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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축선의 미스터리 [ 2 ] 미스터리로 남게 된 북한군의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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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축선의 미스터리 [ 2 ] 미스터리로 남게 된 북한군의 전술



흔히 6.25전쟁은 38선 일대에 배치된 북한군 부대에 남침 암호 '폭풍'이 하달된 1950년 6월 25일 04시에 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그 보다 1시간 앞선 03시에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강릉 방어를 담당하던 국군 제8사단의 후방을 차단하고자 임원진 일대에 북 제766유격대가, 정동진에 북 제945육전대(오랫동안 549부대로 알려짐)가 03시에 기습 상륙하였기 때문이다.



[ 03시에 전쟁이 벌어졌음을 기록한 북한군 상륙지의 남침 사적비 ]


이들은 전쟁이전부터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속에서 준동하던 공비들과 연결하여 강릉(제10연대)과 삼척(제21연대)에 예하 연대를 나누어 배치하고 있던 오뚜기부대를 신속히 단절시킴과 동시에 동해 축선 후방에 제2전선을 구축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야음을 틈타 상륙에 성공한지 한 시간이 경과한 04시에 38선의 북한군 38경비 제1여단이 정면의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하였다.



[ 주문진 북쪽의 38선 표지석 ]


북한군 38경비 1여단은 기습의 효과와 압도적 전력을 앞세워 즉시 주문진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고 곧이어 제2제대인 북한군 제5사단 10연대가 뒤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뚜기부대의 분전으로 북한군의 진공이 둔화되면서 전선이 점차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선 전체의 상황을 고려한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오뚜기부대는 강릉을 포기하고 후퇴하여야 했다.



[ 제8사단 강릉전투 승전비 ]


그런데 후퇴로인 동해 축선을 북한군 766유격대와 945육전대가 차단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삼척에서 8사단 본진을 지원하기 위해 북상하던 21연대가 대관령을 확보하자 오뚜기부대는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의 제천으로 철수를 단행하였다. 전사를 살펴보면 이것이 처음부터 계획하였던 것이 아니라 단지 상황이 그렇게 겹쳐진 결과 때문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향후 전황에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 제21연대의 대관령 확보와 제8사단의 후퇴 ]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북한군 전쟁 지휘부는 상당히 엉뚱한 작전을 펼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이는 두고두고 북한군 스스로 자신을 붙잡아 놓는 덫이 되었고 이후 6.25전쟁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국군 8사단이 제천으로 후퇴하자 북한은 38경비 1여단으로 하여금 동해 축선을 따라 계속 남진하도록 하였고 북한군 5사단 10연대에게는 태백산맥을 넘어 오뚜기부대를 추격하도록 조치하였던 것이다.



[ 북한군은 강릉 점령 후 주력을 분산하는 희한한 작전을 구사하였다 ]


이들이 인제에서 평창방향으로 남진하던 북한군 5사단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계획대로 진군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전략적 미스로 작용하였다. 부산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탈취하기 위해서는 최단 축선인 동해 축선을 이용하여 쾌속의 남진을 계속하여야 했는데, 북한은 출발지라 할 수 있는 강릉에 집중되었던 초기의 전력을 스스로 나누어 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었다.



[ 북한은 부산까지 가장 가까운 동해 축선 공략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 


더구나 국군 8사단의 제천방향 철수로 인하여 동해 축선은 강릉에서 포항까지 말 그대로 무주공산의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전략적 이점과 전황을 최대한 살려 진출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전진은 예상외로 지지부진 하였다. 더구나 축선 남부에 기습 상륙하여 이미 제2전선을 구축한 북한군 766유격대와 945육전대도 전과를 확대하지 못하고 그냥 제자리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 초전에 상륙한 북한군 유격부대는 제자리에 머물러만 있었다 ]


이들은 기습상륙한 후 신속히 제2전선을 구축하는데 성공은 하였으나, 북상하여 오뚜기부대를 배후에서 적극적으로 압박하지도 못하였고, 그렇다고 축선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하여 통로를 확보하여 나간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그냥 상륙한 제자리에 머물러 공비수준의 활동만 벌이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는데, 이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소극적인 행동은 북한군 수뇌부를 몹시 실망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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