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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드 미사일의 실전기-북한의 유도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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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드 미사일의 실전기-북한의 유도탄 -1-


1812년, 나폴레옹 침공 때 러시아군은 프랑스군 포병들의 막강한 화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폴레옹은 원래 포병 출신이었던지라 강력한 포병 부대를 육성했고 실전에서 이 포병 화력을 집중 운용하여 적을 분쇄하는 전략을 자주 구사했다.

 

러시아도 포병이 강한 나라였으나 나폴레옹의 포병에 당한 뒤에 포병을 더욱 강화한 군사 교리와 부대 편제를 채택하였다. 러시아는 로켓 무기가 기술적으로 계속 발전하자 포병 중시의 전통을 이어받아 로켓을 주력 포병 화기로 채택했다. 2차 세계 대전시 독일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던 카츄사 다연장 로켓의 활약이 그 성공적인 실전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그 로켓 중시의 소련 포병 전통은 지대지[地對地]미사일로 이어졌다. 북한도 현대전 교리를 전수해준 소련의 영향으로 로켓 무기와 유도탄을 주력무기시 해왔다. 북한군은 방사포라는 대구경 로켓으로부터 로동 미사일등 여러 로켓이나 유도탄 전문 부대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한 부대는 연평도 포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도 제공권 확보가 쉽지 않은 북한은 중단거리 유도탄이나 로켓 무기를 전략적으로 중시하고 집중 배치하고 있다. 그 수량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어 수 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통의 전망도 있다.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


북한 유도 무기 중심에 스커드 미사일이 존재하고 있다. 이 북한 무기가 우리의 인지(認知) 세계에 들어와 있는지는 수십 년이 된다. 그러나 그 위력적 감지(感知)는 그렇게 크지 않다. 초기 스커드 미사일의 명중률이 별로였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 오래된 평가절하는 북한 스커드 미사일에 대한 우리 경계 감각을 무디게 한 점이 없지 않다.

 

더구나 걸프 전에서 둔하게 날아오는 스커드 미사일들을 빠짐없이 요격해버렸던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활약이TV에 여러 번 방영된 것이 이런 평가 절하의 인식에 한 몫을 했다.

 * 이 전과가 대부분 과장되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대강 70% 성공률을 보임


걸프 전에서 요격당한 스커드 미사일


그러나 현대 전쟁사는 녹녹치 않은 스커드의 자취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스커드 미사일들이 다량 사용 되었던 중동의 여러 전사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우리가 진지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국방 전훈(戰勳)들을 얻을 수가 있다.

 

그간 스커드 미사일들이 2차 대전 중에 런던에 발사된 지대지 미사일 V-2 다음으로 다량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중에만 2,000발 가까운 믿지 못할 다수의 스커드 미사일들이 발사되었었다. 최악의 경우, 좁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5,000만 국민들 밀집 주거지에 저 정도 수량의 미사일들이 예고도 없이 날아올 가능성을 최다 스커드 미사일 사용 지역인 아프간 내전이 보여준다고도 할 수가 있다.

 

중동 각국은 명중률 낮은 스커드 미사일을 주로 면(面)표적에 다량 발사하여 그 명중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그래서 대개 도시나 큰 지역 표적등을 목표로 다수 발사되었고 이는 일종의 무차별 사격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중동과는 비교도 안 되게 공업화와 산업화가 발달된 우리나라는 사실 고양이 앞에 먹음직스런 생선이 가득한 생선 가게를 내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겠다.


거의 도시화된 남한의 수도권에 별다른 유도장치 없는 방사포같은 것을 발사해도 대부분 인명 피해의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과거 해온 짓들로 보아서 북한은 무고한 민간인의 인명 피해 정도는 관심도 없을 듯하다.

 

그간 꾸준한 개량을 거듭해서 그 명중률이 상당히 향상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커드 미사일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초기형 스커드 미사일의 명중률은 그 오차 범위가 500m나 되는 불량한 것이었다.

 

현재는 GPS나 스마트 조준 기술 발달로 오차 범위가 단지 50m 내외인 스커드 D 형 미사일의 북한제인 로동 1호까지 선을 보였다.이것은 면(面)표적이 아니라 점(點)표적에 대한 사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동의 전사들도 스커드 미사일들이 밀집 병력이나 시설물등의 작은 점(㸃)표적에 발사되어 명중시켰다는 심심치 않은 사례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사는 남한에는 북 스커드 미사일이 조준 사격할만한 점표적들이 넘쳐 흐른다. 국토 전역에 산재해있는 원자력 발전소나 포항제철 같은 대형 플랜트, 그리고 항만이나 공항 등의 큰 시설물들은 유사시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로 조준 사격을 할 취약한 목표물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커드 미사일의  탄생

스커드 미사일의 최초 원형은 사실 나치 독일이 영국을 폭격하던 V-2 로켓의 복제품이었던 소련제 초기 로켓 R-1을 더욱 개량해서 1957년 선보인 제품이다.

 


V-2 로켓


스커드[Scud-질주한다는 뜻]는 나토 정보 부서에서 붙여준 코드 네임이고 소련 -러시아에서는 스커드 시리즈의 개발형마다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첫 개발품이 R-11,다음 모델은 R-17,그리고 후기형은 R-300 엘부르즈라는 명칭을 가졌다.그 표준적인 길이는 11.25m에 직경은 0.88미터다 비행 속도는 마하 5이상이었다. 사거리는 초기형의 경우 150km였지만 후기형은 1,000km로 연장되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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