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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영웅 이야기] 대한민국 하늘을 지킨 부자(父子) 파일럿 故 박명렬, 박인철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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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하늘을 지킨 부자(父子) 파일럿

故 박명렬, 박인철 부자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총 53개의 장병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묘역에 안장된 장병들은 모두 하나같이 안타까운 사연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29묘역에서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3305호와 3557호의 사연은 유난히 각별합니다. 이 두 묘기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살아온 시대는 달랐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의 충정만은 꼭 닮았던고(故) 박명렬, 박인철 부자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고(故) 박명렬 소령(공사 26기)은 1978년 3월 28일 공군 소위로 임관한 제17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박 소령은 복무 기간 중 각종 훈련과 교육에 참가해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늘 다른 동료들의 모범이 되는 유능한 장교였습니다. 그는 교육 성적이 뛰어나 공군대학 총장으로부터 상장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 소령은 한미연합 군사훈련 ‘팀스피릿’에 참가해 1984년 3월 14일 충북 청원에서 저고도 사격훈련 도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에 불과했고 슬하에 다섯 살 아들과 세 살짜리 딸이 있었습니다. 



박 소령의 자녀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홀로 된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은 어머니에게 공군사관학교로 진학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창공의 꿈'을 자신이 이루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고, 그렇게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아버지와 똑같이 전투기 조종사로 임관한 장교가 바로고(故) 박인철 대위(공사 52기)입니다. 2004년 3월 17일 공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로 군복무를 시작했습니다.


박 대위는 전투기를 조종하며 매사에 성실과 열정을 다해 각종 훈련과 전술을 치러냈습니다. 그는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마다 자신의 자랑스런 아버지를 생각했고, “아버지가 못다 지킨 하늘, 이제부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되뇌며 굳은 의지를 다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박 대위마저 임무 수행 도중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2007년 7월 20일 야간 요격 임무를 수행하던 그의 전투기가 그만 태안반도 서북쪽 해상으로 추락해 박 대위가 산화하고 만 것입니다. 안타깝게 산화하기 한 달 전 박 대위는 현충일에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임무를 수행하면서 아버지를 떠올릴 때가 많지만, 호국보훈의 달에는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이 더 하다.”고 말하며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조종사가 되겠다.”는 유언 아닌 유언을 했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정부는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다 장렬하게 산화한 부자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들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두 사람을 현충원에 안장했습니다. 현충원에서는 1984년 먼저 세상을 떠나 안치된 박명렬 소령의 묘역 옆에 순직 당시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박인철 대위의 유품을 안장했습니다. 국립묘지 규정상 아버지 옆에 아들을 안장할 수 없지만, 2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희생한 박 소령 부자의 호국정신과 유족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특별배려가 이뤄진 것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버지의 희생정신을 그대로 본받은 박인철 대위. 비록 두 사람이 인생에서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두 부자는 많은 점이 닮았습니다. 두 사람은 현충원 묘역에서 나란히 누워 지금도 20여 년간 쌓아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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