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그날의 영웅들 2002년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낸 NLL,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우리나라는 당시 첫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 전국이 환희로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연평도 해상에서는 남북한 해군이 충돌, 격렬한 교전으로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내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제2연평해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영해를 수호하던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안타까움을 더했던 제2연평해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1999년 제1연평해전 발발 당시 우리 해군이 밀어내기 작전으로 승리를 거두자, 북한 해군은 우리 교전수칙의 허점을 연구하며 보복을 준비합니다. 3년의 시간이 흐른2002년 6월 29일 도발 준비를 끝낸 북한 경비정 2척이 9시 54분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침범합니다. 이에 우리 고속정 편대가 차단기동을 실시하기 위해 접근하자, 북한 경비정은 북상합니다.
하지만북한 경비정들은 다시 남하하여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뒤 10시 25분, 참수리 357호에 기습 선제 사격을 가했습니다.우리 참수리 357, 358호는 급작스러운 피격 상황에도 불구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하며 응전했습니다. 몇 분 후 10시 30분경 인근 해역에 위치하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모두 격파사격을 실시하며 교전에 합류, 북한 경비정을 대파했습니다. 큰 피해를 입은 북한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도주하면서 교전은 25분 만에 종료되었습니다.
이 전투로 북한 해군의 경비정 1척이 대파되었고,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해군은 북한 해군의 선제 기습사격으로 손상을 입은 참수리 357호가 예인 중 기관실이 침수되어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아울러 북측의 기습으로 정장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현 병장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우리 해군은 북한 해군의 기습적인 선제공격에 따른 장병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도발을 응징하며 NLL을 무력화하려는 그들의 기도를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또한 적 경비정의 NLL 침범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순이었던 대응 절차를 경고방송,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단순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계함의 늦은 대응으로 참수리 357호가 큰 피해를 입었던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참수리 고속정들이 초계함 사정거리 안에서 활동하도록 해 군사 대응 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교전 이후 정부는 제2연평해전으로 전사 또는 실종된 해군 장병들에게 일계급 특진과 훈장을 추서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습니다. 이처럼 불철주야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는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과 봉사가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안정과 번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투혼으로 나라를 수호해 낸 그날의 영웅들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