싯돌을 쳐서 발화시키는 신형 수석식 소총이었다. 그 노획품을 청(淸)장수가 전부 압수하려 하자 신유 선생은 사정을 하여 그 중 한 정을 얻어와 효종에게 바쳤다. 


효종은 이 신형 소총의 복제품을 만들도록 명령했으나 그 뒤 시제품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가 않다. 효종 때 수석총은 또 다시 얼굴을 내민다. 제주도에 표착한 네델란드인 하멜 일행은 한양으로 불려와 억류되었다.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은 병기류에 관심이 많았는데 하멜 일행도 병기 제조 분야에서 일을 하였다. 네델란드 인들은 수석총을 세 정을 만들어 효종에게 헌상했다. 그러나 이들의 단독 제조가 아니라 먼저 표류해서 조선의 훈련도감에서 대포 제조 전문가로 일하던 같은 선배 표착인 박연이 이들과 협력하여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신유의 러시아 원정 노획품을 복제한 수석총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효종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제조가가 세 배에 이르고 성능이 시원치가 않아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 좁은 지식으로 내가 아는 수석총이 조선 역사에 의미있게 나타나는 것은 이 두 가지 에피소드가 유일하다. 


옆의 중국을 보자 

이 나라의 수석총에 대한 자료 구하기가 무척 힘들다. 나의 제한된 조사에 의하며 중국의 역사에 수석총이 나오긴 나온다. 즉 중국에 영어로 말하면 wall gun이라는 대형총이 있다. 서양에서는 징겔포라고 부르기도 한다.성벽총인데 총의 형태를 가지고는 있으나 한 사람이 운용 불가의 대형총으로서 성벽의 벽에 설치하는 일종의 소형 요새포다.


이 중국총들의 격발 방식이 수석식인 총이 있었다. 이렇다면 중국에도 수석총이 있었을 것이지만 왜 대규모로 조선에 도입 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기가 난해하다. 




중국의 성벽총[Wall Gun] –대총 [大銃]으로 불리기도 하였고 서양에서는 징겔포로 알려져 있다.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미군들에게 대항해서 발사되었었다. 침공한 미군은 산탄을 발사하던 대총을 가장 위협적인 조선군 무기였다고 평가 했었다.


일본의 기록은 좀 더 풍부하다.1548년 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오우치[大内義隆]에게 증정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있다[이 말은 수석식 소총이 발명되기 전이며 일본의 다네가시마[種子島]에 일본 최초의 화승총이 전래된 시기인 1543년에서 불과 5년 후인지라 그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군의 조총- 일본인은 철포[鐵砲]라고 불렀다.



동학란 때 조선 관군이 사용하던 화승총-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사다케[佐竹] 가문의 가로가 쓴 책에 1593년 일본을 찾아온 서양 배에서 화승이 없는 총을 봤다는 기록이 있다. 그 것이 이 수석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지만 수석총 발명 시기를 보면 그 사실의 문제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본에도 오랫동안 수석총없는 화승총 시대가 계속되다가 19세기 초에 다카시마 슈한[高島 秋帆]이라는 다카시마류 포술의 창시자가 네델란드에서 수석총을 백여정을 수입했다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 일본 총기사에서 수석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다.



일본 막부 말기 포술 전문가 다까지마 슈한


일부 일본 포술가는 수석총은 발사 속도가 빠른 반면 점화시 충격으로 조준이 흩어지는 경향이 있어 명중률이 화승총보다 못했다는 이유로 별로 인기가 없어서 널리 퍼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즉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조준 사격을 중요시하는데 이 수석총은 서양의 집단 전투를 중시하여서 명중률이 좋지 않아도 그런대로 쓸 만했지만 일본의 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는 것이다.



다카지마가 수입해서 일본에 퍼뜨린 수석총 –대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용총이다


위의 말은 우다 가와부[宇田 川武]가 그의 일본 총기서 저서에서 추측한 것인데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다케다 가가 멸망한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화승총 부대를 집중 운용해서 대승을 거두지 않았던가? 그리고 격발을 위한 총기 충격은 화승총이나 수석총이나 뇌관총 모두에 다 해당하는 것인데 수석총만이 총격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여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카시마가 네델란드에서 수입한 수석총은 일본 국내 복제품까지 나왔으나 인기가 없어 그 가격이 폭락하였다. 그가 일껏 수입한 수석총은 소위 말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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