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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날 특집] 군에서는 어떤 차량을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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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차량 탐구생활"

군에서는 어떤 차량을 사용할까?


간단한 퀴즈 하나! 매년 5월 12일은 무슨 날일까요? 이날은 바로 자동차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독려하고 국민의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자동차의 날’이랍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자동차공업협회가 자동차 수출 누계 1000만 대를 돌파한 1999년 5월 12일을 기념하며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이날을 자동차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는 1903년 등장한 고종황제의 ‘어차’ 이후 1955년 ‘시발(始發)자동차’를 거쳐, 1975년 최초의 국산 자동차 ‘포니’를 생산하며 발전해왔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들어온 지 110년 만인 2012년에는 세계 자동차 생산국 5위에 오르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자동차는 군에서도 필수적으로 쓰이는 장비입니다. 이를 군용차라고 하는데, 군용차는 병력 수송, 물품 조달은 물론 각종 전투를 수행하는 다양한 용도로 쓰입니다. 자동차의 날을 맞아 군에서는 어떠한 자동차들이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K-131>

1/4톤 차량인 K-131은 민간용 레토나를 군용으로 개조한 지프로 6명이 탑승 가능한 군용 전술차량입니다. 대대장이나 작전장교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군대의 ‘세단’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차량은 영하 32℃에서도 정상적인 시동이 가능하며, 특히 전륜구동(4X4) 방식으로 60% 경사로를 오르내릴 수 있어서 산악지역에서도 운용할 수 있습니다.



<K-311>

군대에서 가장 흔한 차량 중 하나입니다. 이 차량은 인원 및 물자 수송 등의 임무를 주로 수행합니다. 군에서는 주로 닷지, 4/5(사오톤), 밥차 등으로 불립니다. 수송 업무뿐만 아니라 통신 가설, 우편배달, 화생방, 박스카 등 특수 상황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태로 개량할 수 있고 임무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적의 소총이나 기관총 같은 화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인원 탑승 자리에 장갑을 장착해 장갑차의 형태를 취하기도 합니다. 적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소총 거치대와 K-3 기관총, K-4 고속유탄기관총 등의 기본적인 무장을 갖출 수 있습니다.




<K-511 / K-711> 

이 차량들 역시 군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량으로 연료 수송, 부식 운반, 이동 PX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늪지와 산악지대에서의 기동력이 우수한 것이 장점인 두 차량은 2½톤, 5톤이라는 야지 적재량의 차이점이 있답니다. 크기 외에 외형상 에어 클리너가 보닛 안에 있으면 K-511, 밖에 있으면 K-711입니다. 바퀴 크기와 차체 크기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K-711은 보통 기본 카고 형태보다는 덤프형 K-713, 구난차 K-712가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K-912(10톤 구난차)>

이 차량은 고장차량, 장비 견인, 전차 및 장갑차 운반 등 각종 정비를 지원하는 차량입니다. 군의 각종 사고나 돌발적인 상황에서 인명과 장비들을 구조하거나, 무거운 장비들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크레인은 최대 10톤의 하중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데, 장비 무게에 따라 3단계로 작동합니다. 




<K-915 / HET(Heavy Equipment Transporter)>

부피가 큰 군용 중장비들을 수송하기 위해 길게 만들어진 차량입니다. 기존에는 주로 기차를 이용해 군용 중장비를 수송했는데, K-915를 배치한 이후에는 일반 도로를 통한 운송도 가능해졌답니다. 덕분에 중장비를 보다 빠르고 이동 범위의 제한 없이 수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K-915라는 제식 번호는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100톤 트랙터를 지칭합니다. 후방의 트레일러는 HET라고 불립니다. 최대적재하중은 60톤으로 현재 국군이 운용하는 중장비를 모두 적재할 수 있습니다.




<K-2 전차>

K-2 전차는 신개념의 핵심기술을 적용해 그 성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입니다. K-2에는 120mm 장포신 활강포와 신형 전차 포탄이 적용되어 대전차 파괴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전차의 가장 큰 위협인 공격용 헬기에 대한 대응능력을 갖춘 한편, 장갑 방호 능력과 대전차 미사일 방호 체계, 핵전하에서의 방호 능력 등을 보유해 생존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자세 제어, 야지 주행 속도, 심수도하(4.1m)를 포함한 지형 극복 능력이 향상되어 전투 가능 지역이 대폭 확대되었고, 피아식별 기능이 추가되어 우군 간 피해 최소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K-9 자주포>

K-9 자주포는 최대 3분간 분당 6발의 사격이 가능한 이동형 대포로 자동장전시스템과 자동포신이동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K-9 자주포는 1,000 마력의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최대 67km까지 주행 가능해 K1 시리즈 전차와 동등한 기동 능력을 자랑합니다. 또한 K-9에는 위치 확인장치, 자동 사격통제장치, 포/포탑 구동장치 및 통신장치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격 제원을 계산 또는 사격지휘소로부터 접수된 사격 제원에 따라 포를 자동으로 발사합니다. 방호력의 측면에서는 전차만큼은 강하지 않지만 고강도 장갑을 채용하고 있으며, 화생방전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 생존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렇듯 탁월한 K-9의 성능에 주목한 터키는 우리의 기술을 도입하여 자국에서 생산한 T155 FIRTINA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폴란드와도 수출 계약을 맺어 K-9 자주포의 위상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군용차량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습니다. 모두 비슷한 모양새라 일반인들이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각각의 차량은 저마다 훌륭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군용차가 점차 상용차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입대 전 운전병들이 사용하던 익숙한 차를 운전하면서 교통사고율도 줄일 수 있으며, 군용차보다 저렴한 가격 덕에 예산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군은 오는 2020년까지 군 보유차량의 60% 정도를 상용화할 계획이라는데요. 앞으로 더욱 멋지게 변화해나갈 군용차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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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오비의 군모닝] 137화 좀 더 쾌적한 군 정신교육을 위한 준비물을 알아보자!

[기획재정부의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 인포그래픽] 4대 부문 구조개혁 선도_10대 분야 재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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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국가재정전략회의 주요내용을

인포그래픽으로 쉽게!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전방위적 재정개혁 추진으로

4대부문의 구조개혁을 선도합니다.



정부, 공공, 지방, 민간으로 이어지는

연계 전략을 통한 절감재원은

서민·중소기업 등 반드시 필요한 곳에

중점 재투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10대 분야의 재정개혁이 이루어질 계획인데요.

하나씩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지방재정 개혁/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정부 R&D 혁신/ 복지재정 효율화



 




   문화지출 효율화/ 방위사업 투명성 제고/ SOC투자재원 다양화 및 투자 효율화/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효율화 




 




    재정사업 성과평가 체계 개편/ 공공기관 기능 조정 



 


자료 출처 : 기획재정부 블로그 : http://mosfnet.blog.me/220357455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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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시작 ( 언제 어디서나 )

5월의 대학살 - 중공군 대패의 춘계공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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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포로들 - 중공군은 북한군에 비하면 미군 포로들을 비교적 인도적으로 대해 주었었다.

 

 

 

운산에서 중공군에게 한방 먹은 뒤 중공군의 실제 참전 병력을 알게된 미군 수뇌부는 한국군이 보기에 참 이해하기 힘든 작전을 전개했다한국군 미군뿐만 아니라 모든 유엔 부대를 몽땅 전선에서 빼서 오던 길을 돌려 변변한 전투 한 번 없이 평양도 내주고 삼팔선으로 철수를 해버린 것이다다 된 통일의 앞에서 전투도 없이 그저 한 없이 후퇴를 거듭해야하는 국군 장교들은 비감한 생각에 눈물까지 흘렸지만 병권을 한손에 쥔 미군이 하는 짓이니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후퇴를 거듭하던 유엔군은 서울 북방에 이르러 진을 쳤지만 중공군은 19501231일 이 방어선을 압도적인 병력을 퍼부어서 공격했다. 서울 점령을 위해서 중공군이 벌인 전역[戰役]3차 전역[三次 戰役]이다한국과 유엔군은 또 다시 서울을 내놓고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후퇴했다. 미군이 운산에서 한판 깨지고 난 뒤 제대로 된 전투도 없는 일사천리의 후퇴였다중공군과 북한군은 서울로 들어와 김일성의 북한군이 그 작년, 928일 내쫓겼던 서울을 다시 차지하였다.

 

 

 

서울을 재점령한 중공군과 북한군

 

 

일사천리의 남하 진격을 한 중공군의 진격은 하여튼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지켜보며 탄복했다이는 중공군의 압도적인 승리였으며 태평양과 유럽에서 두 강대국 일본과 독일을 한꺼번에 상대해서 대승리를 거두었던 미국의 꼴사나운 패퇴였다미군이 상대했던 일본군이나 독일군과는 질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약한 무장의 중공군이 미군을 격퇴시키고 추격까지 해서 서울을 점령하자 중국에 대한 평가는 하늘같이 솟아올랐다.

 

미국의 체면은 말 할 수없이 구겨졌고 국제적인 조소가 나왔다. 더구나 미군의 볼품 없었던 퇴각을 시작할 무렵부터 언론에 미군들이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해 염전 사상이 전군에 확대되어 전투력이 말이 아닐 정도로 저하 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가 되었다. 반면 이승만 이하 한국의 정부 관리들은 미군이 싸우지도 않고 철수를 거듭하다가 수도까지 내준 상황에 대해서 미군의 처사에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전투 한 번 없이 기약 없는 남행열차를 탄 듯한 이해 할 수 없는 미군의 무작정 후퇴에 대한 이면 분석을 해본다지금에 와서 미군의 대후퇴는 병참과 보급에 취약한 중공군을 병참선을 연장할 만큼 연장하게 해놓고 공중 공격에 노출시켜 중공군을 약화시킨 뒤 공격하겠다는 전략 때문에 이렇게 후퇴했다는 뒷말을 전하고 있다. 인생을 마감하는 나이 70대에 자신이 평생 쌓아온 명장으로서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싸움을 해버린 맥아더의 분노한 심리 상태가 이 후퇴 전략의 기본에 깔려있었다.

 

미군은 중공군이 한반도에 잠입해 들어와 잠복할 때까지 정보수집에 미흡하다가 중공군 포로가 다수 획득되면서 그제서야 반도 참전 중공군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대승리가 필요했다. 한반도에 들어온 중공군의 완전한 대량 섬멸이었다. 그 정도의 승리를 거두지 않으면 중공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군사적 판단도 유엔군 내에 이미 확립된 상황이었다. 그는 새로 나타난 이 중공군이 숫자는 많았지만 가진 화력이 단지 기본적인 보병 화기뿐이고 보급도 엉망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맥아더는 비록 자신의 부대가 자만의 대가로 두 번이나 두들겨 맞았으나 기습이 아니라 적당한 장소에서 정면으로 맞붙으면 중공군은 미군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맥아더는 중공군 수십만을 살상하거나 포로로 하는 대섬멸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그는 또한 모택동의 부대이기도 한 이 중공군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장기전에 능하다고 파악했다.

 

더구나 사람들의 바다 중국은 수 십만이고 수 백만이고 아무리 사람들이 죽어도 인적자원은 물 붓듯이 제공할 수 있으니 추스릴 수도 없는 괴멸적인 타격을 줘 압록강 밖으로 내쫓고 든든한 방어선을 쳐서 다시는 한반도에 얼씬 거리지 않게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말해서 일차 세계 대전 때의 탄넨부르그 대회전이나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소련 군을 대파했던 초기 바바로사 작전같은 포위 섬멸전을 꿈꾸고 있었다.

 

 

 

 

 

독일이 166개 사단을 동원하여 소련을 친 바바로사 작전.

한꺼번에 60만명의 소련군이 포로가 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 타격을 주고 방어선을 튼튼히 하면 중공군은 다시는 한반도를 넘보지 않을 것이다지금까지 그가 지휘했던 유엔군과 한국군의 병력 규모는 단지 20만의 병력으로 전쟁을 시작했던 북한군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 위한 규모였다. 거기에 30만이라고 하는 병력이 새로 나타난 것이다그래서 그는 미국에 미군 병력 증파와 더해 대만군 5만 명의 파병을 요청하였다.

 

대만군이란 장개석 군대를 말하는데 모택동 군에 대만으로 볼품없이 쫓겨 갔지만 대만에 자리를 잡은 뒤 훈련에 힘쓰고 군 장비 개선에도 노력한 끝에 상당히 향상된 전력을 가지게 되었다더해서 맥아더는 한반도와 중국 국경지대, 중공군이 침투하기 좋은 국경 산간 지대에는 원자로에서 나온 방사능 재를 뿌려서 인원의 통과를 불가능하게 만들 예정이었다이것만 아니라 만주를 폭격해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중·소의 철도망과 도로망을 모두 폭격할 계획도 세우고 일부 중국 연안 지역에 대만군으로 하여금 상륙 공격을하게 하는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보면 중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계획을 세운만큼 맥아더는 투지에 불타있었다. 물론 워싱턴과 협상 카드로 과하게 내세운 것도 있을 것이다요청한 병력이 증파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중공군의 대병력을 맞아 섬멸해버릴 넓은 평야 지대가 필요했다. 그가 결전의 장소로 삼은 곳은 한강과 금강 사이의 넒은 평야지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맥아더와 리지웨이[오른쪽에서 세번째]

 

 

이 지역은 주요 인구 밀집지역으로서 중공군으로서 반드시 욕심을 낼만한 가치가 있었고, 이 지역은 중국에서 북한을 거쳐 일선에 오는 보급은 대부분 서울을 거쳐 한강을 도하하여야만 가능하다는 취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적의 보급로를 최대한 미군 항공 공격에 노출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긴 거리까지 후퇴할 필요가 있었다.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은 맥아더 전략의 항상 주요 근간이었다. 그러나 보급로 연장을 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였고 병력 보강을 위한 시간 벌기와 중공군 섬멸을 위한 전장 선택이 더 큰 변수였던 것이다.

 

그런 중요한 판단에 한국민의 통일 염원은 미군 수뇌부에 눈에는 안 보였을 것이다미군의 사기가 너무 저하되어서 전력이 극히 약해졌다는 소문이 났던 것은 미군 정보 당국이 중공군에게 죽음을 안겨 줄 전장으로 유인할 목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해놓은 결과였다[언론의 이런 거짓 소문 전략은 미군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심리전의 일환인 이런 기만 전략은 미군이 60년대 말 월남 고원지대 케산 기지가 고립되자 더 많은 월맹군을 이곳에 집결시켜 항공력으로 전멸시켜 버리기 위해서 마치 이곳이 제2의 디엔 비에 푸가 될 듯이 위와 꼭 같은 심리전을 전개했지만 케산 기지를 포위했었던 월맹군은 덫에 걸리지 않고 철수해버렸다. 미군은 이런 언론 플레이의 심리전을 걸프전에서도 써먹었다.]

 

 

 

미 해병대와 월남군이 77일간 버틴 케산 공방전

 

 

이 심리전이 얼마나 감쪽같았는지 의정부에서 사고사 했던 워커 중장의 후임으로 한국 전선에 온 매튜 리지웨이 중장도 그 소문을 믿고 한국에 왔다가 사실과 다름을 알고 매우 놀랐다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여기까지가 남하 전략에 대한 맥아더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적은 워싱턴에서 나타났다. 맥아더가 계획한 자신의 마지막 전쟁은 내부로 부터의 반대에 의해서 좌절을 겪어야했다. 워싱턴의 합참과 육군성은 물론이고 국방성까지도 그의 증파 요구와 중국에 대한 확전을 차단하고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먼저 미군이 청천강 이북에서 큰 타격을 입고 일사천리로 후퇴하자 미국 내에 반전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전투를 비싼 세금을 낭비해 가며 계속할 이유도 없고 남의 나라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을 무가치하게 죽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트루먼 대통령은 별로 안 좋은 상황으로 흘러가는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할 실정이었다. 더구나 그는 평소 거만하고 항명을 밥 먹듯 하는 맥아더에 안 좋은 감정이 있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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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경찰이 공비 소굴에서 만난 어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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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경찰이 공비 소굴에서 만난 어린 아이


한국의 6.25 전쟁 동안 전선 지역뿐만 아니라 공비들이 준동하는 후방 지역에서도 많은 비극들이 양산되었다. 후방 지역이 겪은 비극의 특징은 총을 맞대고 싸운 당사자들이 전투의 피해를 입었을 뿐더러 그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김일성 부대가 밀고 내려오자 지하에서 나타난 좌익들은 군인 가족과 경찰 가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부인은 물론 연로한 부모님들과 어린 자식들까지도 죽이는 학살들이 부지기수였다.


적 치하에서 군경들의 가족들과 우익들의 가족들이 애꿎은 고초를 겪은 반면 수복이 되자 좌익 가족들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학살을 저지르고 도망친 악질 좌익들의 형제나 부모들 중의 많은 사람이 학살 유가족들의 보복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유족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좌익 가족들의 수난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적 치하에서 부역을 했던 인간들은 북이나 산으로 도망쳐서 공비가 되었다. 뒤에 남은 좌익 가족들은 경찰과 대한청년단에게 시달렸고 주변에서 백안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끈끈한 가족애는 많은 부역자 가족들을 도망친 좌익 혈육들을 따라 입산하게 해서 공비가 되게 했다.


전투 경찰의 출동



한 기록에 의하면 한국의 공비들이 남한에서 섬멸된 가장 큰 이유는 충분한 식량 조달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제대로 식량을 구하지 못한 공비들은 막판에 식량 도둑질의 강도범 집단으로 전락하였는데 공비들을 기아선상에 몰아넣은 큰 원인은 전투력은 전혀 없으면서 식량은 다량 소비하는 비전투원 가족들이 공비 부대에 너무 많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들 한국형 가족애[家族愛] 때문에 산에 따라 들어간 가족들까지 공비로서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일들도 자주 있었다.


이와 관련된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의 일화가 생각난다. 군경의 대토벌중에 은신하던 공비 일가족이 적발되었다. 진짜 공비인 아들은 폐결핵에 걸린 중환자였다. 자식을 따라 입산해서 병수발을 하던 늙은 아버지는 토벌대에게 차라리 아들을 죽여서 아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끊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한국 전투 경찰사에 이런 슬픈 이야기는 무척 많이 나오는데 부부 또는 부자 관계 때문이 아니라 부모를 따라 산에 들어와 생고생을 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애절하다. 


그 기막힌 사연을 알려주는 한 일화를 소개한다. 아래 글은 ‘호국 충남 경찰사’에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고 서재호씨가 쓴 것이다. 서재호 씨는 1948년에 경찰에 투신하여 일생을 경찰관으로 보내신 분으로 2012년 작고 하셨다.


지서주임의 직책에 있다가 6.25 전쟁을 만난 서재호 선생은 생사를 넘나드는 여러 전투들을 겪었다. 서재호 씨는 1951년 지리산 지구에 파견된 충남 경찰청 소속 전투 경찰부대 205부대 3중대 1소대장으로 공비 토벌 작전에 출동하였다.


그의 소대는 공비 수색을 하다가 뜻 밖에도 한 아지트에서 공비들인 부모들이 그냥 놔두고 떠난 5-6세 된 어린 아이를 발견하였다. 부모 공비들은 경찰의 추격이 너무 급하자 앞뒤 돌보지 못하고 도망쳐야 할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경찰들은 그런 어린이를 어떻게 못하겠기에 살살 달래서 부모들이 어디로 갔는지만 물었었다. 그랬더니 그 어린이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꺼먹 개를 잡으러 갔어!.” 


꺼먹 개란 이곳 사투리로서 검은 개를 말한다.공비들은 군경을 개라고 불렀고 군인은 푸른 개, 경찰은 검은 개라고 비칭(卑稱)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로부터 꺼먹 개라고 불린 경찰들의 기분은 묘했을 것이다. 경찰은 그 어린이를 그냥 놔두고 귀대했다. 며칠 뒤에 같은 곳에 가보니 그 어린애는 보이지 않았다. 공비 부모가 돌아와서 데리고 피신한 것으로 보였다.


최후의 공비 정순덕

  * 공산주의는 커녕 세상살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던 어린 촌부[村婦] 정순덕도 남편을 따라 공비가 된 경우였다.


위의 일화와 같이 가족을 잘못 둔 덕분에 졸지에 산에 끌려 들어가서 공비가 된 어린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1951년 봄, 전북 경찰 특공대가 전북 순창의 공비 소굴 가마골을 기습했을 때 공비 어린이들을 위한 초등학교[초등학교]까지 발견되었었다. 부모 잘못 둔 덕분에 억지 공비가 되었던 어린이들은 대부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제일 먼저 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공비 토벌 군경들은 전투기를 동원한 폭격은 물론 포격도 수시로 해댔었다. 눈이 없는 폭탄이나 포탄들이 사정 가리지 않고 낙하했을 것이고 대피에 동작 느린 어린이나 아이들을 챙기던 부모들이 첫 희생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 고산일대를 휩쓴 엄청난 추위에서도 제일 먼저 사망했을 공비도 저항력없는 어린이들이었을 것이다. 


지리산과 그 남도 일대의 공비들이 한창 위세를 부릴 때인 1950년 수복직후에는 일 만 명이 넘었으나 군경의 가차없는 토벌 작전으로 5년 뒤에는 불과 5, 6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가 60년도 초에 완전 섬멸되었었다..


토벌 된 공비들중에 어린이들이 상당히 많았을텐데 산중에서 말없이 죽어간 어린 생명들이라서 별다른 기록도 남기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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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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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1년 중 스승을 생각하는 하루,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은 언제부터?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강경고등학교에서 ‘병석에 누워 계시거나 은퇴 후 외롭게 지내시는 선생님을 찾아뵙자’라는 취지로 ‘은사의 날’을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4년 5월 26일 청소년적십자단원들이 모여 첫 ‘스승의 날’ 행사를 거행하였고, 5월 말까지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http://www.ehistory.go.kr)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 / 1964.5.26)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에 소홀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 일으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신뢰로 선생님과 학생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회복하여 사제지간의 윤리를 바로잡고 참된 학풍을 일으키며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바로 인식하고 존경하는 기풍을 길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윤리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이 [스승의 날]을 정한다.


그 후 1973년, 스승의 날은 국민교육헌장선포일에 통합하며 폐지했다가 1982년 교권확립의 해를 맞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이 스승의 날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http://www.ehistory.go.kr)




사랑과 존경을 뜻을 담는 꽃, 카네이션


5월은 카네이션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에 빠져서는 안 될 꽃이 바로 카네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이 처음 시행됐을 때는 지금의 카네이션이 아닌 장미 꽃 한 송이를 스승님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학생들은 감사의 리본을 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카네이션은 어떻게 어버이날, 스승의 날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1910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웹스터 마을에서 26년간 일요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자비스 부인의 선행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부모가 없는 마을의 어린이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피고,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사랑하라.”라는 말로 아이들을 교육했던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열린 추도회에서 그녀의 딸 안나가 카네이션을 영전에 바치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되뇌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마음에 큰 감동을 받고 자비스 부인에 대한 추모의 뜻을 기리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 카네이션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게 되었고 사랑과 존경을 뜻하며 지금의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만 스승의 날이 있는걸까요?


스승의 날은 우리나라에만 있을까요?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의 스승의 날과 같은 날이 있는데요, 먼저 10월 5일은 국제교육연맹이 정한‘세계 교사의 날(World Teachers' Day)’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 매년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학교 재량에 의해 스승의 날을 쉬는 날로 정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방식이지만, 정식으로 공유일로 지정한 나라도 있습니다.

슬로바키아(3월 28일), 이란(5월 2일), 알바니아(5월 7일), 멕시코(5월 15일), 체코(5월 28일), 싱가포르(9월 1일), 중국(9월 10일), 대만(9월 28일), 러시아(10월 5일), 폴란드(10월 14일), 브라질(10월 15일), 베트남(11월 20일) 등이 스승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찾고, 뵙고 싶어요!

학창시절 속의 추억의 은사님을 찾고 싶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각 지역 교육청에서 스승찾기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번 없이 ‘1396’번으로 전화를 걸어 상담원에게 찾고 싶은 스승님의 관련 정보 조회를 의뢰할 수 있으며, 해당 절차를 통해 교육청의 연락을 받은 스승님이 동의하시게 되면 다시 해당 내용을 상담원이 스승을 찾고자 하는 제자에게 알려 주는 서비스입니다. 서울, 부산, 제주 등 일부 지역 교육청에만 스승찾기를 시행하고 있으니 거주지 교육청에 문의를 통해 사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서울교육청 홈페이지 www.sen.go.kr)



‘1396 스승찾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

​​1. 1396으로 전화합니다. (서울 외 지역의 경우 02-1396번)

2. 상담원에게 자신이 찾고자 하는 스승님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합니다.

   (졸업 연도, 졸업 학교, 선생님 성함 등)

3. 상담원이 스승님에 대한 정보를 조회하여 해당 스승님께 제자가 찾고 있음을 알립니다.

4. 연락을 받은 스승님이 연락처, 학교가 어딘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확인합니다.

5. 며칠 후 상담원이 정보를 문의한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스승님에 관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6. 전달받은 정보를 통해 스승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그 동안 감사했던, 존경했던 스승님, 학창시절 커보였던 그리고 무서웠었던 선생님은 아직 그 모습일까요? 제자들이 자신들의 꿈을 찾아 미래를 열어가길 누구보다 희망하셨던 선생님을 이번 스승의 날에 찾아뵙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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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총기사고 관련] 깊은 애도를 표하며, 쾌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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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부상당한 분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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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의 날]성년의 날을 맞이하시는 분들 모두모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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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8일 오늘은 성년의 날입니다. 


성년의 날은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주며,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1973년에 최초로 지정된 기념일로 매년 5월 셋째주로 정해져 있습니다.     



성년의 날은 원래 5월 18일? 

1973년에 4월 20일을 성년의 날로 지정했다가 1975년부터 '청소년의 달'인 5월에 맞추어 날짜를 5월 6일로 변경한 후 현재의 날짜로 정해진 것은 1985년부터라고 합니다. 


성년의 날의 유래는? 

삼한시대부터 유사한 의미를 지닌 의식했다고 전해지나 문헌으로 남아있는 것은 고려 때부터 시작한 성년례(成年禮)라고 합니다. 고려 광종 때인 965년(광종 16)에 세자 유(伷)에게 원복(元服)을 입힌 것을 그 시작으로 본다고 전해지는데요. 이 성년례는 남자의 경우에는 관례(冠禮)를, 여자의 경우에는 계례(筓禮)가 있었으며,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는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였으나, 20세기에 서서히 사회관습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올해 성년이 되는 나이는? 

2015년에 성년을 맞는 나이는 만 19세이므로 이번 5월 18일에 성인이 되는 분들은 1996년생분들입니다.  


성년의 날에 받는 선물? 

성년의 날에 받는 선물은 세 가지! 성년이 되기까지 잘 자라주었다는 의미로 장미, 향기롭게 사회생활을 출발하라는 응원을 담은 향수,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는 의미로 키스를 주고 받는답니다. 



2015년에 성년이 되시는 1996년생 여러분! 

특히 군에 입대하여 나라를 지키는 일에 여념이 없는, 


96년생 국군장병 여러분!!! 


성년이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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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엔진을 통해 본 냉전시대 [ 2 ] 힘을 키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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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엔진을 통해 본 냉전시대 [ 2 ] 힘을 키우는 방법



로켓이 가장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시점은 발사 직후인데, 그 이유는 이 순간이 로켓의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무게의 대부분은 연료가 차지하는데 일단 발사되면 급속히 소모되므로 시간이 갈수록 로켓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반면 연료가 완전 소진될 때까지 엔진의 추력은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반비례하여 비행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빨라지게 된다.


[ 모든 로켓은 발사 순간 가장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 


따라서 로켓이 가장 무거운 초기에 공중으로 동체를 띄어 올리기에 충분할 만큼 강한 힘을 내는 엔진만 있다면 탄두에 좀 더 무거운 물체를 장착할 수 있고 또한 최대한 멀리 보낼 수 있었다. 이점은 로켓이 처음 개발 되었을 때부터 당연히 알게 된 공식이었고, 무기로든 아니면 과학이나 상업적 목적의 발사체로든 로켓에게는 항상 보다 강한 추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이 요구되었다.



[ 현대 로켓의 효시인 V2 ]


그런데 현재 사용 중인 대부분의 화학 연료가 탑재된 로켓은 V2 당시와 기본적인 기술이 다르지는 않다. 그 말은 로켓의 핵심 기술이자 전부라 할 수 있는 엔진의 기본 메커니즘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을 만큼 의외로 단순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에 사용하는 엔진보다 성능이 월등히 좋은 새로운 엔진을 만드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 V2 로켓의 엔진 구조 ]


만일 V2 로켓의 2배가 되는 추력과 비행 거리를 낼 수 있는 로켓을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단순하게 엔진을 포함한 모든 부품이나 몸체의 크기를 2배로 키워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엔진이나 로켓의 재료 또한 증가된다. 추력이나 작동 시 발생하는 충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도도 세어져야하고 병행하여 주변기기 또한 그에 걸맞게 새롭게 제작되어야 한다.



[ 전후 미국에서는 V2를 여러 방향으로 개량하여 실험하였다 ]


미국의 경우는 엔진 자체의 성능을 향상시켜 로켓의 추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연구를 우선 실시하였다. 독일에서 노획한 V2를 분해하여 꼼꼼히 재설계하면서 추력과 엔진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연구하였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생각보다 많은 난관을 겪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대추력의 엔진을 개발하는 것과 별도로 V2를 여러 형태로 개량하여 사거리를 늘리는 등의 연구도 함께 시행하였다.



[ V2를 2단 로켓으로 개량한 Bumper WAC 실험 로켓 ]


그 결과 보조 로켓인 부스터(Booster)를 로켓 동체에 병렬로 장착하거나, 복수의 로켓을 직렬로 연결한 형태의 다단계로켓이 등장하였다. 부스터의 경우는 가장 많은 힘이 필요한 발사 단계에서 메인 엔진만으로 추력이 부족할 경우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고, 다단계의 경우는 연료가 소진된 후 필요없는 동체를 차례로 제거하여 무게도 줄이면서 반면 추력은 지속적으로 배가시켜 로켓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 좌우에 부스터를 장착하여 추력을 증대시킨 아틀라스 로켓 ]


이와 같이 여러 실험 및 개발 과정을 거쳐 미국은 1957년 5월 사정거리 4,000km에 1톤 정도의 탄두를 날려 보낼 수 있는 IRBM 수준의 주피터(Jupiter) 로켓을 개발 할 수 있었고,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해 8월 사정거리 6,000km 수준의 ICBM 바로 전 단계 추진체인 아틀라스(Atlas) 로켓을 개발하여 냉전 초기의 로켓 개발 주도권을 완벽하게 확보한 것처럼 보였다.



[ 지금도 사용 중인 아틀라스 로켓의 계보도 ]


미국은 자신이 넘쳐서 수시로 매스컴을 통해 그들의 업적을 자랑하고는 하였지만 소련은 이와 관련하여 거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하지만 이런 침묵 뒤에서 소련은 미국 못지않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소련의 개발 방향은 한편으로는 미국과 비슷하면서도 각론으로는 상이한 방법을 채택하였다. 미국은 잘 몰랐지만 오히려 소련은 한 걸음 더 앞서가고 있었던 상태였다. ( 계속 )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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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 대학 원격 강좌 학점 취득] 군 복무 중에도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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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에도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 윤택한 군 생활을 위한 군 복무 중 대학 원격 강좌 학점 취득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 기간은 1년 9개월입니다. 그 중 매일 일과를 마치고 청소, 개인정비 등을 모두 제외한 하루 개인 자유시간은 2시간 가량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도 자기개발을 위한 공부에 매진하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바로 국방부에서 실시하는 대학 원격 강좌를 수강하는 병사들입니다. 





그렇다면 원격 강좌란 무엇일까요?

공식 명칭이 군 복무 중 원격 강좌 학점이수제인 이 제도는 병사들이 일과 후 재학 중인 대학의 원격 강좌 수강을 통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병사들에게 학업 단절 극복과 생산적인 군 복무를 위해 복무 기간 중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병영문화 혁신과제의 하나로 시행되는 이 제도는 원격 강좌 6학점, 군 교육 이수 3학점, 복무 경험 학점 인정 9학점을 합쳐 한 학기에 총 18학점을 이수할 수 있습니다.

2007년에 6개 학교와 연계해 시작되어, 2015년 현재는 115개의 학교가 참여해 병사들의 학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원격 강좌를 활용한 대학들의 우수 사례

원격 강좌 시행 대학이 늘어갈수록 우리 병사들을 위한 지원이 점차 증가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수한 사례를 통해 병사들의 학업 증진에 기여하고 있는 참여 대학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원격 강좌에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학교들이 점점 더 늘어나야 이를 토대로 원격 강좌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학교명

지원 내용  

 국립공주대학교

 국립대학 중 가장 많은 강좌(127과목)를 개설

  * 자체 강좌 5, 열린사이버대학 122

 강남대학교

 2015년 상반기 자체 강좌(35최다 개설

 국립 경상대학교

 자체 강좌(6)를 주변 대학(13개 대학)이 학점 인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

 국립 한국체육대학교

 자체 강좌가 없으나 타 대학의 강좌(제주대학의 10개 강좌)를 수강한 재학생에 대해 학점 인정

 중앙대학교

 병사들을 위해 2014년부터 오프라인 시험을 온라인 시험으로 변경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올해 신규 참여 대학으로군 복무 중 납부한 원격 강좌 수강료를 복학 후 장학금으로 제공



원격 강좌로 학업 성취를 이룬 병사들의 리얼 체험기

이렇듯 여러 학교에서 병사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원격강좌가 더욱 활성화되면서 이에 대한 병사들과 대학의 참여가 나날이 늘고 있는데요. 원격 강좌에 참여한 병사들의 수강 후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부대장님과 주변 선임, 간부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원격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어 너무 기뻤고, 앞으로도 더 많은 장병들이 저와 같은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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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에 입대한 저는 남들보다 조금 긴 군 생활이 억울하곤 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사회와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의 원격 강좌를 통해 군 복무 중이더라도 얼마든지 충분히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면서 꾸준한 자기개발을 통해 사회에 나가서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국방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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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병사들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지는 원격 강좌! 참여 대학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지만 전국 390여 개 대학 중 겨우 115개뿐입니다. 나머지 대학의 병사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무척이나 절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치는 우리 병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요?




이밖에, 오늘 5월 18일은 무척 의미 있는 날입니다. 바로국방부와 서울대학교사이에교육 및 연구 협력을 위한 협정이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협정은 서울대 재학 학생들의 군 복무 중 지속적인 자기계발 및 학업증진과 교육·연구 분야의 상호 교류 및 협력을 위해 체결되었습니다. 국방부와 성루대학교는 학점인정제 운영 및 양 기관의 교육 및 연구 개발을 위한 학술 정보 교류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협력 방안을 논의했는데요. 

국방부는 앞으로도 서울대학교뿐만 아니라 더욱 다양한 대학들이 원격 강좌 학점 취득제에 참여하도록 권유해 병사들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군 복무 중 대학 원격 강좌 학점 취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직 군 복무를 자신의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군 복무 기간은 조국에 대한 헌신뿐 아니라, 학점도 취득할 수 있는 학업의 연장선과 같은 값진 시간입니다. 점점 더 많은 대학들이 참여해 우리 병사들을 위한 교육 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주기를 기대하며, 원격 강좌와 우리 병사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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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논의 본격화, 美국방부 전문가 방한”보도 관련 국방부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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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5.18)자 문화일보 1면에 “사드배치 논의 본격화, 美국방부 전문가 방한” 제하의 보도에 대한 국방부 입장입니다.


□ 보도내용 가운데 “사드 배치 논의 본격화”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국방부와 방사청은 美록히드마틴社로부터 ‘사드 도입’과 관련하여 어떠한 제안이나 요청도 받은 바 없고 도입할 계획도 없습니다.


□ 아울러, 軍 고위관계자를 인용하여 “美 국방부 미사일 전문가 방한하여 사드 배치에 필요한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내용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참고로 지난 14일 美록히드마틴 항공기 사업부문 관계자가 방한하여 방사청 관계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나, 방사청과 美록히드마틴 관계자는 ①KF-16 성능개량 ②FX사업 관련 절충교역(기술이전) ③T-X사업 등 관련부문에 대해서만 논의하였으며, 사드(THAAD)' 관련 논의는 없었음을 다시 한 번 명확히 밝힙니다.  //끝//


2015. 5. 18.(월)

국방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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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의 미 해병 포병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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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의 미 해병 포병대 -1-

 

 

한국 전쟁의 미 포병대 사격


1950년 북한 동해안에 상륙한 미 해병대 1사단은 함흥에서 좌회전해서 북상, 장진호로 이어지는 긴 협곡으로 들어섰다. 해병대는 일로 서북진하여 평안북도 무평리에서 북상해오는 제 8군과 링크하라는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저돌적인 아몬드 장군은 무턱댄 맹진 명령을 남발하며 해병들을 다그쳤다.

 

그러나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협곡에 대부대를 투입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던 중에 대부대의 중공군이 출현하자 경계심을 높이고 가급적 천천히 전진하였다.

 

그 스피드는 거의 항명 수준이었다스미스 소장은 중간중간 보급품 기지를 만들며 신중히 전진하다가 장진군청 소재지 하갈우리에 도달하자 서둘러서 활주로 길이 1,500미터의 간이 비행장을 만들었다. 이 비행장은 장진호 전투중에 보급과 병력 및 환자 수송을 가능케해서 해병들의 작전에 거대한 기여를 한다.

 

스미스 장군의 조심성이 해병1사단의 중공군 포위 탈출에 큰 역할을 했다중공군은 9병단을 이 방면에 투입했었다. 그 병력은 엄청나서 무려 6개 사단, 총 60,000명이었다. 사령관은 마흔 두 살의 송시륜 [성씨룬] 장군. 1937년 모택동의 대장정 때 이미 20대의 어린 나이로 연대장을 했었던 능력있는 지휘관이었다.

 

장진호 계곡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된 미군 병력은 해병 13,500, 육군 4,500명이었다. 해병 3개 연대중 2개 연대와 육군 부대[7사단 32 전투단]가 더 북상하여 장진호 좌측과 우측으로 들어서자 11월 27, 중공군은 대규모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길게 배치된 해병대 부대를 토막내기 위해서 유담리를 먼저 치고 이어서 하갈우리고토리 등 도처에서 해병대에게 연속적인 기습을 했던 것이다이중 해병대 주력 5연대, 7연대가 있던 최전방 유담리에 대한 공세가 극심했다그러나 유담리의 해병대는 사투를 벌이며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탈출을 했고 호수 우측에 전개했던 육군 7사단 32 전투단은 실질적으로 궤멸되어 버렸으나 소수의 병력은 사단 본부가 있던 하갈우리로 철수를 했다

 

다음 순서는 그 남쪽 고토리로 철수하는 것이었다.


 장진호 동쪽 호반에서 궤멸된 미 육군 32 전투단은 연대기를 유실했다.

이를 줏은 중공군 병사가 보자기로 쓰다가 지휘관에 발견되어 지금은

중국 북경 군사 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미국내 신문에서 장진호의 해병들 운명에 대해 극히 비관적인 보도를 하고 미국민들도 절망적 분위기에 있었을 때 해병대는 남쪽 흥남으로의 탈출을 개시하였다해병 1사단이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북극권을 뛰어넘는 엄청난 추위와 싸우면서 다음 목표인 고토리로 철수하던 길에서 격돌했던 전투가 이번 포스팅의 중심 이야기다.

 

1950127.

미리 짜여진 차량 행군 계획에 따라 미 해병 포병들이 장진호 바로 밑의 하갈우리에서 그 아래 고토리로 후퇴하던 도중이었다그 북쪽 유담리에서부터 살인적인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악착같이 매달려 습격해오는 중공군과 싸우며 후퇴하던 해병들이 아직도 최종 도착지 흥남까지는 갈 길이 멀었던 때였다.

 

장진호에서 후퇴하는 해병들.

이들이 입은 긴 파카는 해병대 지급용이 아니라 해군용 동계 피복이었다.



차량들은 행렬을 지어 좁은 도로를 전진과 정지를 되풀이하며 천천히 행군했다좌우 산악에는 미리 매복했거나 뒤에서 추격해오는 중공군들로 붐볐다약점이 발견되는 결정적일 때 중공군들은 매복 병력을 풀어 공격할 것이었다.

왼쪽 위 유담리까지 진격했던 미 해병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호수밑 하갈우리에 집결, 아래 고토리로 철수했다이 구간에서 중공군은 집요한 공격이 있었다포병대 공격도 이 구간에서 있었다.



수 많은 중공군들이 파리 목숨으로 죽어갔던 장진호 전투에서 한국전중 중공군의 트레이드 마크인 인해전술이 하갈우리에서 처음으로 적극 구사되었다.

 

중공군


날이 밝았을 때 행군 종대는 동쪽 고지에서 쏟아지는 적군의 집중 사격으로 갑자기 전진을 멈추어야 했다중공군은 하갈우리에서 잘 싸웠던 미 해병대 포병의 행렬을 노렸다무거운 장비가 있어서 운신에 제약이 있을 것이고 총격전에 보병보다도 전투력이 뒤질 것이라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중공군이 표적에 퍼 부운 화력의 강도로 보아 그것은 교란 사격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중공군은 포병의 G포대와 H포대를 목표로 매복했던 병력이 곧 돌격해올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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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알아보는 군수-마지막]74 그리고 22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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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동고동락 지기입니다. 

그 동안 [숫자로 알아보는 군수]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군수 이야기를 32회에 걸쳐 들려드렸는데요. 

오늘이 바로 마지막 시간 입니다. 


마지막 주제는 '월평균 군수품 개선 제안건수'와 '최근 5년간 부정군수품 단속실적'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금부터 설명해드릴게요!   



군수품 개선 제안 센터에 들어오는 제안건수는 월 평균 74건

어떤 기업이건 소비자들의 불편을 접수해 해결하고, 소비자들로부터 직접 제품의 개선방안을 제안받는 ‘고객/소비자 센터’를 운영하고 있죠. 국방부라고 소비자 센터를 운영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국방부가 보급하는 군수품의 ‘소비자’는 바로 장병들.


국방부는 장병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군수품의 불편사항이나 개선 요구사항을 수렴하기 위해서 국방부 홈페이지와 인트라넷에 군수품 개선제안 센터를 설치했습니다. 군이 ‘기업 마인드’를 갖고 우리 장병들의 군수 만족도와 복지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2012년 9월 군수품 개선제안 센터가 개설된 이래 2014년 6월 말까지 접수된 건수는 1495건. 월 평균 74건의 불편신고와 제안이 접수된 셈이죠. 그 중 전투복에 대한 제안이 313건으로 가장 많았고, 장비(297건), 개인보급품(225건)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제안을 해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피드백이 없으면 이용자들로서는 시큰둥해지고 갈수록 활동이 줄어드는 법. 그래서 국방부는 신속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제안이 접수되면 소관부서의 검토를 거쳐 1~2주 내에 답변을 제공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제출한 제안자에게는 상품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2년의 경우 24명, 2013년에는 17명이 우수제안자로 포상을 받았고, 2014년은 현재 5명의 포상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제안을 해준 사람에게도 포상이 있어야겠죠? 샘솟는 아이디어로 여러 건의 제안을 해준 제안자에게 대해서도 반기별로 대상자를 선정하여 상품권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군수품 개선제안 센터를 통해 들어오는 제안들을 살펴보면 이미 개선을 추진 중이거나 기개선중인 사항에 대한 제안이 441건으로 전체의 29%를 차지합니다. 국방부에서는 이러한 제안에 대해 현재 추진 중인 정책 등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14년 8월 말 현재 반영여부를 검토 중인 제안은 29건이고 검토결과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제안 706건에 대해서는 제안자에게 검토내용을 안내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좋은 개선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싶으시다면 국방부 홈페이지의 ‘군수품 개선제안’ 코너를 이용해보세요. 누구든지 국방부 홈페이지 http://www.mnd.go.kr에 접속해 ‘국방민원’ 카테고리 → ‘군수품 개선제안’ 코너로 들어오면 공개글로 작성된 제안도 살펴볼 수도 있고 제안도 제출할 수 있어요. 





제안 내용이 공개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비공개 글로도 얼마든지 제안이 가능하답니다. 비공개로 제안된 내용이 많지만 공개 내용도 적잖으니 한번 둘러보세요. 참, 좋은 제안을 해주신 분께는 상품권이 제공된다는 사실도 참고하시고요! 




최근 5년간 부정군수품 단속실적 22억원 어치


지난 2013년, 중국 산 '짝퉁' 신형전투복을 몰래 들여와 판매한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이들은 중국에서 만든 신형전투복 방상외피 500여 벌과 디지털 무늬 원단을 밀반입, 국내에서 880벌의 신형전투복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렇게 중국 혹은 국내에서 만든 ‘짝퉁’ 군복과 함께, 군에서 몰래 흘러나와 시중에서 불법 유통되는 군수품도 일부 있습니다. 어떤 제품이든 ‘짝퉁’이나 ‘부정 유출품’은 우리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존재지만, 특히 군수품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죠. 바로 우리 국가안보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3년 적발된 중국산 짝퉁 군복은 군 관계자들이 봐도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니 적들에게 이용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죠. 또한, 불법 총기나 탄약류가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테러나 범죄에 이용될 위험도 있으니 정말 심각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입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물론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경찰청, 관세청이 함께 나서서 부정군수품을 강력 단속하고 있습니다. 헌병수사관들을 동원해 군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재래시장의 일명 ‘군복 골목’ 등을 방문 단속하고, 사이버 상에서 불법 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이버 수사대 등이 활동하고 있죠. 


그 결과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약 22억 원 어치의 부정군수품을 단속했습니다. 처벌도 강합니다. 불법 유통된 무기류나 군복이 범죄로까지 이어지면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 받을 수 있으며, 짝퉁 군복을 만들어 파는 것만으로도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이하 벌금을 받게 된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알면서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들 외에도 적잖은 시민들이 불법이란 사실을 모른 채 짝퉁 군복을 사 입곤 한다는 사실입니다. 


정규 군복과 구분할 수 있는 밀리터리 룩은 허용되지만, 구분이 어려운 짝퉁 군복을 사 입은 경우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군복 패션이 아무리 멋있어도 이 같은 사실은 꼭 기억하시고 불법 여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사세요.



[숫자로 알아보는 군수]의 마지막편 재밌게 보셨나요? 

숫자로 알아보는 군수가 여러분의 군수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데 기여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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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대학살 - 중공군 대패의 춘계공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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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와 트루먼 - 서로 웃고 있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안 좋았다.

 

 

 

여기에 더해서 미 국방성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국방장관 마샬 원수가 틀고 나섰다. 그도 역시 맥아더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야전형 맥아더 장군은 행정형 장군이었던 마샬을 미워했었다마샬은 표면적으로는 정책적인 이유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아시아 구석에 대규모 미군이 붙들려 있는 동안 소련이 미 국익에 훨씬 더 중요한 유럽에서 불장난을 해버리면 미군이 이를 방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샬은 원래 유럽을 중시하는 정책 신봉자로서,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서 아시아를 중시하는 맥아더와는 정 반대의 입장을 가져졌다그는 불과 몇 년 전에도 붕괴되어 대륙에서 쫓겨나고 있던 장개석 군 지원 정책을 틀어버린 일이 있었다.

 

 

 

조지 마샬 - 그의 장개석 정부 불지원, 한국전쟁 조기 종결, 이스라엘 불인정 정책은 후세의 논란이 되었다.

  

 

그러니까 미국 수뇌부의 분위기는 한국에서는 적당한 수준에서 정전한 뒤에 유럽에 미국의 국방력을 집중하자는 이야기였으니 이들의 명예 회복을 절실하게 바라던 맥아더의 투지나 한국민의 통일 염원은 관심조차 없었다. 맥아더는 분통을 터뜨렸으나 여론과 대통령의 비협조를 등에 업은 워싱턴의 군부세력이 내부에서 걸어온 반대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출현한 중공군 때문에 2~3배로 커버린 적군을 그냥 가지고 있는 병력으로 싸우라니 그가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어중간한 상황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내놓고 일단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였다유엔군이 이렇게 복잡한 사연을 안고 철수를 계속하고 있을 때 중공군의 사기는 하늘같이 치솟았다. 세계 강국 미군을 꺾었으니 기고만장 할만도 하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교만한 군대는 필히 패한다는 교병필패[驕兵必敗]라는 전략 원칙의 상태에 전 군대가 발을 드려 놓는 순간이었다 [교병필패[驕兵必敗], 전격전의 아버지 바실 리델하트가 6일 전쟁 뒤 승리에 도취했던 이스라엘에게 찬사대신 충고 할 때 인용했던 손자의 명언이다. 이스라엘은 10월 전쟁에서큰 피해를 보았다.]

 

중국은 한반도에 투입되었을 때 미군에 대한 공포 심리가 다분했다. 그들의 빈약한 무장과 병참은 막강한 최신 무기로 무장한 미군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처음 1,2차 전역으로 미군과 격돌했을 때 이들에게는 항공지원은 커녕 변변한 포병 화력도 없었다위력있는 무기라야 기관총과 박격포 정도뿐이었다. 식량은 콩가루 아니면 미숫가루였다. 부식은 없었다.

 

슬리핑 백 같은 것은 물론 없어서 몸에 걸친 누비옷이 유일한 방한복으로서 밤에 얼어붙은 땅바닥에서 입은 채 그냥 새우잠을 자야 했다. 전투가 길어지고 겨울이 깊어지자 동상에 의해서 일개 연대가 완전히 전투 불능화된 사건도 있었다. [동상 환자가 속출해서 제586연대는 전투력이 마비될 정도였다.] 병참을 위한 트럭 지원을 일선까지 받지 못해서 각 보병이 가지고 있는 실탄,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 전투를 하고 그것이 소진되면 다시 보급 받을 방법도 없으므로 전투를 마감하고 철수해야 했다.

 

그 기간이 대강 닷새에서 이레 정도였다. 미군은 일찌감치 중공군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알아내고 작전수립에 크게 활용했다. 중공군처럼 세계에서 빈약한 무장의 가난한 대군은 현대 군대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과거 이태리 침공군에 대항했던 이티오피아 군대도 이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런 부대가 최강 미군을 타격해 큰 피해를 주고 격퇴시키고 이를 추격까지 해서 적 수도까지도 다시 탈환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민관군이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열광했다. 각 도시에서 승리 축하 행진이 있었고 신문들은 연일 사설을 동원해서 미군들을 현해탄으로 쓸어 넣으라고 들뜬 어조로 선동기사를 해댔다. 과장과 몽상과 태만은 민간에게만 전파된 것이 아니었다중공군 병사들 사이에 미군들이 별 것 아닌 잡병들로서 트럭을 타고 도망만 가는 비겁한 군대라고 멸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38선을 넘을 때 축배를 드는 중공군 - 유엔군을 한참 우습게 볼 때다.

  

 

도망가는 미군 꼴만 보았던 이들 병사들은 미군을 그들이 대륙에서 내쫓았던 장개석군보다 못한 오합지졸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미군 경시 사상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중공군 장교들 사이에 까지 만연되어서 무리한 공격 일변도의 의견들이 난무했다. 많은 중공군들이 저 따위 오합지졸 같은 미군을 바로 부산으로 몰고 내려가서 바다 속에 처넣을 공격 행동도 없이 군을 한반도 중부에 정지해 놓고 서성거리게 만드는 지휘부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털어 놓고 있었다. 덩달아 김일성까지도 팽덕회에게 미군을 부산 앞바다로 쓸어버리라고 보챘다. 주 북한 소련 대사 스티코프가 여기에 합세해 팽덕회에게 압력을 가했다.

 

 

  북한 공연단의 중공군 위문

  

 

그러나 이런 들 뜬 심리는 최고 통치자 모택동의 심리상태에 비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그는 일선에서 싸우는 중공군의 상태도 생각하지 않고 철수하는 미군의 의도도 깊이 연구하지 않고 걸핏하면 팽덕회에게 계속적인 공격을 지시했다. 그러나 노련한 팽덕회는 중공군 안팍에 넘쳐흐르는 교병[驕兵]심리에 남모르게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 근는 원래 적이 싸우지 않고 도주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있다는 의심을 품고 일단 38선 근처에서 정지하고 사태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모택동의 채근으로 다시 힘이 부치는 서울을 공격하였고 유엔군을 한강 이남으로 몰아냈다.

 

이것이 3차 전역[三次 戰役]인데 팽덕회는 지칠대로 지친 부대와 빈약한 병참으로 어거지로 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은근히 자기 의견이라는 겸손을 떨면서 남진을 명했다. 허나 의심 많은 팽덕회는 그의 주력 부대를 한강을 넘어 남진시키지 않고 위력 정찰 부대들만 평택-안성선까지 내려 보내 정찰을 했다그가 발견한 것은 유엔군들이 질서정연하게 방어선을 구축해놓고 중공군의 남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판단은 역시 맞았던 것이다.

 

 

 

미군의 포격 - 헐벗은 한국의 산야가 눈에 들어온다.

 

 

 

중공군이 더 이상 남하하지 않자 유엔군은 반격의 수순으로 들어갔다. 워커 중장이 죽고 리지웨이를 새 사령관으로 맞아들인 미군은 19511월 25일부터 전선을 정리하고 전 전선에서 신중하게 진격하기 시작했다. 서울을 향하여 전진해오는 미군의 진격을 늦추고 모택동의 바람도 만족시키고자 팽덕회는 횡성, 홍천 전선의 한국군을 공격하기로 했다. 이것이 4차 전역[四次 戰役]이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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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오비의 군모닝] 138화 야간정신교육시간에 연대장님이 떴다!!

군에서만 딸 수 있는 자격증? 국방분야 자격증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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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만 딸 수 있는 자격증?

국방분야 국가 자격증에 도전해보자!



신성한 국방의 의무! 하지만 오래전부터 군 복무기간은 그야말로 버리는 시간, 머리가 굳어버리는 허무한 기간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에 있을 때 자신이 배우고 전공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훈련을 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야말로 ‘확’ 바뀌었습니다. 나라를 위한 2년이 나를 위한 2년이 되는 길이 열렸거든요. 바로 국가 기술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인생을 꿈꾸고 있다면 ‘국방 분야 국가자격검정’에 도전!

최근 ‘국방 분야 국가자격검정’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보통의 다른 자격증과는 달리 군 특수기술 분야의 직무수행 능력을 배양하는 분야에 특화된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기정비사와 심해잠수사, 항공장구관리사 3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이는 창군 이래 처음으로 국방부장관 명의의 국가기술자격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격증이 있으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우수 인력으로 각광받게 될 심해잠수사



최근까지 우리나라에는 50~90m에 달하는 깊은 수심에서 구난 및 해양탐사 등 각종 수중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증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즉, 심해잠수사 자격증은 엄청난 희귀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죠.

기존 잠수기능사 및 산업기사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수심은 고작 10~30m 사이였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민간 산업계에서는 구난 및 해양탐사, 조선업, 광물자원개발, 해양토목, 해양기술개발, 관광업 등 심해잠수사에 대한 수요가 그야말로 폭발 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의 심해잠수자격을 취득한다면 군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전역 후 외부에서도 서로 데려가려는 인재로 등극할 수 있습니다.



>헬기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헬기정비사




헬기정비사 자격증 또한 참 매력적인 자격증이라 할 수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회전익 헬기를 정비하는 기술이 별도로 없어 최근까지 고정익 항공정비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채용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고정익 항공기와 회전익 항공기는 기체형태, 날개 모양, 착륙장치, 진력 발생장치 등 다양한 부수 기능은 물론, 정비 방법이 달라 별도의 자격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기존 헬기에 비해 좀 더 빠른 신형 첨단 헬기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이 때문에 헬기정비사 자격증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안전 최전선, 항공장구관리사

이름도 생소한 항공장구관리사는 어떨까요? 항공장구관리사란 공중근무 승무원이 사용하는 비행모, 산소마스크, 중력방지복, 낙하산, 하네스 등 각종 한공장구를 관리하는 전문가입니다. 이 분야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공중강습이나 낙하를 하는 공수부대나 특공대, 수색대 훈련 중 하네스가 끊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민간분야에서도 항공장구관리는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답니다. 민간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 승무원들이 안전장비에 대한 안내를 필수적으로 하는 것만 떠올려 봐도 알겠죠? 


이와 같은 국방분야 자격 검정이 올해 9월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더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기술자격증’

위에서 언급한 국방 분야 국가자격검정 외에도 군에서는 이미 197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가기술자격증’ 취득과정이 있습니다. 

<자동차 정비>


<지게차 운전>


<굴삭기 운전>


<조리사 자격증>


국가기술자격증 526종 가운데 국방부장관이 위탁받아 실시하는 82개 종목의 자격증인데요. 2015년 기준 전‧후반기에 각 1회씩 산업기사 21종목, 기능사 61종목의 자격검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정보처리, 지게차운전, 한식조리, 자동차정비, 양식조리, 굴삭기운전, 위험물, 전기 관련 분야가 있답니다. 


최근 치러진 시험(2014년)에서는 무려 19,443명의 장병들이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네요. 그중 병사가 70.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군 복무기간은 버리는 시간’이라는 말이 더욱 무색해 집니다. 


요즘에는 각 부대에서도 자격증 취득을 원하는 병사들에게 전투준비태세 유지 및 교육훈련 등 군의 기본임무를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과 시간 이후 사이버지식정보방 활용 여건을 보장하고, 병영도서관에도 각종 자격증 관련 서적들이 비치돼 있고요. 심지어 실기시험을 앞둔 병사를 대상으로는 부대별 집체교육까지 시행 중이랍니다. 


그 외에도 군 복무 시 국가기술자격증에 도전할 경우 주어지는 깨알 같은 혜택! 바로 응시수수료 면제를 들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시험을 볼 때 필기는 1만~2만원, 실기는 2만~6만원 정도의 응시비용이 들어가는데요. 그 뿐 아니라 학원비, 재료, 도구 구입비 등 이런저런 비용이 적잖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역 병사가 지원할 경우 이런 비용이 깔끔하게 면제됩니다.


   * 응시수수료 면제

   * 온라인을 통한 강좌 제공, 자격증 관련 도서 구매․비치

   * 실습 재료비 지원,  검정 장비 구매

   * 집체 교육 실시 및 강사 초빙 교육

   * 일과시간 이후, 휴무일 자기계발시간 보장 등 


무료 온라인 콘텐츠 제공, 실습 및 재료비 지원, 실기시험 대비 집체교육, 강사초빙 교육 등 그야말로 혜택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더구나 군에서 복무한 병과별, 주특기별 실무경력까지 인정받을 경우 국가기술자격 상위 등급 응시 시에는 필기시험을 면제해주는 특전이 주어진답니다. 


이쯤 되면 ‘흠~ 한번 해볼 만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실 텐데요. 군 복무 중 여가시간을 활용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개인의 전투력 향상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역 후 새로운 꿈과 희망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도 있고요. 


군 복무 중 자격증 도전,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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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 오늘은 부부의 날! 행복 가득하게 보내세요~

8화 노하우 ( 눈치만이 살 길 )

[의견을 듣습니다]예비군 훈련 안전대책 의견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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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군 훈련 안전대책 의견을 듣습니다.  >






국민들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예비군 훈련을 위한 참신한 의견을 듣겠습니다! 

  

국방부는 예비군 사격훈련 또는 기타 예비군 훈련 진행 시 각종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대책 아이디어를 공모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아이디어로 건강하고 안전한 예비군 훈련을 만들겠습니다! 

 

ㅇ 아이디어 공모 기간 : 2015.5.21.(목) ~ 2015.5.29.(금) 

ㅇ 아이디어 제안하러 가기 : http://goo.gl/McWLu9


※ 공모 기간 이후에는 작성하신 글의 열람만 가능하며, 수정 또는 삭제가 되지 않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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