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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의 길을 가려는 원사의 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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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과 인간 가족 - 6 話]


원사의 길을 가려는 원사의 아들 -1-


필자는 바로 전 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봉사할 뿐이다. 라는 글에서 70대 퇴직 원사[엄밀히 말하면 정년 퇴직한 면역(免役) 원사다]가 퇴직 후 열심히 군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한 인터뷰 목적으로 철원을 방문했다가 6사단 7연대 주임 원사 조규진 원사를 만났다. 내가 국방부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서 원로 퇴직 원사를 만나러 왔고 그 원사의 왕성한 봉사 정신이 글의 포인트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대화하던 중 우연히 조원사가 이야기 한다. 자기 막내 녀석이 고 3인데 대학 군사학과를 거쳐 원사까지 진급해보겠다는 야심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 원사와 안면이 있고 자주 대화도 나누던 터라 그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조 규진 원사와 아들 우현


그 아들의 야심이 나에게 상당한 흥미를 갖게 했다. 그 목표가 10대에 갖기 마련인 정치가니 사업가니 공무원이니 하는 막연한 푸른 꿈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가 나갈 실현 가능한 길을 뚜렷하게 정해놓고 노력하는 것이 대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지난 33년의 세월을 군대에서 보내고 은퇴하여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노원사와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 넘어 그 원사의 길을 가려는 새내기 원사 후보생과 좋은 대비가 될 듯해서 글을 써보기로 하였다.

 

사실 나의 속내를 털어 놓자면 인생의 출발선에 설 어린 학생이 갈 길이 부사관의 길이라는 것은 별로 공감이 안가는 결단이었다. 오래 전에 군을 떠난 내가 군 생활을 할 무렵은 국군 부사관들이 낮은 박봉과 열악한 처우로 크게 고통을 받고 있었을 때였다.

 

이들 나이 든 부사관들은 자식들도 있었고 고향의 부모도 모셔야 하기 때문에 항상 빈곤에 시달렸다. 대다수의 부사관들이 사회에 나가서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가 약속된 직업을 찾거나 개인 사업을 해보고자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으나 군은 이를 허락하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군 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부사관들중에 대학교 졸업 같은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었고 또 군 교육마저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지식적인 소양에 있어서 그렇게 깊은 수준은 아니었다. 힘든 생활을 거쳐야 하는 부사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사회 젊은이들이 느끼는 매력도 별로 크지가 않았었다. 그 무렵 보통 집안의 자식이 갈려고 하던 희망 인생 직종에서 한참이나 낮은 서열이 부사관이라는 직업 군인의 길이었다.

 

잠깐 말을 돌려본다. 내가 미군 관계 사업을 하면서 미군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느낀 사실이 있었다. 미군 사병들의 수준에 비해서 우리 국군 병사들의 수준은 확실히 높았었다. 대부분 미 남부 지역 출신에 직업을 찾지 못해 군에 들어온 미군 사병의 수준은 나로 하여금 막강 미군의 풀뿌리 조직이 이런가 하고 여러 번 느끼게 했었다.

 

나의 느낌은 주한 미군 간부들이 국군에서 파견 나간 카투사 장병들의 우수함을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는 사실에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미군 부사관들을 보면 나의 평가는 달라졌다. 미군 부사관[NCO]들은 한국과 달리 병(兵)생활을 마치고 하사로 진급하게 되면서 자연 임관이 되게 된다. 이후 걸러내는 여러 여과 과정을 거쳐 하사, 중사, 상사, 원사로 진급하게 된다. 경쟁을 거치면서 진급을 한 이들은 능력도 있지만 그 분야에서는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해서 전문 경쟁력을 높이고 있었다.

 

나의 주관적인 인상이었지만 얼빵한 녀석들이 많은 미군 사병들과 비교해보면 미군 부사관들은 그 업무의 노련미나 개인의 지성적 수준도 내가 군에서 경험했었던 국군 부사관들보다는 한 수위였다.


이들과 오랫동안 사귀면서 나는 그들의 질적 수준은 국가의 각종 배려에서 나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물론 미군의 보수도 좋았지만 각종 복지 제도는 그 당시 나의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당사자에 대한 대학교 교육은 물론 자식들의 교육에 지급하는 장학금도 대단히 풍족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군의 군사 교육 프로그램도 무척 다양했다. 즉 투자와 복지, 그리고 질 높은 교육이 미군 부사관들의 높은 수준을 형성했다고 하겠다.

[현재는 국군 부사관의 질이 무척 높아져서 이런 평가는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다시 말을 본류로 되돌려 본다. 조규진 상사와는 3년 전에 6사단 7연대 압록강에 진격 기념식 행사에서 만났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아주 부지런한 간부로 평가하는 것을 몇 번 들었었다. 그런 배경에서인지 그는 작년에 1 대대 주임 원사에서 연대 주임 원사로 승격되었다.

 

사실 원사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말한다고 보는데 그만큼의 성실함과 노력이 없으면 힘들다고 하겠다. 조 원사는 그 주임 원사라는 직책 수행에 바쁘고 긴장하는 모습을 항상 보여 주었었다.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자식이 그런 힘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도 아버지가 간 길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힘들 것이다.


조원사 가족 - 큰 아들 윤현과 딸 아라.


나는 조원사에게 아버지가 갔던 힘든 직업 부사관 직을 가겠다고 인생의 코스를 잡은 아들을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들의 이슈가 블로그에 나올만한 가치가 없다고 사양하다가 계속된 나의 강청에 면담을 주선해주었다.

 

철원의 모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조 원사 막내 아들은 야간 자습 중인데도 내가 머문 숙소로 아버지와 함께 찾아왔다. 이름은 조우현, 형 조양현이 있고 누나 조아라가 있다.


근처 맥주 집에 데리고 가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나이에 비해서 보통 야무진 친구가 아니었다. 낯선 어른 앞에서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자기의 꿈을 거침없이 피력한다.


아버지는 5년 전까지 논산 훈련소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그 때는 군 가족들이 비교적 부대를 자주 방문했었기 때문에 부대 분위기에 익숙했었다. 그러면서 점점 군을 인생의 주요 무대로 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때 앞으로 꿈이 뭣이냐고 묻는 학교 질문에 군인이라고 쓴 기억이 나지만 그 때는 어려서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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