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게 죽음을!
육군 제3보병사단 백골부대
대한민국 육군 제3보병사단(이하 3사단)의 별칭은 ‘백골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경례 구호도 ‘백골’입니다. 또 부대마크 정중앙에도 백골이 그려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백골 문양이 이 부대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일까요? 부대 마크로 살펴보는 우리 부대 이야기, 그 첫 번째는 대한민국 최고 정예부대 3사단 백골부대입니다.
(수색정찰훈련 중인 3사단 백골부대 장병들)
대한민국 최정예, 백골부대의 역사
백골부대에 처음 배치된 병사들은 부대 앞의 거대한 백골 모형과 깃발을 보고 많이들 놀란다고 합니다. 백골부대는 1947년 12월 1일 부산에서 조선경비대(국군의 전신) 3여단으로 창설되어 1949년 5월 12일에 사단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실향민 청년들이 주축이 된 서북청년단원들이 18연대로 자진 입대하면서 죽어 백골이 되어서도 고향 땅을 되찾겠다는 의미로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3사단 18연대는 지금도 ‘진백골연대’라 자칭한다고 합니다. 부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백골 조형물은 전시에 우리 영토로 진입하는 적군에게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백골부대 백골상 <사진 출처: 국방일보>)
백골부대는 예나 지금이나 용맹한 병사들이 복무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때는 서울과 대전 방어선에서 공병 여단을 끼고 사수전을 벌였습니다. 1950년 10월 1일에는 예하 23연대 3대대 10중대가 38선을 전군 최초로 돌파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게 된 것도 바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6·25전쟁 당시 백골부대 예하에는 22연대, 23연대, 26연대가 있었으나 원산 탈환 이후 수도사단 예하의 제18연대와 3사단 예하의 제26연대가 임무 교대를 하게 되어 지금의 부대로 편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가장 추운 지방인 강원도 철원에서 우리 영토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백골부대, 그 역사에서부터 남다른 긍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백골 최강소대 선발대회에서 장애물 설치 중인 백골부대 장병)
필사즉생! 골육지정!
부대 마크는 ‘부대 표지’라고도 불리며 주로 전투복 상의와 야전 상의 왼쪽 팔 상단에 부착합니다. 대부분 사단 급 부대 단위로 특정한 부대 마크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군단이나 야전군 사령부의 경우 군단은 로마 숫자, 야전군은 아라비아 숫자로 해당 부대를 표시합니다.
(백골부대 마크)
백골부대 마크는 원래 삼각형 안에 별이 세 개 들어가 있는 형태에서 2012년 중앙에 백골을 넣은 모양으로 수정했습니다. 당시 3사단에서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부대인 만큼 마크에도 부대원들의 용맹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장병들의 건의로 마크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백골 마크에는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과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부대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백골부대의 구호에 등장하는 ‘골육지정(骨肉之情)’의 정신처럼 백골부대 장병들의 전우애는 남다른 것으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전군 최초로 전국 단위의 전우회를 만들 정도인데, 이 전우회는 6·25전쟁 초기 한강 방어 작전 중 산화한 백골부대 장병들을 추모하는 ‘백골부대 전몰장병 추모식’을 매년 주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사자 명부)
지금까지 육군 제3보병사단 백골부대의 역사와 부대 마크의 유래를 살펴봤습니다. 백골부대는 몇 년 전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등장하며 대중에도 많이 알려졌는데요. 당시에도 장병들의 남다른 용맹함과 투지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백골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한 진짜 사나이들이 바로 백골부대 장병들입니다. 백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