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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축선의 미스터리 [ 3 ] 소심했던 북한군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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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축선의 미스터리 [ 3 ] 소심했던 북한군의 전략



이런 북한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당사자인 북한이 이유를 밝힌 바 없다. 그래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북한군이 오판을 하였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다행히도 이런 오판은 우리가 부산을 사수할 수 있게 되었던 천우신조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북한군이 오판을 벌인 것에 대해서 추측만 있을 뿐인데,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다.



[ 통신을 하는 남침 초기의 북한군 ]


우선, 전선을 단절시키지 않으려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동해 축선을 통한 진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추측이다. 개전 초에 국군 제6사단이 보여준 예상외의 선전으로 말미암아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진격이 상당히 지체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는 서부전선에서 서울을 함락시키고도 북한이 3일간 남침을 멈춘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도 많이 거론된다. 하지만 단지 그 때문에 공격을 지연하였다면 그것은 너무 소극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 만일 북한군이 머뭇거리지 않고 조기에 동해 축선을 집중 돌파하였다면

낙동강 교두보 성립이전에 아군의 배후를 절단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


엄밀히 말해 북한이 공세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1950년 9월초까지는 설령 전선의 일부가 끊겨서 구멍이 생겨났다고 해도 그곳을 통하여 아군이 반격을 가할 여력은 없었다. 더구나 초전의 충격으로 인하여 수많은 국군 부대가 붕괴되어 지연전을 근근이 수행하였을 정도로 상황이 절망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이처럼 의외로 전선의 단절을 우려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고는 하였다.



[ 낙동강 방어전에서 노획된 북한군 장비 ]


이처럼 전선 연결에 신경을 써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북한군은 전력을 너무 분산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예를 들어 호남 지역처럼 이미 국군이 방어를 포기한 곳까지도 빗자루로 쓸고 다니듯 북한군은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물론 병력에서만도 2 : 1 정도로 북한군이 국군을 압도하고 있어서 충분히 그래도 되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군사전략 측면에서 볼 때 엄청난 실책이었다.



[ 사실 북한군은 그들이 보유한 초기의 압도적인 전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였다 ]


후일 맥아더나 리델하트가 분석한 바와 같이 북한이 압도적인 전력을 분산하지 말고 주요 축선에 집중하여 쾌속 돌파를 시도하여 국군을 신속히 절단하였다면 그들이 누누이 외쳤던 1950년 8월 15일은 물론이거니와 미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훨씬 이전에 부산을 충분히 함락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북한군은 전력을 주요 축선에 집중하기 보다는 산개시킨 형태로 남침을 계속하였다.



[ 부산을 목표로 진격을 독려하였지만 막상 북한군 스스로 기회를 놓쳤다 ]


북한군이 기갑부대 같은 돌파의 중핵을 집중하여 일거에 종심 깊숙이 들어와 전략 거점을 타격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 초기에 있었던 국군 수뇌부의 무능을 질책하는 예가 많지만, 사실 이처럼 압도적인 전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고 소극적인 침공전을 수행한 북한군 수뇌부 또한 전쟁 수행 능력이 무능했다고 결론 지울 수 있다.



[ 엄밀히 말해 북한군도 국군 못지않게 전쟁 초기에 엄청난 실책을 연발하였다 ]


북한군이 경부 축선과 동해 축선의 두개 통로만 집중 공략하였어도 당시 국군의 전력으로 그들의 화력과 기동력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북한군은 중앙 축선도 주요 공격로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산악이 험하여 기동 장비의 운용이 힘든 중동부 전선에 제603모터찌크연대 같은 고속 기동 부대를 분산 배치하였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낙동강전선의 다부동전투에서 파괴된 북한군 T-34 전차 ]


하지만 부산까지 최단 거리인 동해 축선에 단 1대의 전차나 기동 부대를 배치하지 않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였고 거기에다가 강릉 점령 후 전력을 분산시켜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격시키는 자충수를 두었다. 하지만 국군 제8사단이 서쪽의 제천으로 철수하여 강릉에서 부산에 이르는 통로가 순식간 무주공산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진격이 지지부진 하였던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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